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도영 기자] 국가교육위원회가 27일 출범을 앞두고 사회적 합의에 기반해 독립적으로 활동하기보다 교육부의 정책 추진을 정당화하거나 보조하는 '면피용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김용일 한국교육정책연구원 이사장(한국해양대 교수)은 오는 30일 한국교육정치학회 '교육정치학연구'를 통해 출간 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의 제도화 가능성 탐색 연구' 논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2002년부터 국교위 도입을 제안해 왔으며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설계에도 관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논문에서 국교위 설치법령을 분석해 이 기구가 실제 어떻게 설계될 지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중 현재로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는 국교위가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교육부의 정책 기능을 보조하는 심의, 자문기구에 그치는 '소극적 제도화'를 꼽았다.
다른 하나는 지금 법령 안에서 가능한 최대의 역할을 부여하는 '적극적 제도화'지만 이 마저도 교육부의 정책 추진을 보조하는 수준밖에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애초에 국교위가 생기면 교육부의 권한이나 기능, 역할을 어떻게 나눌 지 분명하게 정해야 하는데 관련 법령에 그런 내용이 빠졌거나 분명치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국교위 같은 행정위원회를 만들 때 다른 행정기관(교육부 등)과 업무가 겹치는 것을 막는 타 법률과의 충돌 가능성도 '적극적 제도화'의 걸림돌로 꼽았다.
김 이사장은 국교위 설치법(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점도 '소극적 제도화'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이라 분석했다. 당시 단독 입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국교위 설치에 반대하던 국민의힘에 정권을 내줬다. 올해 선거에서 보수교육감(17명 중 8명)의 약진도 정부 여당에게 힘을 싣는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김 이사장은 국교위가 '소극적 심의, 자문' 역할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곧 "필요에 따라 교육부 정책 실패를 모면하기 위한 역할이 부여되기 십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부가 정책 총괄 기구로서 정책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며 "국교위가 ‘면피용 기구’, ‘방패막이 기구’, ‘시선 돌리기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달 들어 국교위 조직·예산 규모와 위원 면면이 드러나며 정부가 국교위를 소극적으로 운영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정부는 국교위에 공무원 정원 31명, 내년도 예산 88억9100만원을 배정했다.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장(민주당)은 이를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 대비 정원(추계 기준 104명)은 3분의 1, 예산(152억)은 절반 수준이라 지적했다.
국교위에는 교육발전총괄과, 교육과정정책과, 참여지원과가 설치된다. 국가교육과정 관련 업무만 교육부에서 넘겨 받았고 나머지는 국교위를 위해 새로 생긴 것이다.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앞장선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위원장에 지명했다. 다른 대통령 지명자들은 물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추천한 인사들 역시 정파성이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교위에서 정부·여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위원은 많게는 12명이다. 대통령이 지명한 5명(위원장 포함), 국민의힘이 추천한 3명, 대학과 전문대, 시도지사 협의체 등 기관 추천 3명, 그리고 당연직 위원인 교육부 차관을 합친 숫자다.
재적 과반수(19명 기준 10명)를 넘어 단독으로 회의를 열 수도 있고, 의결도 할 수 있다.
정부 입맛에 맞는 정책을 올린 뒤 특정 성향 위원들만 참석한 채 통과시킬 우려를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김 이사장은 뉴시스에 "국교위가 그간 단골 대선 공약으로 등장했던 까닭을 돌아보면 교육부의 정책 독점, 전횡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라며 "그런 취지가 살아나야 했지만 입법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초래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국교위는 집권여당 손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참담한 상황"이라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통해 법령을 취지에 맞게 개정해야 하겠지만 그런 대안을 현실화하기는 어려운 지경"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