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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29) - 수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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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수락산은 서울 북쪽 끝에 있으면서 의정부시, 남양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높이 637m의 산이다.

 

또한, 수락산은 서울 근교의 5대 명산으로 불리며 일명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강북 5 산) 종주 산행이 산악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어 많은 산악인이 찾아와 자연을 만끽한다. 동기 산행에서도 몇 번 오르긴 했지만, 칼럼을 위해 오늘은 혼자 가기로 했다.


지난주 장맛비로 인해, 주말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또 비가 오고 있다. 내일 일기예보도 비가 온다 하여, 할 수 없이 우산을 챙겨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나선다.


6시 이전의 전철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도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장마철인데도 서둘러 떠나는 등산인도 있고 아침 일찍 분주하게 일자리로 가는 사람들도 많다.


좋은 일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고, 더 좋은 일들은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지만, 최고의 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던데, 모두가 코로나로 힘들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침 전철에 보인다.

 


장암역에 내리니 바로 앞으로 수락산에 오르는 계곡 길이 보인다. 근처 하촌마을은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서계 박세당이 살았던 마을이다. 마을 초입 개울가 왼편에는 박세당 고택이 있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박세당과 그의 아들 박세보를 기리는 반남(潘南) 박씨(朴氏) 문중의 노강서원과 ‘청풍정’ 정자 터가 있으며, 박세당이 매월당 김시습을 기리어 지었다는 ‘청절사’의 후신인 ‘석림사’를 만난다.


석림사는 한국 전쟁 이후의 새로 창건된 절이라 대웅전 대신 ‘큰법당’이라는 한글 현판과 한글 주렴들이 새롭다. 석림사를 지나면서부터는 계곡 길로 아침에 내린 비 때문인지 물소리가 시원하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니 기차 바위와 전망대로 갈라지는 안내판이 서 있다.


수락산은 기차 바위가 유명하니 조금 돌더라도 기차 바위를 길을 택하여 오르며 10여 년 전 동기 산행 모임에서 수락산을 오르던 일을 생각한다. 그때는 동기 후배라는 사람도 산행에 참석하여 같이 산에 올랐다. 기차 바위 앞에서는 모두 눈 덮인 기차 바위가 위험하다고 우회하는데 초보 등산객이던 집사람과 내가 아이젠을 신고 무모하게 오르던 기차 바위다. 그때 우회하던 동기 후배는 지금은 베트남 축구 감독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혼자 등산을 하며 느끼는 것은 걸으며 느리게 여행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느끼며 살아왔는지는 모르겠다. 산다는 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숨 쉬고 땀 흘리며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로 가슴으로 느끼며 사는 삶이 진정한 삶이라는 생각이 점점 깊어진다.


힘들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에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 있던가.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고 ‘침묵의 봄’에서 레이철 카슨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느낌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할수록 이념보다는 삶이, 도덕보다는 실천이 우선에 서게 된다. 그러면서 산행을 하면 ‘걷기의 인문학’ 속의 레베카 솔닛의 말이 항상 머리에 남는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의 움직임을 자극한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 가지 방법이다”.


힘겹게 능선을 오르니 장암역 방향이 운무에 살짝 보이며 그 앞의 도봉산은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도착한 기차 바위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7~80m 정도의 아득한 바위 경사를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한다. 아무리 성인이라도 중간 정도 오르면 팔에 힘이 빠지며 힘겨움을 느낀다. 그래도 오르는 순간의 뿌듯함이 가슴에 찬다.


겨우 올라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위 밑을 보니 바위뿐인 곳에도 하얀 꽃이 피어있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바위 밑에 꽃까지 피우다니. 대단하다!.


꽃 사진 검색을 해보니 ‘연잎 꿩의 다리’란다. 높은 바위 능선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개체군 및 개체 수가 얼마 되지 않으며, 자원 식물로서 불법 채취될 가능성도 있어 환경부가 1993년부터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단다.


살다 보면 안보인다고 보지 못하는 게 아니다. 또 본다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관심의 문제이고 여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으면 귀한 꽃이 바로 옆에 있어도 있는 줄 모른다. 


이제라도 주위를 돌아보며 있는 그대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여유라도 생긴다면,  숲의 모든 식물에게도 모두 제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나긴 생명들의 사연도 알아보고 싶다. 


기차 바위에서 정상은 그리 멀지 않다. 드디어 정상. 정상 아래는 온통 운무로 가려져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 간단히 가져온 간식을 먹는다. 언젠가부터 수락산 정상에는 막걸리와 라면,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부부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국립공원이 아니라 장사를 해도 괜찮은건지 모르겠지만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 개에 갈증을 달래고 수락산역 쪽으로 하산을 한다.


정상을 조금 내려온 중턱에서 커다란 바위를 뚫고 우뚝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수십 년을 견디며 바위에 뿌리를 내렸을 소나무를 보며, 외 딴 곳에 홀로 자라는 나무는 곧게 자라지 못하고 깊게 자란다는 말이 생각났다. 홀로 바위 속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였을 그 소나무의 치열함이 가슴을 친다.


하산하다 길을 잘못 들어 학림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주위에 물어보니 당고개역으로 가는 길이라 하여 그대로 하산한다. 거의 다 내려온 길에 한옆으로 고즈녁한 학림사 절이 나온다. 처음 들어본 사찰인데 원효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라 한다.


일주문은 없고 계단 위로 해탈문이 있다. 해탈문 양옆에는 4대 천왕의 그림 앞에 문수 동자와 보현 동자가 코끼리와 용을 타고 있는 조각상이 있고, 그 위에는 학포지란형(鶴抱之卵型)의 자리에 들어섰다는 학림사라서인지 그 위로 청학루(靑鶴樓)가 자리하고 그 일 직선상 위에 대웅전이 있다. 계단을 중심으로 일직선의 가람 배치다. 역시 수락산도 천여 년 전의 고찰을 품고 있는, 옛 선인들도 인정하는 명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천년 사찰이라는 세월의 무게에 절 구경을 해본다. 대웅전 옆으로는 커다란 노송이 있고 그 옆에는 인자한 얼굴의 미륵 석불이 서 있다. 인자한 미륵불의 얼굴에 기대어 지나온 내 삶을 반추해 보았다.


지나온 추억은 아름답고 쓰라렸다. 환하던 시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고 부끄러운 업보는 삭제가 불가능(不可能)하다. 어찌할 수 없는 인연들의 소용돌이, 그래서 미륵불에 합장하며 조용히 반야심경 한 구절 읊조려 본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우리 함께 저 언덕으로 가세 속히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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