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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21) - 불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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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불곡산이다. 
3월은 개인적 행사가 많아 토요일의 동기들과의 산행에 거의 참석하기가 어려운 사정으로, 불곡산을 추천한 친구와 일요일 같이 가기로 하였으나 토요일 저녁 갑자기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할 수 없이 혼자 가려는데 집사람이 시간을 조정해 같이 가겠다고 나선다.

 

처음 가는 산이라 험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데 선뜻 나서주는 집사람이 고맙다. 노년에 그래도 산 가는 취미가 같아서 같이 갈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간단한 음료를 챙겨 출발, 양주 시청 주차장에 차를 대니 바로 불곡산 등산로 입구라는 팻말이 보인다. 양주 시청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흙산으로 동네 뒷산의 오솔길처럼 한가롭다. 처음 가는 산이라 인터넷으로 찾아본 정보에는 불곡산은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도락산과 더불어 둥글게 자리 잡은 양주 분지의 중심부로, 이런 지형적 여건 때문에 고구려는 불곡산 능선을 따라 9개의 보루 성을 쌓았다 한다. 


보루 성은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돌로 쌓은 작은 산성으로 주봉인 상봉(468m)이 6보루, 상투 봉이 7보루, 임꺽정 봉(445m)이 8보루라고 한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이정표에 임꺽정 생가로 가는 표지판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불곡산엔 조선 시대 의적(義賊) 임꺽정이 태어나 활동하던 청석골과 임꺽정 봉이 있다. 젊었을 때 벽초 홍명희의 장편 소설 ‘임꺽정’을 7권까지 읽다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홍문관 교리 ‘이 장곤’의 귀양과 도망, 고리백정(유기 만드는 천민)의 사위로서의 피신과 중종반정에 다시 양반으로 관직에 복귀 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분이 엄격한 조선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벽초의 상상력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였으나, 그 후 역사책에서 실존 ‘이 장곤’의 행적을 읽고는 벽초의 해박한 지식에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소설 속의 ‘이 장곤’은 최소한 실존 인물이나 고리백정의 딸 ‘봉단’이 정경부인까지 오른 것은 벽초의 상상인지 사실인지 지금도 그 점이 궁금하다. 소설 속 허구는 어디까지일까?


일제 강점기,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린 벽초는, 금산 군수를 지낸 아버지가 경술국치에 자결까지 하며 항일을 당부했다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중추원 벼슬을 받아 친일 행적을 이어간 가문의 행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그 스스로 월북 작가로 북에서 정권에 기대어 권력 속에 산 그의 삶은 임꺽정이 그린 세상을 꿈꾸기라도 했을까. 


뒷산 오솔길 같은 길가의 나뭇가지들은 따스한 햇볕을 받아 어느덧 겨울눈을 싹 틔울 준비를 하는지 물오른 듯한 생동감에 차 있다.


어느 정도 오르다 보니 막걸리를 파는 산등성이 주막이 나오고 그 뒤로 산세가 바뀌고 험한 바위 봉들의 거친 길이 나온다. 준비 운동 같은 산길을 걷다가 본격적 산행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좌측으로는 저 멀리 고령산 앵무봉도 보이고 남으로는 사패산과 오봉 능선, 또 그 멀리 북한산 백운대, 동쪽으로는 소요산도 어렴풋이 보인다.

 

펭귄 바위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불곡산 정상인 상봉이다. 상봉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임꺽정 봉으로 길을 나서니 이곳부터는 오르내림이 심하다. 급한 내림과 오름을 반복하여 지나는 경치는 절경이다. 


산에 가며 느끼는 생각 중에 보이는 절경이 너무 좋아 핸드폰을 들이대고 찍어보면 내가 보고 느끼는 감흥이 그대로 나오지 않아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든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의 아슬함이나 아찔함, 눈 앞에 펼쳐진 웅장함 등을 표현하기에는 내 사진 기술이 너무 미미한 듯하여 가능하면 그 순간의 느낌을 내 가슴에 꼭꼭 눌러 담고 오래 바라보길 좋아한다. 

 

 

다시 급경사를 내려와 임꺽정 봉을 향해 오르기 전, 집사람과 따스한 양지의 벤치에 앉아 가져간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이 많은 사람이 산을 찾는데, 홀로 그것도 여성 혼자서도 나서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고 하니, 집사람은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혼자 산을 찾기도 한다며 본인의 경험에서 배운 산의 마음 치유능력에 높은 점수를 준다.

 

살다가 뜻밖의 불행과 맞닥뜨려 방향 잃고 헤매는 인생 전환기의 방황하는 영혼을 포근히 품어주는 것 중에 산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은 많은 사람이 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사람이 법륜 스님의 법문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하나의 문이 닫히면 그 반대편에 또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닫힌 문만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다. 우리 앞에 또 하나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그때는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힘으로 또 다른 문이 열려 있는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 겨울의 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불필요한 것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비워내고 이듬해 화사한 꽃을 피울 눈을 조용히 틔운다.  겨울이 죽은 듯 보이는 끝인 동시에 또 다른 봄의 보이지 않는 시작인 것처럼, 멈춤으로써 새 문을 발견하고, 비움으로써 새 삶을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지혜를 산에서 배우는 것이다. 


다시 힘내어 바위 암벽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임꺽정 봉이다. 오른쪽 산 밑의 야산은 넓은 공원묘지라 자연 풍광에 약간 거슬리지만 그래도 서울 가까이 이렇게 호젓한 숲길과 암벽의 아슬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산이다. 하산길에는 암벽의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바위들이 여럿 있다고 하여 기대하며 내려왔는데 암벽은 사라지고 호젓한 흙길의 하산길 연속이다. 


아! 길을 잘못 들었다. 인생도 그렇듯 계획대로 되는 삶이 얼마나 되나. 처음 간 불곡산의 매력을 한 번에 다 보여주기 싫은가 보다. 그래도 대교 아파트 안내판을 따라 내려오는 숲길은 많은 굴참나무와 깊은 계곡으로 어우러져 봄날의 따사로움이 시원한 계곡물 소리와 함께 봄을 느끼기엔 충분한 날씨다. 


숲을 벗어나 길 가까이 내려오자 농장의 거름 냄새가 피어나며 밭두렁 가에는 벌써 초록이 가득하다. 농장의 흰둥이 개가 한가로이 누워있는 농장 담장과 밭 가장자리는 꽃다지와 냉이, 쑥과 민들레, 또 이름 모를 풀들이 초록빛을 반짝이며 오르고 있다. 


이곳은 이미 봄이 왔다. 농장 입구에는 ‘양봉 분양’이라는 판매용 현수막도 보인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목가적 산길을 따라 3시간여의 산행에도 계절을 느끼며 날씨를 느끼며 오늘 살아있음을 느낀다. 


차 길에 내려서서 정류장을 바라보며 내려온 곳을 뒤돌아보니 저 멀리 불곡산 상봉과 임꺽정 봉이 한눈에 들어오며 지나온 능선이 다음 산행을 기대하게 한다. 다음에는 인터넷에서 보았던 악어 바위 능선과 임꺽정의 청석골도 찾아보고 싶다. 예정된 코스에서는 벗어나 길은 잘못 들었지만, 집사람과 함께한 오늘의 불곡산 인상이 너무 따스했다. 


이런 날은 한동안 유행한 드라마 ‘도깨비’의 명대사 하나 인용하기 좋은 날이다.


“아내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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