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16명의 여성을 살해하며 자신의 범죄를 언론에 직접 제보한 이란 최악의 연쇄살인마인 일명 ‘거미’를 끝까지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 2018년 영화 <경계선>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한 감독 알리 아바시의 차기작으로 이란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범죄
‘순교자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 ‘거미’는 이란 마슈하드 밤거리를 배회하는 여성 성 노동자들에게 손님인 척 접근해 피해자들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시체를 쓰레기처럼 유기하고 자신의 범행 행각을 언론사에 직접 제보하는 대담함을 보인다. 신의 섭리를 행한다는 명목 아래 1년 사이 16명의 여성이 ‘거미’의 손에 잔인하게 살해 당하지만 살인마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여론이 일고 정부와 경찰마저 이 사건을 외면한다. 여성 저널리스트 라히미만이 홀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목숨의 위협마저 무릅쓴다.
2000년대 초 마슈하드에서 16명의 여성들을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네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심각성과 현대 이란 사회에 자리잡은 뿌리 깊은 여성 혐오를 고발하는 스릴러다. 피해자들이 모두 자신의 차도르에 의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칭칭 감긴 상태로 유기된 채 발견돼 ‘거미 살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사건은 범인이 체포 당시 39세 사이드 하네이로 밝혀지며 이란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세 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자 이란-이라크전의 참전용사였던 범인은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며 재판 과정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다큐멘터리 <And Along Came a Spider>, 극영화 <킬러 스파이더>에 이어 세 번째 영화화된 연쇄살인범 사이드 하네이에 관한 작품으로, <성스러운 거미>는 장르적 완성도를 갖추면서도 살인마를 찾아내는 추리물이 아니라 살인마를 처음부터 보여주고 체포된 후의 이야기에 무게를 둔 사회고발물로 접근했다.
괴물을 영웅으로 만드는 세상
살인마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 캐릭터를 통해 저항과 투쟁적 의미를 강조한 차별점 또한 돋보인다. 이란 사회 속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홀로 연쇄 살인마를 추적해나가는 강인한 라히미 캐릭터는 감독 알리 아바시가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창조한 허구의 캐릭터다. 알리 아바시는 재판 과정에 참여했던 여성 저널리스트로부터 라히미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란에는 자유를 위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수천 명의 라히미들이 있다”고 말한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의 개인사에서도 라히미 캐릭터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라히미를 연기한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테헤란 태생의 배우였으나 연인과의 섹스테이프 유출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비롯한 심각한 박해에 시달려 2006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 <성스러운 거미>에 캐스팅 디렉터로서 참여했지만 히잡 없이 촬영을 해야 한다는 조건에 겁을 먹은 여배우가 촬영을 중단하면서 주연을 맡게됐다.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이 복귀작을 통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 외적으로도 드라마를 썼다.
이란 내에서 촬영 허가를 얻지 못해 요르단에서 촬영을 진행한 <성스러운 거미>는 이란의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고 금기를 깼다는 이유로 협박과 비난에 시달렸다. 이란 문화부 장관 모하메드 메흐디 이스마일리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을 처벌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으며 실제로 스탭들이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 이 같은 이란 정부의 입장은 감독이 스스로 ‘페르시안 누아르’로 소개한 악으로 가득한 이 영화의 세계가 현실임을 입증하는 모양새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충격적이지만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집단적 신념이 가진 폭력성이 단지 이란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사에 수없이 되풀이해 왔으며 현재도 미래도 어디에서나 크고 작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면에서 인간에게 내재된 광기의 속성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