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라인으로 디지털 시대 ‘감각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세계 최초의 구독형 아트스트리밍 플랫폼인‘워치 앤 칠’ 두번째 전시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을 9월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고 있다.
디지털 시대 ‘감각’으로 연결되는 동시대적 교감을 매개로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오프라인 전시를 동시에 열고 각 기관의 미디어 소장품과 지역별 주요 작가 20여 명의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전시다.
‘보는 촉각’, ‘조정된 투영’, ‘트랜스 x 움직임’, ‘내 영혼의 비트’의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번 온·오프라인 전시는 기술과 인간의 감각체계 사이의 관계를 사유하며 디지털 스크린의 평면성을 넘는 다양한 공감각을 소환한다.
<워치 앤 칠>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세계 주요 미술관과 협력하여 기관별 미디어 소장품을 전 세계 구독자에게 공개하는 플랫폼이다. 지난해 개설한 첫 전시는 M+ 등 아시아 4개 기관과 협력한 첫 전시였고, 올해는 유럽과 중동, 내년에는 미주 및 오세아니아 주요 미술관들과 협력을 확장하는 3개년 기획 전시이다.
지난해 <워치 앤 칠>전은 6개월간 각 기관의 미디어 소장품과 지역 작가 작품을 온라인 플랫폼에 공유했으며 70개국 약 2만명의 사용자가 접속했다. 올해 더 많은 사용자의 접속이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에는 또 다른 주제로 다른 국제 기관들과 확장된 협업이 예정되어 있다.
올해 전시는 유럽 최대 디자인 소장품을 보유한 스웨덴 아크데스(ArkDes)와 샤르자 비엔날레, 국립건축디자인센터 등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아랍 에미리트 샤르자미술재단(SAF)이 함께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막한 오프라인 전시에서는 건축가 바래(전진홍, 최윤희)가 미디어 환경을 공기로 은유한 모듈러 구조의 건축 설치작 <에어 레스트> 등으로 감각의 지형을 체험하도록 이끈다. 또 김실비, 김아영, 마하 마아문(Maha Maamoun), 안정주&전소정, 안드레아스 바너슈테트(Andreas Wannerstedt) 등 한국과 유럽, 중동 여러 지역의 현대미술 작가, 디자이너, 창작자들이 참여했다.
오프라인 전시와 동시에 운영되고 있는 온라인 전시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서비스 구독을 신청하면 이용할 수 있다. 사전에 면밀히 선정된 ‘감각의 공간’ 주제의 미디어 작품 22점을 매주 한 편씩 한국어-영어 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
1부 ‘보는 촉각’에서는 시청각을 기반으로 스크린의 기술적 한계를 넘나드는 다차원의 감각을 탐색한다. 소리에서 매만짐으로, 냄새에서 빛으로 인지적 자극들이 전도, 변이, 번역되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안드레아스 바너슈테트, 안정주&전소정, 왕&쇠데르스트룀(Wang & Söderström), 염지혜, 이은희, 제나 수텔라(Jenna Sutela)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오감을 넘어 미생물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이종 간의 교감으로 확장하는 사례를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 영역에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의 울림, 결, 서로 간의 소통에 관해 성찰할 수 있다.
안드레아스 바너슈테트의 ‘레이어-흐름’은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의 감각적 자극을 가상의 물질로 시각화한 NFT 조각 작품이다. 질척한 반죽 기둥들이 흐르며 회오리치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통해 눈으로 느끼는 시각적 감각이 소리의 영역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각적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염지혜의 ‘사이보그핸드스탠더러스의 코’는 사이보그와 새로운 인간종인 ‘핸드스탠더러스’가 융합된 존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숨쉬기’에 주목한 이 작품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기계, 동물, 식물, 사물의 융합을 통해 곧 도래할 시대의 새로운 생명체를 상상하게 한다.
2부 ‘조정된 투영’에서는 시공간의 감각을 면밀히 조정하며 규격화된 미터법이나 시간의 개념을 흔드는 작가적 태도를 통해 역사, 정치, 사회적 논점을 던지는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바스마 알 샤리프의 ‘우리는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는 정지화면, 문자, 언어, 그리고 소리를 엮어 익명의 그룹이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정치적 좌절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영상이다. 작가는 사진과 소리를 통해 역사를 전달하고 비극과 시각을 연결해 궁극적인 환상과 사실의 대비를 그려낸다.
안정주, 전소정의 ‘오토매틱 오토노미’는 덕수궁이라는 역사적 풍경 속 안무가의 움직임을 몸에 달린 카메라와 인공지능 CCTV로 기록한 영상이다. 24시간 궁 안을 샅샅이 비추는 영상은 너무나도 사소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그 외 염지혜, 유리 패티슨(Yuri Pattison)의 작품까지 나와 타자, 나아가 세계와의 상호 관계로 지각하는 주관적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다루며, 몸의 감각이 연결하는 사회성에 관해 사유하도록 이끈다.
3부 ‘트랜스 x 움직임’에서는 월드 와이드 웹(www)의 물리적 현실을 조명하며 디지털 공간 안에서 마치 비물질적 존재로 느껴지는 개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아영, 김웅현, 시몬 C. 니키유(Simone C. Niquille), 알리 체리(Ali Cherri), ASMR티카(ASMRtica)의 작업을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의 경계와 복잡성을 비추며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롭게, 그러나 제한적으로 움직이는지 가늠할 수 있다.
25분의 단채널 비디오 ‘헬보바인과 포니’의 작가 김웅현은 북한을 여행한 사람들이 올린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고 유니콘이라는 허구적 존재를 등장시켜 해당 작품을 구성했다. 작가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역사적, 사회적 사건과 가상현실의 요소를 결합한 영상조각 또는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주로 전개한다. ‘헬로바인과 포니’는 1998년 소떼 방북 사건과 같은 북한의 역사를 액션 롤플레잉 게임의 캐릭터 헬로바인과 연결시켜 기이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ASMR티카의 ‘세계 기후 지대 ASMR 2시간│지도 추적하기’는 지도를 보며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나른한 목소리로 지구의 기후에 관한 지리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영상이다. 장장 2시간 동안 작가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해당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휴식과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4부 ‘내 영혼의 비트’에서는 기술이 동반한 인간의 염원과 환상을 다루며, 인간의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 영성(spirituality)을 동시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김실비, 김웅현, 마하 마아문, 아마드 고세인(Ahmad Ghossein), 안드레이스 바너슈테트의 작품에서는 정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무아, 황홀, 환각, 두려움의 감정이 오늘의 미디어 환경에서 어떻게 감지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마하 마아문의 ‘국내 관광II’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시간을 초월한 신성함이 도시의 서사와 연결되며 생기는 간극, 오해, 드라마를 대중미디어 이미지로 드러낸다. 작가에게 영화, 광고, 뉴스 등의 미디어는 집단적 상상을 가능케 하는 존재로, 환영과 현실이 대비되는 현실을 비춘다.
김실비의 ‘금융-신용-영성 삼신도’는 고대로부터 영생을 원해온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부와 권력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의존, 부와 영생을 향한 인류의 믿음을 신경망과 블록체인을 이용해 표현하고자 한다.
암호화폐와 같은 금융의 탈중앙화와 인공지능의 무한한 나노세컨드 거래로 기존의 가치 체계는 점차 가시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익을 향한 기술의 발전에는 어떤 인간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전시를 통해 우리는 근본적인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현실에서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 이후 9월 아랍에미리트 샤르자미술재단(SAF) 알 무레이자 아트 스페이스에서,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아크데스(ArkDes) 국립건축디자인센터에서 연이어 개막한다. 전시는 아트스트리밍 서비스 <워치 앤 칠 2.0> 마지막 순회지 전시가 끝나는 올해 연말까지 운영된다.
이 전시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 ‘메타 오픈 아트’(Meta Open Arts)가 후원한다.
한편, 연계 프로그램으로는 퍼포먼스학자 이소림, ASMR 아티스트 미니유와 우노가 ‘ASMR-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친밀함과 돌봄’ 강연 및 퍼포먼스(7월 6일)를 선보인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와 문제일 교수 그리고 참여작가 김아영, 염지혜가 함께하는 ‘나는 향기가 보여요’ 대담회(8월 12일)는 서울관 7전시실 현장과 온라인으로 스트리밍될 예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우리나라가 중심축이 되어 아시아, 유럽, 중동으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방식의 미술한류 프로젝트”라며 “이번 전시가 관객의 변화하는 예술 감상 방식에 부응하고, 미술관 소장품 향유의 장을 넓히는 국제 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이화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