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북핵 위협과 관련해 “대한민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이란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한국의 독자 핵개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을 대통령이 직접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대통령실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언급이라는 설명이지만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연초부터 대남 위협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는 북한을 향한 강한 경고 메시지일 수도 있다.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는 국내 핵무장론자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12일(현지시간)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약속은 불변”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한국 정부가 핵무기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다만 한미는 공동으로 확장억제 확대를 논의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필요한 논란확산을 차단하면서 미국의 비확산 정책을 다시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핵무장을 할 경우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우리나라는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 정식 비준국이 되었다. 핵무장을 하려면 탈퇴해야 한다. 북한은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2003년 1월 NPT를 탈퇴했다. 최근 북한의 핵위협이 노골화하면서 국내에서는 자체 핵무장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핵무장 찬성의견이 70%이른 여론 조사결과도 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동의할 가능성은 현재 제로(0)에 가깝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한국의 NPT탈퇴와 핵무장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VOA(미국의 소리)는 다트머스대학 대릴 프레스 교수와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별보좌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두 사람은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의견이 정반대로 갈렸다. 로버트 아인혼 전 특별보좌관은 “혹독한 대가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반면 대릴 프레스 교수는 “NPT 탈퇴 후 핵무장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대릴 프레스 교수가 “한국이 NPT를 탈퇴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하자 로버트 아인혼 전 특별보좌관은 “한국이 현재 직면한 상황들은 NPT 탈퇴가 법적으로 정당화한다”면서도 “탈퇴가 합법적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의 이익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상당한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로버트 아인혼 전 특별보좌관은 한미 동맹의 연합 억제력은 여전히 강력하다며 한반도 전쟁시 김정은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매우 실질적으로 억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대릴 프레스 교수는 “미국이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약속을 이행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미국 지도자들은 미국 도시들에 대한 보복 가능성으로 인해 큰 제약을 받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두 교수는 한국이 NPT 탈퇴 후 핵무장을 할 경우 전 세계로부터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한국이 핵무장의 길을 가겠다면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독자 핵무장은 외교적·경제적 고립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적지 않다. 많은 비용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국제 핵 비확산 체제를 고수하는 미국의 입장은 완강하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동북아 전체의 ‘핵 도미노’ 현상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대외무역 비중이 높은 우리로선 국제사회의 제재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최고 정책결정권자의 핵보유, 핵개발 언급은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국방부는 북한의 핵 공격을 가정한 핵우산 운용연습(TTX)을 올해 미 전략사령부와 함께 처음 실시하는 등 미국과의 확장억제 공조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런 훈련을 비롯해 한미 양국의 핵 공동 대응 실효성을 높이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옵션을 시도하는 것이 먼저다. 미국 또한 자국의 핵우산이 한반도의 ‘강대강’ 핵 대치를 막을 마지막 보루라는 인식하에 실질적 핵 공유에 버금가는 수준의 공동 기획, 실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대릴 프레스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은 근본적으로 ‘실패’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