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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19) - 고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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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고령산이다. 어제의 동창들과의 산행은 금주 집사람의 미용 국가고시 합격통지에, 작년 말에 시집간 딸네가 축하 파티차 방문하겠다는 연락으로 불참, 일요일 점심을 먹고 집사람과 둘이 양주에 있는 보광사로 향했다. 집사람은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무엇인가 배워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하고 밝게 사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장점이다.


보광사는 신라 진성여왕의 명으로 도선국사가 창건한 비보 사찰로 천년 사찰의 전통을 이어 내려온 절이란다. 절을 품고 있는 고령산은 양주에서는 감악산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봄가을의 꽃과 단풍이 좋은 산으로 소문이 나 있는 흙산이며 우리 가족이 고양시에 자리를 잡고는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물에서 놀기도 하고 집사람과 곧잘 산행하였으나 한동안 발길을 하지 않아 오랜만에 온다.


보광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곡을 끼고 오르다 보광사에서 바로 도솔암 길로 접어들었다. 도솔암 오르는 길은 수십 미터 높이의 전나무 숲이 자랑이다. 어느 정도 오르다 보니 얼마 전 내린 눈이 녹아서인지 비탈길이 진흙으로 미끄러지며 등산화가 곧 엉망으로 질척거린다. 또 오르던 길도 도솔암 가기 전에 등산로가 새로 났는지 옛 기억과는 다른 새로운 길 풍경이다.

 

화창한 양지는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지고 나뭇가지의 겨울눈도 봄맞이하는 듯 생동감이 보인다. 벌써 통영에 있는 친구의 소식에는 매화가 피었다던데 그러고 보니 입춘도 지났으니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생장의 준비를 하는 듯도 하다. 


아직 푸르름은 없지만, 이곳저곳 등산객을 위한 쉼터를 잘 만들어 놓아서인지 집사람과 양지바른 벤치에 앉아 가져간 과일과 커피를 마시며 맞은편 산등성이의 군부대를 바라본다. 고령산 정상의 앵무봉 맞은편은 군부대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고령산 정상 옆에도 헬기장과 교통로 등 군 시설이 있는데 양주는 북쪽과 가까워서인지 더욱 눈에 뜨인다.


분단의 아픔. 우리의 근대사는 세계의 시류에 어두운 우물 안의 개구리 꼴로 외세의 시련을 뼈아프게 겪고 지나온 민족 분단의 역사다. 


민주주의도 싹트기 전, 냉전의 아픔으로 탄생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경쟁으로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북쪽과의 대치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엄정한 비극이 아직도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


어렸던 중학교 시절 10월 유신이 발효되고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급하게 새로운 헌법을 공부해야 했던 시절,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남북한의 대치에서 오는 지극히 폭력적 상황에서 정치라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며 알음알음으로 배운 그 시절의 역사,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이 모든 고초를 이겨가며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줄 알았다. 


아직도 평가가 엇갈리는 그 시절의 상황에 대해 언젠가 공개된 ‘프레이져 보고서’로 읽은 적이 있다. 
프레이져 보고서는 ‘박동선 게이트’라고도 하며, 미 의회의 국회의원들을 매수하려 한다는 코리아 게이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한 보고서다. 물론 미국의 시각이지만 코리아 게이트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듯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은 덤으로 박정희 정부의 부패에 대한 통렬한 사실들이 적시되어 있어, 그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한 보고서의 역자 김병년의 비유가 생각난다.

 


‘삼성전자는 단말기 케이스 생산을 납품하는 정희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애플이 중국에서 지원하는 일성 유한공사의 저가 단말기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정희산업에 새로운 단말기 라인 시설자금과 운영자금 대부분을 지원했고, 생산라인의 건설, 핵심 직원들의 훈련 및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은 정희산업은 시장 진입에 성공한 후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정희산업 사장은 삼성전자가 지원하는 모든 자금의 10~15%를 개인적으로 착복했다. 부품 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하청 업체에서 20%를 되돌려 받았다. 또한 본국 송금이나 제3국 교역을 통한 상당한 자금을 사장의 차명 계좌로 빼돌렸다. 임금도 낮았다. 불만을 제기하는 노동자들은 중국 공안을 매수하여 조용히 해결했다. 


정희산업은 삼성전자가 처음 지원했을 당시보다 매출이 수백 배 늘었고, 일성 유한공사가 차지했던 시장 점유율의 60% 이상을 잠식했다. 정희산업의 성장은 ‘사장의 능력일까, 삼성전자의 힘일까.’ 역자는 묻는다.


정희산업 사장의 통치술은 프레이저 보고서에 나타난 것을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로 재현된 것과 같이, 주변의 참모들을 경쟁시키며 재벌 오너의 왕국을 꿈꾸었다. 정희산업 사장의 비극적 종말 뒤에도 그의 경영술을 이어받은 군사 정부는 기업에 정치자금을 강요하는 습성이 오랫동안 우리의 정치를 불신하게 했다. 


군사 정부를 오랫동안 용인한 덕에 최첨단의 전자 장비를 가진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힘을 내어 오른 정상은 예전에 없던 정자도 있고, 사방이 잘 보이는 전경이 펼쳐진다. 가까운 북쪽의 저수지는 최근 출렁다리로 유명한 마장 공원도 보인다. 미세먼지가 있어 뿌연 하늘이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저 멀리 한강이 반짝이며 흐르는 것도 보인다. 


정상에 오르면 오르는 수고에 비례해 바라보는 전망에서 큰 보상을 받는 듯 뿌듯함이 마음 가득하다. 집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기에 산을 찾는 듯하다. 


하산은 오르는 급경사를 피해 서쪽의 임도 길을 따라 하산한다. 응달의 잔설이 녹은 부분은 진창길로 미끄러워 조심조심 내려오며 저 아래 보광사 전경을 바라본다. 양지바른 숲속에 포근히 담긴 산사의 풍경이 평화롭다. 한 시간여의 하산길에 들른 보광사는 경기도 내에서는 제법 큰 사찰이다. 


특히 보광사 ‘어실각’은 이 근처에 조선 최장수 임금인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소령원’이 있어, 영조가 보광사에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신 어실각을 짓고 이곳에 최씨의 위패를 모시고 숙빈을 위한 명복을 빌도록 했으며, 어실각 옆의 향나무를 직접 심었다 한다. 


그 향나무가 300년이 넘었다 하더니 어실각 옆에 비스듬히 서 있다. 또한 보광사의 대웅보전의 현판도 영조가 쓴 글이라 한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오늘도 누군가의 명복을 빌고 장례 버스가 돌아가고 있다. 돌아오는 산길에 무수히 보이는 용미리 공동묘지의 무덤들을 지나며 그 무덤들의 죽음에도 나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걸 생각하니 이탈리아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말이 생각난다.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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