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광교산이다. 광교산은 수원 북쪽에 있는 산으로 수원천의 발원지이며, 북쪽에서 불어오는 겨울의 찬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 풍수지리에서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게 한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전형이다.
또한 광교산은 시가지를 안고 있는 수원의 주산으로 원래 이름은 광악산이었다 하나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산에 머물면서 군사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있었는데,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친히 ‘광교(光敎)’라고 명명했다고 고려 야사에 전해진단다.
칼럼을 쓰며, 칼럼이 나오면 지인에게 보내주며 안부를 물은 지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수원에 사는 지인과 서로 안부를 묻다가 부부 동반 산행을 한번 하기로 하였으나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현충일인 일요일, 광교산 산행을 하게 되었다.
약속 장소인 지지대 고개의 프랑스군 한국전쟁참전비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정조 대왕의 효행을 기리어 조성했다는 효행 공원을 둘러보니 정조대왕 동상이 있다.
조선 후기 왕권 강화에 노력해온 정조가 화성을 건설하고 화성에서 군사훈련을 지휘하였던 화성 행차도 이 지지대를 통과하였다. 역시 수원은 역사적으로 정조대왕과 화성, 융건릉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이다.
산행은 지지대에서 능선을 타고 오른다. 헬기장을 거쳐 통신대를 지나 노루목과 정상인 시루봉으로 향하는 길은 거의 능선길로 이루어져 있으며 능선인데도 키가 큰 나무들이 울창하며, 특히 소나무 숲이 그 푸르름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어, 햇살을 피해 등반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길가에는 키 작은 싸리나무가 연분홍빛 꽃들을 반짝이고 있다.
지인과는 30대 초반의 중소기업 연구소에서부터 만나 몇 년을 같이 근무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오고 있어, 자주 볼 수는 없었어도 오랜 시간을 서로 의지하고 응원하며 30년 넘는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오랜만의 만남인지라 자연스럽게 그동안의 안부와 오산 근처에서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의 근황 등도 들으며 수원과의 인연을 추억하게 만든다. 지인과의 이야기 속에는 내 30대의 꿈도 있었고, 지인은 그의 꿈을 따라 사업을 시작해 성공과 좌절을 거치며 지금까지 수원에서 살고 있다.
인연이란 무엇인지 그 시절의 인연들이 일부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람들도 있고, 대부분은 소식을 모른다. 시절 인연이라 그땐 그 사람들이 소중했고 지금은 또 지금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소중한 거다.
통신대 헬기장을 지나고부터는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숨이 턱에 찰 만큼 오르고 나니 통신탑이 나온다. 보통은 험한 오르막을 숨이 차도록 오르면 탁 트인 전망이 그 수고를 보상해 주는데 통신탑의 전망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수원 시내가 약간 보이는 정도로, 오른쪽으로 돌면 백운산으로 간다는데 우리는 다시 노루목을 지나 능선의 오르내림을 따라 정상인 시루봉까지 오른다. 화창한 휴일이라 능선을 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드디어 오른 정상. 정상에는 시루봉 표지석과 좁은 공간에 나무 테크를 깔아 넓게 해놓았다. 정상의 풍경도 생각보다 시야가 넓지 않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광교산은 경기대학교에서 오르는 코스의 전망이 좋아, 대부분은 경기대학교 쪽 능선을 따라 형제봉까지, 또는 형제봉을 거쳐 정상인 시루봉까지 오른다고 한다.
우리는 한옆에 자리를 잡고 가져온 간식을 먹는다. 지인 부부는 수원에 살며 자주 광교산을 오지만 굳이 정상에 오를 생각 없이 아래를 돌다 가곤 하니 오랜만에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그 말에 갑자기 나무 의사 우종영 선생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속의 글이 생각난다.
“산을 오르는 것은 인생을 사는 것과 닮은 듯하다. 그저 정상에 오르려고 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산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천천히 음미하듯 걸음을 떼면 빨리 걸을 땐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사는 사람은 굳이 정상을 가지 않아도 자주 가기에 그 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을 안다. 마치 인생의 목표가 성공에 있지 않고 매일 매일의 일상이 소중한 사람들처럼.
오랜만의 만남에 지인이 점심을 사겠다고 하여 서둘러 노루목을 다시 돌아 짧은 상광교(上光敎) 종점 코스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경사 깊은 계단 길로 숲이 울창하고 소나무 숲도 많이 우거져 있다. 숲을 감상하며 내려오다 보니 사방댐 근처에는 뱀이 바위 위에서 꽈리를 틀고 있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킨다.
상광교 종점 근처는 음식점이 많아 가족들과 놀러 나온 상춘객이 많다. 택시를 타고 동수원으로 나오는 길에도 광교저수지를 품은 유원지의 풍경이 한가롭다. 뒤로 보이는 광교산을 바라보며 나무는 추억을 기억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에 읽었던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씨의 태안의 주엽나무가 생각났다.
충남 태안의 ‘천리포 수목원’에는 1970년대 들여와 지금까지 공들여 키우는 한 그루의 특별한 나무가 있단다. 이란의 사막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이란 주엽나무’라고 불렀지만, 최근의 국가 표준식물목록에서는 ‘카스피 주엽나무’로 정했다. 사막에서 나무가 가장 먼저 피해야 하는 건 낙타라, 결국 나무는 낙타가 다가서지 못하도록 가시를 돋아냈다.
하지만 가시는 일정한 높이부터 찾아볼 수 없는데, 그 경계는 낙타가 긴 목을 뻗었을 때 닿는 주둥아리 높이란다. 주엽나무의 경계심이 대단히 정교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곳에 자리 잡고 40년쯤 지난 2010년께부터 나무는 가시가 무성하게 돋았던 자리에서 난데없이 초록의 잎사귀들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위협이 사라졌으니 굳이 가시를 만들 필요성이 없어진 거다.
나무 의사 우종영 선생의 글에서도 우리나라 주엽나무도 환경에 따라 가시를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고 배웠지만, 뇌가 없다는 식물에 과연 지능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종의 기원’의 찰스 다윈도 오랜 식물 연구를 통해, “식물에도 하등동물 수준 이상의 인텔리전스(지성)가 있다.”고 했다지 않던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식물의 소통 방식. 지구역사 46억 년 중에서 ‘호모 사피언스’는 20만 년 전에야 등장했지만, 생명이 해양에서 육지로 올라온 식물의 역사는 4억여 년 전이라 한다. 동물 보다 앞선 식물의 소통 방식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는 한 걸까?
그다음 주, 마침 고교 친구들과의 1박 2일 태안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여행을 떠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도 둘러 보며 ‘천리포 수목원’에 들려 카스피 주엽나무를 찾았다.
가시에서 돋아나는 초록의 잎사귀를 확인하며, 미국인 해군 장교였던 귀화한국인 민병갈 박사의 천리포 수목원 설립에 관한 인생이나, 카스피 주엽나무의 환경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나 생명은 언제나 처해진 환경에 적응하여 변화한다는 명제만은 분명한 듯 보였다.
광교산 산행과 태안 여행에 함께 해주신 친구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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