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3.04 (수)

  • 맑음동두천 0.0℃
  • 구름많음강릉 2.6℃
  • 맑음서울 3.3℃
  • 맑음대전 3.5℃
  • 흐림대구 5.9℃
  • 흐림울산 5.3℃
  • 맑음광주 5.8℃
  • 구름많음부산 6.3℃
  • 맑음고창 2.3℃
  • 맑음제주 8.9℃
  • 구름많음강화 2.8℃
  • 맑음보은 1.6℃
  • 구름많음금산 2.7℃
  • 맑음강진군 3.2℃
  • 흐림경주시 5.5℃
  • 흐림거제 5.7℃
기상청 제공

사람들

[이화순의 아트&컬처]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 佛발카레스·서울·창원 등지서 ‘삶과 예술’ 재조명

URL복사

한국·일본·프랑스를 넘나든 문신의 삶과 예술, 입체적 재조명
조각·회화·드로잉·판화·도자 등 총 230여 점, 역대 최다 출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문신(文信):우주를 향하여> 특별전
마산문신미술관 ‘조각가의 혼:Soul of Sculpture’ 상설전
남불 발카레스시, ‘태양의 인간(Homme du Soleil)’ 초대전

흰 석고 덩어리가 / 조각가의 손에 의해/ 두 개의 심장으로 빚어진다/ 마치 우주가 신에 의해 / 음과 양의 대칭으로 이루어지듯 / 마주보는 두 얼굴로 (시인 신규호)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예술가의 업적은 영원히 남는다. 조각가 문신(1922~1995, 본명 문안신)도 그중 한 사람이다. 서울 올림픽공원을 거닐다보면 200여점의 조형 작품 중 유난히 반짝이며 높이 솟은 조각을 만나게 된다. 묵주처럼 생긴 반구(半球)형의 두 기둥이 층층을 이루며 하늘 높이에서 해를 받아 주위를 비추고 있다. 문신(1922~1995)이 서울올림픽 기념 예술올림피아드에 참여해 만든 25m 높이의 올림픽 1988」이다. 


스테인레스 기둥은 거울처럼 하늘과 해, 빛과 구름, 나무와 꽃, 나비와 배, 사람들을 담아낸다. 프랑스의 국보급 작가 세자르도 출품했지만, 미국 NBC방송은 1988년 올림픽공원 현장 인터뷰에서 “세계 72개국 191명 예술가의 작품 중 최고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문신은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조각가이다. 생전의 그가 50여년간 추구한 예술의 폭은 아주 넓다. 회화에서 시작하여 부조조각, 조각, 채화, 드로잉, 건축에 이르기까지.

 

 

 

마산 바다보며 예술가 꿈 키워


일제강점기 일본 규슈의 탄광촌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소년은 마산 바닷가에서 고독을 벗 삼으며 그림을 그렸다. 소년 문신의 꿈은 피카소 같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피카소 작품을 화집으로 만나게 된 인연이었다. 가슴 속에 커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16세에 밀항선을 타고 일본 도쿄로 떠나 일본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이 짙어갈 무렵 23세의 문신은 도쿄에 있던 조각가 김종영의 아틀리에에서 자신의 「자화상」(1943)을 그리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귀국해 한국전쟁시에는 종군화가로 입대해 동부전선에서 야전병원을 스케치해 목판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고향 마산에서 만난 어부의 살아숨쉬는 생명력을 분출한 부조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한때 홍익대 미대에서 강의(1965-1966)도 했다. 

 

 

도불 후 추상조각가로 파리 화단 주목받아


1961년 1차 도불에서는 추상화에 전념했다면 2차 도불부터는 추상 조각이 중심 작업이 되었다. 문신은 1970년부터 파리에서 빛나는 활약상을 하게 된다. 프랑스 남쪽 항구 발카레스 국제조각 심포지엄에 「태양의 인간, Homme du Soleil」(1970)을 발표하며 파리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태양의 인간」은 50여 년 동안 발카레스시 성장에 이바지한 상징이 되었다. 


‘르 피가로’지 1면을 장식하고, 당시 전철에 문신의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당시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는다. ‘살롱 드메’를 비롯한 주요 살롱전에 매년 초대를 받게 된다. 파리 체류 시절 150여회의 초대전과 개인전에 초대를 받으며 세계적인 조각가로 부상했다. 


귀국 후 마산에 정착해 지연,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에만 몰두하다가 직접 디자인, 건축한 문신미술관을 1994년 개관하고 이듬해 타계했다.


외로운 이방인이기도 했던 그의 프랑스에서의 작업 활동은 마치 전쟁에 임한 전사와 같았다. 


작업 노트에 따르면, “섭씨 45도의 찌는 듯한 모래사장에서 나는 작업을 하는 동안 수시로 손목을 베었다. 다행히 응급용 붕대로 지혈을 했지만 작업실 곳곳은 난자했다.(중략) 마치 격렬한 전장에서 피를 쏟은 채 쓰러져가는 전사(戰士)를 보고 복수심에 불타 돌격하는 군인이 된 기분이다. 지금 나는 붕대를 맨 뒤 소음이 진동하는 전기톱을 마치 기관총을 잡듯 붙잡고 있다”라고 썼다.


「태양의 인간」이나 「올림픽 1988」에서 보듯, 문신은 자연과 인간을 모티브로, 평화와 화합,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좌우대칭(Symmetry)으로, 균형과 견제, 상생(相生)과 조화 그리고 배려를 담는다. 그래서 「올림픽 1988」은 ‘올림픽-화합’이 되기도 한다. 


“「올림픽 1988」의 두 개의 거대한 묵주알 기둥은, 올림픽이란 국가적 경사를 맞이하여, 남북한이 평화와 화합을 하면서 종국적으로 통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원했다”는 작가는 묵주 한알한알에 평화와 화합을 소망하며 한층 한층 탑을 쌓는 마음을 담은 듯하다. 


문신은 1980년 영구 귀국할 때는 프랑스에서 3대 조각가로 꼽혔을 정도로 조각가로 위상이 높았다. 파리 체재 기간 동안 그는 ‘살롱 드 메’, ‘살롱 그랑 에 죈느 도주르디’,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 등 당시 주요한 살롱에 초대받아 활동했다. 귀국 후 마산에 정착해 지연,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에만 몰두하다가 직접 디자인, 건축한 문신미술관을 1994년 개관하고 이듬해 타계했다.


한국과 일본, 프랑스를 넘나들며 인생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삶은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나아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유기체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 깎아 들어감(彫)과 붙여나감(塑), 형식과 내용, 물질과 정신 등 여러 이분법적 경계를 횡단하고 이들 대립항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찾아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신 조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대칭’은 단순한 형태적, 구조적 좌우대칭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과 우주의 생명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독창적인 추상 조각은 ‘시메트리(Symmetry·대칭)’가 바탕이 된 균제미, 정면성, 수직성, 고도의 장인정신 등을 특징으로 한다.


문신 작가의 아내로, 예술적 동지였던 최성숙(76)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 관장겸 한국화가는 창원특례시(시장 홍남표), 숙명여대 문신미술관과 함께 ‘문신100주년 기념전시’ 준비위를 2019년 결성하고 기념전시를 준비했다. 


최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창원특례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과 숙명여대문신미술관 관계자, 소장자들, 관람객 여러분들게 모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면서 “서울과 마산, 프랑스에서 열리는 전시들을 통해 문신의 작품세계, 삶과 예술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연구되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문신(文信) : 우주를 향하여>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는 조각, 회화, 공예, 건축, 도자 등 다방면에 걸친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회는 장르도 다양하고, 규모도 크다. 회화부터 조각, 드로잉, 도자기 등 총 23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문신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의 부제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이 다양한 형태의 여러 조각 작품에 붙였던 제목을 인용했다.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던 작가에게 ‘우주’는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지의 세계’,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고향’과도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를 향하여’는 생명의 근원과 창조적 에너지에 대한 그의 갈망과 내부로 침잠하지 않고 언제나 밖을 향했던 그의 도전적인 태도를 함축한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연대기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크게 회화, 조각, 건축(공공미술)으로 나누었다. 조각 부분에서 형태의 다양한 변주를 감상하고 창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1부 ‘파노라마 속으로’에서는 문신 예술의 시작인 회화를 보여준다. 구상회화에서 생명과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는 추상회화로의 변화가 조각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조형미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2부에서는 다수의 나무 조각 작품들과 드로잉을 통해 문신의 조각이 지닌 상징, 의미를 찾기보다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추상 형태 그 자체를 감상할 것을 제안한다.


3부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은 「개미(라 후루미)」(1985), 「우주를 향하여3」(1989) 등 다수의 브론즈 작품들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개미」를 보면 문신에게 만물은 원과 선이었음을 알수 있다. 원과 선은 곧 우주의 원리였고, 원과 선을 통해 조각에 생명을 담았다. 


4부 ‘도시와 조각’은 도시와 환경이라는 확장된 관점에서 조각을 바라본 문신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야외조각과 체불 시절 작가가 시도했던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 ‘공원 조형물 모형’ 등 공공조형물을 소개한다. 


원래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밖에 설치돼 있던 이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앞으로 옮겨졌다. 전시는 2023년 1월 29일까지.

 

 

 

창원시립 마산문신미술관, 상설전 <조각가의 혼 : Soul of Sculpture>


한편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상설전 <조각가의 혼: Soul of Sculpture>을 최근 상설전시로 진행 중이다. 혼’(魂)과 ‘hone’(연마하다는 뜻) 등 두 개의 섹션으로 나뉜 전시에서는 조각, 드로잉 등 총 171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문신 조각의 탄생과정을 살펴보고 그 예술적 가치를 소개하고 있다.

 

 

 

지중해 발카레스시, 문신 탄생 100주년전 : 해변 조각전시장 & 메종 드 아르


지중해 해안에 위치한 남불 발카레스시(시장 알랭 페랑)은 문신에 대해 존경과 추앙의 전시를 열었다.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해변 조각 전시장에 문신의 조각을 불빛으로 표현한 「돌고래, Dauphin」(2022), 「우주를 향하여, Vers le Cosmos」(2022)와 같은 불빛 조각을 선보이고, ‘메종 드 아르’(Maison de Arts)에서는 문신의 청동 조각 20점, 설치 디자인 20점, 연필, 펜, 잉크, 파스텔 드로잉 20점과 그의 부인 한국화가 최성숙의 작품 50여 점을 9월 말까지 전시하였다.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이화순>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미국 상호관세 무효화로 대미투자특별법 논란 확산...“9일까지 처리”vs“전제 변해 재검토해야”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한국에 부과되고 있던 15%의 상호관세가 무효화되고 10%의 새 글로벌 관세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대미투자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미투자특별법을 오는 9일까지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임을 밝혔지만 진보당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에 우호적인 조국혁신당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3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해 “여야가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내일부터 재가동하기로 합의했다. 3월 9일 처리가 목표다. 단 하루라도 지연시킨다면 정해진 시간표 내에는 결코 처리할 수 없을 것이며 그 후폭풍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며 “합의한 일정대로 3월 4일 심사에 참여해 3월 9일 의결까지 책임 있게 마무리하자”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3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 대미투자특별법 처리가 시급하다. 다행히 특위 운영 일정이 확정됐다”며 “민주당은 대미투자특별법을 제때 처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지난 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해 “미국 행정부는 불확실성이 커질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한세예스24문화재단, 39년 간 지역 우수 인재 육성 앞장··· 총 45명에게 1억 8천만 원 상당 장학금 지원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의당장학금’을 통해 39년 간 지역 우수 인재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의당장학금은 충남 아산시 음봉면 소재 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 가운데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한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이다. 고(故) 의당 김기홍 박사의 유지를 받들어 부인인 고(故) 이윤재 여사가 1988년 설립한 ‘의당장학회’는 매년 관내 고등학교 1학년 재학생 1명을 선발해 3년간 연 19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45명의 학생이 1억 8천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재단은 지난 26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제39회 의당장학금’ 수여식을 열고, 장학금과 장학 증서를 전달했다. 이날 수여식에는 김동국 의당장학회 운영위원장과 이정성 음봉면장 등이 참석해 장학금을 직접 전달하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올해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순신고등학교 1학년 전하빈 학생은 향후 3년간 장학금을 지원받게 되며, 대학 진학 시 별도의 입학 축하금도 받게 된다. 또한 올해 충남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 입학한 공진표 학생에게도 120만 원의 입학 축하금이 전달됐다. 공진표 학생은 “의당장학금 덕분에 목표

문화

더보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작곡가 손다혜·홍민웅 신작과 대표작 소개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겸 단장 채치성)은 관현악시리즈Ⅲ ‘2025 상주 작곡가: 손다혜·홍민웅’(이하 ‘2025 상주 작곡가’)을 3월 20일(금)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이번 무대는 2025년 상주 작곡가로 선정된 손다혜·홍민웅과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지난 1년간 호흡하며 빚어낸 결실을 발표하는 자리로, 두 작곡가의 신작과 대표작을 동시에 선보인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 작곡가 제도는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국악관현악 분야 최초로 도입된 프로그램으로, 국내외 최고 작곡가들이 악단과 밀도 있는 소통을 통해 완성도 높은 국악관현악 창작곡을 발표해 왔다. 김성국(2016년 상주 작곡가)의 ‘영원한 왕국’과 최지혜(2017-2018 시즌 상주 작곡가)의 ‘감정의 집’이 대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국악관현악 주요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25년 창단 30주년을 맞아 8년 만에 상주 작곡가 제도를 부활시켰다. 이번에 선정된 작곡가는 한국 창작음악의 차세대 대표 작곡가로 주목받는 손다혜와 홍민웅이다. 손다혜는 창극·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천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분노를 잠재운 적절한 리액션과 공감의 힘
갈등의 시대, 우리는 왜 먼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지 못하는가.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 30분경, 오이도에서 진접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4호선 안은 여느 때보다 고단한 공기로 가득했다. 출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노인석 주변은 빈틈없이 붐볐고, 연로한 분들이 서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정류장에서인가 붐비는 노인석의 중간 한 자리가 나자마자 한 어르신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채 두 정류장을 가기도 전에 깨졌다. “아 XX, 좀 저리로 가라고!” 먼저 앉아 있던 노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과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좁은 자리에 가방까지 메고 끼어 앉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 앉은 이는 “나도 앉을 만하니 앉은 것 아니오”라며 항변했지만, 쏟아지는 폭언 앞에 결국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 X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자리를 뜬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험악해진 분위기 탓에 어느 누구도 그 빈자리에 선뜻 앉지 못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지라퍼 계열인 필자는 객기 부리듯 용기를 냈다.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화를 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