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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27) - 소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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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소요산이다. 오늘 오후의 동기 산행 모임은 인왕산 경유 안산 코스이나, 인왕산은 몇 번 칼럼 소재로 사용하여 더 이상의 칼럼이 부담스러워, 개별 산행의 강화도의 ‘마니산’ 산행을 며칠 전 집사람과 계획하였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위치 확인차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코로나 19로 3월부터 등산이 금지되었다 하여, 급히 소요산으로 변경하였다. 개별 산행이라 집사람이 지인인 같은 아파트의 식물 박사 선생님을 초대, 3인이 소요산으로 향했다. 나도 최근 산행 중에 만나는 꽃들을 보며 꽃 검색 앱을 이용하여 숲을 구성하는 식물들의 이름을 알아가고 있지만, 너무 짧은 지식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기대가 컸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일주문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는 계곡 길부터 맑은 물소리가 시원하다. 소요산은 산세가 웅장하진 않지만 아슬아슬한 칼바위능선과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경관이 좋다. 그리고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또한 아름답다. 한여름에는 등산로 입구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오대산 소금강처럼 소요산도 산세가 수려해 경기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려 김시습, 양사헌, 이율곡, 성혼, 허목 등 유명한 선비들이 이 산을 찾아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한다.


오르는 초입부터 원효와 요석공주의 스토리텔링이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내가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파계하여,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난 그의 아들이 신라 10대 현인 대열에 든 설총이라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원효가 이곳 ‘자재암’에서 수행할 때 요석공주가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기거하며 원효가 수행하는 곳에 예배를 올렸다는 요석궁의 전설도 서린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원효 폭포와 원효 굴이 반긴다. 요즘의 잦은 비로 수량이 풍부한 원효 폭포가 시원하다. 원효가 지어 수행했다는 ‘자재암’은 깊은 계곡의 벼랑 밑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깊은 계곡으로 느껴지는 자재암 터의 좁은 계곡을 지나 가파른 계단 길로 ‘하백운대’를 오르며,  오래전에 읽었던 한승원의 소설 ‘원효’의 내용이 떠오른다. 


그 당시 학승으로 유명했으며 불교에 귀의한 원효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 떠받칠 기둥을 만들기 위해 파계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며, 차라리 태종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가 과부의  몸으로 임신을 하자, 요석공주는 왕의 수치로 죽을 몸,  해골 물에서 해탈한 원효가 요석공주를 살리기 위해, 그런 노래를 부르고 파계를 당연시했다는 게 줄거리다. 


생명과 반전(反戰)을 주장한 원효는 그러기에 당시의 권력과 멀어지고, 그 후 원효는 요석궁을 다시 찾지 않았고,  원효가 한 번도 찾지 않은 설총은 원효를 미워하지 않고 사후에 원효의 장례까지 모셨다고 한다. 


‘하백운대’까지 오르는 길은 가파른 계단과 급경사 길로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한다. 한참을 지나 하백운대 봉우리에서 한숨을 돌리며 가져온 음료와 간식을 먹는다. 다시 힘을 내어 능선 길을 걸으며, 떨어져 있는 때죽나무꽃과 쪽동백꽃의 차이점을 들으며 오르다 보니 처음 보는 하얀 꽃봉오리가 눈에 띄었다. 

 


산 목련이란다. 함박꽃이라고도 하며 북한에서는 국화(國花)로 지정되었단다. 그 향기는 어느 목련도 따라올 수 없는 그윽한 향이 일품으로 식물 박사 선생님도 식물도감에서만 보았던 함박꽃이 처음이란다. 


귀한 꽃을 만난 흥분으로 사방을 둘러보니, 층층나무꽃, 신나무꽃, 찰피나무, 피나무, 쇠물푸레나무, 천남성, 우산나물, 민백미꽃도 찾았다. 주위를 돌아보며 하나하나 이름으로 다가오는 식물들을 확인하며, 자연과 숨 쉬는 숲의 모습이 그저 관념의 숲이 아니라 내 주위에 언제나 볼 수 있는 일상 환경으로서의 숲으로 재탄생 되는 듯하다.


그 많은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를 들으니, 알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의 남다름을 느꼈다. 역시 세상은 관심 있는 만큼 알게 되고 또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등산을 하며 산을 오르는 즐거움에 정상을 향하고, 정상이 곧 산으로만 알았는데, 이런 이분법적 생각이 얼마나 단순하며 유아(幼兒)적인 것인지 산을 경관으로만 보았던 지난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숲속의 생명을 하나하나 알아가면 산의 또 다른 무늬들이 비로소 보이며 산이 품은 숲의 신비가 조금씩 품을 열어주는 것 같아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화창하던 날씨가 칼바위 능선을 지나면서 조금씩 비를 뿌린다. 시원함을 느끼며 다시 경사를 오르며 ‘나한봉’을 지나 또다시 경사 심한 계단을 통해 최고봉인 의상대(587m)에 선다. 안내도에는 조선 태조가 소요산에 머물면서 최고봉에 원효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의 이름을 붙였다 하는데, 원효가 기거하던 산인데 이성계는 왜 제일 높은 봉에 원효대(臺)가 아니라 의상대라 지었을까? 역시 금수저의 세계는 금수저 우선인 것이 고금의 진리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든다.


의상대를 내려오며 약간 굵어진 빗줄기를 피해 숲속 바위에 앉아 가져온 과일과 따스한 커피를 마신다. 입안에 퍼지는 커피 향과 숲에서 나는 숲 향기가 어우러져 주변이 향기로 가득하여 평화로운 느낌이다. 식물 박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삶의 향기를 더한다. 이분은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정년 퇴임하면 어떻게 정년 이후를 보내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숲 해설사로 봉사할 것을 생각하고 몇 년 전부터 식물도감을 보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구별이 어려웠지만, 꾸준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조금씩 주변의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면 확인하고 하는 세월에 수년이 걸렸고, 은퇴한 지금에도 앞으로도 한 십 년 이상은 더 공부할 계획으로 생태환경을 찾아 공부하고 있단다. 


은퇴 후의 생활, 나도 계속될 것 같았던 직장 생활이 어느 날 갑자기 환경이 변하더니 예상 밖의 은퇴를 하고 허탈하게 보낸 시간이 생각난다. 아무 준비도 없이 맞은 은퇴를, 남들 다하는 은퇴인데 나만 유별나게 호들갑 떨 것도 없어 담담한 듯 지났지만, 지나고 보니 준비 못 한 나의 불찰이다. 준비 없는 상황에 떨어져 방황할 때, 사람들은 아직 자아를 찾지 못했다고 종종 말하지만, 그러나 자아는 자신이 찾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란다. 


은퇴도 변화다.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말처럼, “사람들은 준비가 되면 변한다. 그전에는 절대 변하지 않고 때론 변하기도 전에 죽는다. 그들이 원하지 않으면 변하게 할 수 없다. 그들이 원하면 그들을 말릴 수 없는 것처럼”. 변화할 준비 없이 맞이한 나의 은퇴에 대한 경구(警句)다.


비가 좀 수그러든 것 같아 하산길을 내려오다 보니 갈림길을 만난다. 하산길과 공주봉 가는 길. 하, 중, 상백운봉과 나한봉, 의상봉을 거쳐 마지막 남은 공주 봉을 오르기로 했다. 공주 봉은 요석공주가 기거하던 요석궁이 아래에 있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공주 봉을 오르는 능선에서는 지나온 의상봉의 우람한 자태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이 압권이고, 공주 봉 정상에서는 동두천 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계속 내리는 비에 서둘러 하산하는 급경사의 하산길에는 자재암 골짜기의 깊은 풍광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비를 맞으며 다시 내려온 원점회귀는 계곡의 물소리가 청량하다. 통상 4시간의 산행길이 숲을 배우며 걷느라 6시간이 걸렸다. 때론 평소보다 늦은 속도의 삶도 인생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 하루였다.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가며 오늘 처음 알아본 숲의 식물들이 떠올라, 나태주 시인의 시 귀를 조용히 읊조려보았다.


가까이 보아야 예쁘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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