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3.10 (화)

  • 구름많음동두천 3.2℃
  • 맑음강릉 6.6℃
  • 맑음서울 4.8℃
  • 맑음대전 4.1℃
  • 연무대구 4.8℃
  • 연무울산 6.8℃
  • 맑음광주 3.3℃
  • 맑음부산 8.2℃
  • 맑음고창 4.1℃
  • 맑음제주 6.9℃
  • 맑음강화 3.9℃
  • 맑음보은 1.7℃
  • 맑음금산 1.7℃
  • 맑음강진군 5.4℃
  • 맑음경주시 5.2℃
  • 맑음거제 6.6℃
기상청 제공

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23) - 도봉산

URL복사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일명 ‘불수사도북’으로 불리는 강북 5 산 중의 하나인 도봉산이다.
서울 서쪽에 주로 살고 있어서 동북쪽 산에는 가까이 갈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동기 산행모임이 이번 주 산행을 도봉산으로 정하여, 쉽지 않은 기회로 모임 장소인 도봉산역까지 한 시간 반의 전철 길도 멀다 않고 나섰다.


11시 집합 시간의 도봉산 입구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다. 전철역에서 도봉산 국립공원 입구까지는 등산용품 상점과 식당 등으로 통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복잡한 상점가를 지나 도봉산 탐방센터 입구에 선다. 입구에 있는 광륜사 절 앞에서 구한말 정치사에 큰 영향을 끼친 조대비 신정왕후의 별장터였다는 안내판도 보며 산행 준비를 다시 점검하고, 사람들이 많은 도봉계곡을 피해 한적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산악 대장에 의하면 둘레길로 진행하다가 다락 능선을 따라 해골 바위를 거쳐 포대 정상과 와이 계곡을 지나 신선대에 오르는 코스에 대한 설명이 따른다.


한적한 길임에도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주말마다 내린 비의 영향인지 초록은 이미 푸르고 앙증맞은 새싹들의 연두 초록빛 향연이 싱그럽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청량하다. 봄의 전경을 따라 부부산행과 친구 산행이 숲속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는 모습도 정겹다. 차로 지나다니며 바라보던 것보다는 의외로 숲 공간이 넓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던 초입의 사람들이 하나둘 터를 잡고 앉으니 높이 오를수록 길은 호젓해진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우이동 계곡이 그렇게 유명한 게 이해가 간다. 다락 능선으로 올라 암벽 사이를 오르면서 바라보는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의 경치는 절경이다. 구비 마다 바뀐 위치에서 바라보는 도봉 삼봉의 거대함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경탄하며 오르는 산행 또한 등산의 묘미가 아닌가.


망월사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에서 자리를 잡고 가져온 점심을 먹는다. 해골 바위도 보이고 높은 곳의 초록에 묻힌 망월사 전경이 티벳 어느 곳의 사원처럼 신비롭게도 보인다.


젊은 날엔 많은 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거머쥐면 행복할 거라 믿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무엇을 더 가진다고 삶이 풍성해지진 않았다. 외려 치열한 삶에서 멀어진 지금 많은 걸 포기함으로써 삶은 풍성해진다는 것을 안다. 욕심을 덜어내고 어리석은 일을 피하며 소박한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이렇게 친구들과 산에서 점심을 먹으며 바라보는 망월사의 전경, 이것이 행복이다.

 

혼자만 불행을 피하려고  전전긍긍하고,  혼자만 행복해지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비루한 것이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집사람과 친구들과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 일상의 이 작은 기쁨, 공기, 빛, 시간조차도 감사하고 싶다.


다시 오르는 다락 능선은 험하다. 점점 가까워지는 도봉 삼봉의 거대함과 그 밑에서 매달려서 암벽을 타고 등반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래와는 또 다른 세계, 암벽의 세계를 나는 모른다. 그 아슬아슬한 또 다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옆으로 하고 드디어 오른 곳은 포대 정상. 화창한 하늘을 마주하고 사진 한 장 찍는다.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持續)되기를 바라면서.


등산 대장의 계획대로 오른 포대 정상은 주말에는 일방통행의 와이 계곡을 통과하기 위해서란다. 그 말로만 듣던 와이 계곡. 입구에 도착하니, 한 무리 아주머니들이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안내에 돌아서고 있단다. 그래도 올라오신 포대 정상이니 안 가보셨으면 꼭 한번 경험해 볼 만 한 곳이라 강력추천하며 같이 통과, 지나보니 정말 잘했다는 감사의 인사도 들었다. 데크 길이 깔려 안전하다고 들었는데 와 보니 데크를 설치할 수가 없는 험한 통로다.


바로 앞의 자운봉을 보며 내려가 다시 그 옆의 신선대를 오른다. 자운봉을 오를 수 없으니 오를 수 있는 신선대에 올라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을 바라보며 정상의 성취감을 맛본다.


오늘은 몇 주 전, 송추 계곡을 따라 오봉 방면에서 올 때보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그리 붐비지 않고 올랐다. 주말에는 신선대 오르기가 정체 구간일 정도로 사람이 많이 붐비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정상에 선 사람은 스스로 내려갈 줄을 알아야 한다.


자운봉 밑으로 난 계단 길을 따라 다시 마당바위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심하다. 오르는 수고에 비하면 내려가는 것은 수월하니 안전에 유의하라는 산악 대장의 당부를 따라 천천히 하산한다. 수십 년 산 사나이로 살아온 산악 대장의 세심한 안내는 언제나 산행모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급경사를 내려오다 마당바위를 지나면서는 다시 완만한 숲속의 호젓한 산길이다. 산행의 즐거움은 산과 만나는 것이다.

 

산은 음악과 같다.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호젓하지 않으면 산을 느낄 수 없다. 험한 바위를 지나 정상에 설 때는 호연지기를 느끼지만, 역시 산은 산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초록과 그늘은 우리를 위한 것. 살아 있는 건 다 눈부시다.  산벚나무, 복사꽃, 진달래, 산 목련 등과 이름 모를 꽃들이 자기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며 자라고 있는 모든 모습. 돌보는 이 없어도 때가 되면 알아서 잘 자라는 건 눈물이 날 만큼 고맙다.


한참을 내려온 개울가의 흐르는 물이 맑다. 맑은 개울물에 벚꽃잎이 한가득 담긴 곳도 있다. 산행에 힘든 발을 개울물에 담그니 머리가 깨질 듯 정신이 번쩍 난다. 벚꽃잎 웅덩이는 발의 피곤함을 포근히 풀어주며 거친 산행의 수고를 덜어준다.


아! 산행의 피곤함이 저만치 물러간다.
다시 힘을 내어 내려오는 길, 구봉사 절 옆의 복숭아 꽃이 너무 화사하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에 복사꽃이 만개한다더니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싶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다시 하산하는 등산객이 많아지고, 앞서가는 사람이 이번 서울 시장 선거결과 이야기로 시끄럽다. 난 서울 시민이 아니니 큰 관심이 없으나 관념의 차이는 참 큰 것 같다.


사람들은 세상이 합리적이며 삶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다. 삶은 공정하지 않으며 세상에는 부조리가 널려있다. 그 부조리하며 불공정한 세상에서 누구도 남이 아닌 나를 살아가는 것이며 또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 삶에서 일 하나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있겠지만, 인간과 인생 전체를 놓고 그 시비를 가리기란 어렵다.


또한 지나간 일의 진위를 가리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가 어찌 가벼이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존 스튜어트 밀이 갈파한 것과 같이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오늘은 산이 내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강도(强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사람을 잡으면 자기 침대로 데려가 침대보다 크면 자르고, 작으면 늘려 죽였다는 노상강도,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 우리는 내가 옳다며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를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커버스토리】 美-이란 전쟁, 韓경제 ‘퍼펙트 스톰’ 우려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 이란을 전격적으로 공습하면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순식간에 고조되고 있다. 이 여파로 한국 경제 역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란의 군사적 대응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국제 유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이는 곧 한국의 내수와 수출 모두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중동 지역 불안정성이 한국 경제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수출입 동향을 꼼꼼히 살펴 필요시 지원대책도 즉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주목”…국제 유가 ‘초긴장’ 이란 공습사태는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전 세계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원유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어서, 공급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 유가가 더욱 치솟고 있다. 기름값이 인상되면 자연스럽게 운송비와 생산비도 따라 오르기 때문에 기업들은 비용 부담이 커져 결국 소비자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은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동 불안정은 금융시장에도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요즘 원·달러 환율 역시 출렁이고 있는데, 한국처럼 수출에 많이 의존하는 나라에서는 환율 변동이 심

정치

더보기
오세훈, 국민의힘의 윤석열과의 절연 결의문에 “감사하고 다행...선거 최소한 발판 마련”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의결한 것에 대해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지지 입장을 밝히며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임할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했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은 9일 서울특별시청 인근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의 이날 결의문 채택에 대해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수도권에서 도저히 선거를 치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민심이 우리 당에는 적대적이었다”며 “계엄을 둘러싼 우리 당의 명확한 입장 표명, 그리고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당 지도부의 노선 때문에 많은 국민이 우리 당의 진로에 대해 걱정하시고 지지를 철회하는 일들이 생겨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제 비로소 저희 당 입장에서는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드디어 이제 변화가 시작됐다”며 “결의문이 선언문에 그치지 않고 하나하나 실천이 돼서 다시 우리 당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국민의힘의 이번 지방선거 공천 신청 기간인 3월 5∼8일 공천 신청을 하지

경제

더보기
이번 주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이재명 대통령 “최악 상황 염두에 두고 대응책 마련해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이번 주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다. 정부는 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 회의를 개최해 이같이 결정했다.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 실장은 9일 청와대에서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 회의 결과 브리핑을 해 “이날 회의에선 석유제품의 비정상적 가격 결정을 방지하고 가격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가격제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며 “산업통상부에서 석유사업법에 근거해 이번 주 내로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고시제정 등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우선 국내 석유제품 가격과 관련해 3월 7일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889원, 경유는 1910원으로 중동 상황 발생 후 구매 물량이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폭으로 상승한 원인과 대책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있었다”며 “정부는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가격을 올릴 때는 빨리 올리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리는 비대칭성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최고가격제 시행 시기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이를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사회

더보기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전국 15개 공항 하청·간접고용 노동자 "원청 교섭 나서라"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10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첫날에 전국 15개 공항의 하청·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교섭을 촉구했다.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10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투쟁선포 결의대회를 열고 원청인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에 교섭 참여를 요구했다.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2024년 무안공항 참사를 계기로 안전한 공항을 조성하기 위해 인천과 김포, 제주 등 전국 15개 공항 노동자들이 지난해 3월 발족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전국공항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로 이뤄졌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하청 및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노조법이 오히려 공항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억압하는 구실로 이용됐던 참담한 현실을 이제는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인천공항지역지부(지부장 정안석)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는 이날 인천공항공사에 교섭을 요구했다. 노조 관계자는 "하청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과 직접 대화하고 교섭하는 것은 이제 흔들릴 수 없는 법적 권리"라며 "인천공항공사는 모회사의 책임을 다해 교섭 테이블

문화

더보기
【레저】 낭만의 요트 투어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육지에 서서 보는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요트를 타고 제주를 일주하거나, 속초 앞바다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요트 체험, 지중해를 돌아보는 럭셔리 요트 투어들은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섬과 섬 사이의 바다 풍경 요트를 타고 제주 해안을 한바퀴 도는 해상 둘레길이 만들어진다. 제주도는 제주 해안을 연결하는 해상 코스 ‘제주바다 요트둘레길’을 구축해 해양관광의 새로운 상품으로 육성한다고 밝혔다. 요트둘레길은 주요 항·포구와 마리나를 거점으로 요트를 타고 제주를 일주할 수 있도록 하는 체류형 해양관광 콘텐츠다. 육지에서 보기 어려운 해안 절경과 오름, 주상절리, 섬과 섬 사이의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요트 체험과 함께 지역별 특색을 반영한 기항지 관광, 숙박·미식·문화 프로그램, 선셋 테마형 코스 등 다양한 해양관광 모델을 정착시킬 계획이다. 주요 거점 항포구에서는 마을회, 어촌계, 지역 관광업계가 참여한 해녀문화체험과 어촌마을 식도락 체험 등 지역자원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올해 세부계획을 수립한 뒤 항·포구 마리나시설 확충공사 등을 거쳐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분노를 잠재운 적절한 리액션과 공감의 힘
갈등의 시대, 우리는 왜 먼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지 못하는가.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 30분경, 오이도에서 진접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4호선 안은 여느 때보다 고단한 공기로 가득했다. 출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노인석 주변은 빈틈없이 붐볐고, 연로한 분들이 서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정류장에서인가 붐비는 노인석의 중간 한 자리가 나자마자 한 어르신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채 두 정류장을 가기도 전에 깨졌다. “아 XX, 좀 저리로 가라고!” 먼저 앉아 있던 노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과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좁은 자리에 가방까지 메고 끼어 앉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 앉은 이는 “나도 앉을 만하니 앉은 것 아니오”라며 항변했지만, 쏟아지는 폭언 앞에 결국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 X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자리를 뜬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험악해진 분위기 탓에 어느 누구도 그 빈자리에 선뜻 앉지 못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지라퍼 계열인 필자는 객기 부리듯 용기를 냈다.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화를 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