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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재 칼럼

【허연재의 미술 인문학 칼럼】 자신의 에고(ego)에 집중한 파울라 모더존-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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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허연재 강사 · 작가] 5월은 완연한 봄이 온 따스함이 느껴지는 달이기도 하며 가정의 달이니 만큼 가족 행사나 프로모션이 많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인다. 가정의 달은 20세기 중 후반 점차 핵가족화 되어가는 현상 속에서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자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가정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여 만든 작은 사회이며,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점차 나노 (nano) 사회로 변해가는 사회적 현상 속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나 공동체적 유대감이 저하되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하는 개인의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매년 초에 출간되는 트렌드에 대한 도서들도 개인화에 중점을 둔다. 타인 혹은 공동체에 나를 흡수시키기보다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요즘이다. 


근대 미술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는 주체성에 집중하며 내가 그리고 싶은 주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한다. 서양 근대 미술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이름들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폴 고갱 등이 있다. 하지만 파올라 모더존-베커의 이름은 아직도 생소하다. 그녀는 31세의 나이로 산후 색전증으로 사망하면서 다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으며 미술사에서도 굵직한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 묻혀 잊혀졌다.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는 독일 표현주의 작가이며 대부분 아이들과 여성의 누드화를 그렸다. 그녀는 최초로 자신의 누드를 자화상으로 그린 여성 화가이기도 하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흥미를 가지며 자라났다. 청소년 시기에 런던 세인트 존스 우드 아트 스쿨에서 드로잉 수업을 받았으며 그 이후에도 회화 사교육을 받으며 미술 재능을 갈고 닦았다. 1900년 파리에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인체 구조 드로잉을 배우게 된다. 파리에서 재학중이던 아카데미 콜라로시는 여성 화가들에게도 남성 누드 모델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파울라에게는 인체 묘사를 더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유럽 예술의 중심이 되어버린 파리의 매력에 빠지게 되며, 자신의 연인이며 화가이던 오토 모더존까지 파리로 초대한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던 모습에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파울라의 아버지는 미술 작업이나 수상에 연연하지 말고 남편에게 신경을 쓰라고 조언을 한다. 하지만 1902년 그녀는 “내 경험상 결혼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어머니에게 “나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라는 편지를 남기며 작업 활동을 이어 나갔다.

 

 


파울라의 그림은 여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랑스러움이 배어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보통은 어린 아이들이나 여자 인물을 표현할 때 매끈하고 흰 피부나 예쁜 드레스 차림으로 표현하지만 파울라는 투박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소녀 같은 이미지를 추구했다. 파울라가 그린 어린 아이들은 목각 인형 같이 뻣뻣한 느낌도 든다.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격체를 표현하는 듯하다. 이와 상반되는 스타일로 영국 고전주의 작가 조슈아 레이놀즈는 그림 속 어린 아이를 성인 같이 우아하게 꾸며 연출했다. 아카데미 스타일의 표현법과 파울라의 표현주의 스타일을 비교해보면 아이라는 동일한 주제지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점이 흥미롭다.


파울라 그림의 시각적 특징은 흙 느낌이 도는 색감들과 두껍게 바른 물감의 질감이다. 평면 작품이지만 두껍게 바른 물감은 흙을 빚어 만든 세라믹을 연상케 한다. 그녀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폴 세잔,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의 가감 없는 두꺼운 레이어의 물감 표현 기법에 감명을 받았고 자신의 회화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파울라가 그린 여성은 강직하면서도 텁텁한 인상을 준다. 이렇게 재현된 여성의 나체는 에로틱한 감상을 하는데 한계가 있기에 남성 화가들이 주로 그린 여성의 누드화 하고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파울라의 자화상인 <왼쪽 손으로 들고 있는 두 꽃송이>를 보면 오른손은 비율적으로 왜곡되게 크게 그려져 있으며 자신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댄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그녀가 임신을 한 상태의 모습을 보여준다. 눈 두덩이는 마치 눈병이 난 듯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왼쪽 손에 들려 있는 두개의 꽃은 연약함이나 생명의 유한함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뻣뻣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속 그녀의 모습은 생명을 잉태한 여성의 강인함과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듯하다. 명확한 아웃라인, 단순한 형태와 땅의 거친 느낌은 폴 고갱의 원시적인 표현법에서 영향을 받은 점이 확연하게 보여진다.


어머니와 아이를 함께 표현한 <누워있는 엄마와 아이II>는 산처럼 풍만한 풍채를 가진 어머니와 대조적으로 작은 갓난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 속 여성의 몸은 대자연의 산 같은 느낌을 준다. 나체는 산의 능선처럼 굵은 곡선으로 표현되었으며 피부 톤 역시도 초록색의 피그먼트로 채색되어 아름다운 한 여성의 모습이 아닌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넓은 품은 갓난 아이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세계의 전부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꼭 안겨 그 어떤 위험에서도 보호를 받는 안정감을 준다.

 

 


파울라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푸근한 여성의 이미지와 독립적인 이미지를 함께 느끼게 해준다. 그녀는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작품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미술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나갔다. 둔해 보이며 둥글둥글한 이미지의 작품들이 놀랍게도 당시에는 위협적인 작품으로 여겨졌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녀가 그린 여성들의 이미지가 위험하다고 간주했다. 그는 1937년 여성 작가를 위한 최초 파울라 미술관을 개관하여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것에 반대하기도 하며 미술관 전시, 프로그램에 위협적인 제재를 가하기도 하였다. 사회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은 기존의 틀을 위협한다고 여기는 것이기에 그만큼 여성 화가라는 점과 그녀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획기적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울라는 자신이 좋아했던 여성, 아이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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