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화순 칼럼니스트] “저의 모든 숨결이 닿은 캔버스 화면이 화폭 너머의 무한한 시공간으로 확장되길 바랍니다. 그림의 평면은 학창시절부터 저에게 캔버스와 대화하는 법을 훈련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
회화는 표면과의 무한한 대화이자 탐구이다. 6월 1일부터 7월 16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무한한 숨결>전을 여는 한국추상미술의 대가 정상화(91)가 표면과의 무한한 대화를 보여준다.
정상화 작가는 1970년대 이후 독창적인 그리드를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매체 실험을 통한 조형적인 탐구를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40여점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이다.
표면의 다양성을 탐구해온 작가는 ‘뜯어내기’와 ‘메우기’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과정으로 새로운 차원이 평면성을 탐구하는 시적인 작품을 보여왔다. 전시명인 <무한한 숨결> 역시 작가의 세계관을 은유한다. 그는 캔버스에 재료를 칠하고, 덧붙이고, 떼어내고, 메우는 노동집약적 방식을 도입했다. 아크릴 물감과 유화 물감, 흑연, 한지 등으로 화면에 독창적인 질감과 레이어링 효과를 만들어 냈다. 캔버스를 틀에서 벗기고 다시 매기거나 접었다 편 다음 물감을 겹쳐 바르는 등 독특한 작업 방식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노동이 집약된 작업을 해왔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정상화 작가는 이번 갤러리현대 전시에서는 화면을 구축한 자신만의 방법론(1층)을 비롯해, 각각의 색감과 마티에르, 서로 다른 깊이와 다양성을 가진 백색 작품(지하층), 그리고 평면에 대한 탐구와 실험의 과정을 보여주는 종이 작업과 목판 작업(2층) 등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데콜라주, 프로타주, 목판 작품들은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표현, 재료와 대상에 대한 조형성 탐구, 표현의 실험적 시도를 추구한 결과이다. 또 작가의 실험 정신에 가장 근접한 작품들이다.
전시공간별 특징적인 작품 전시
1층 전시장에서 만나게 되는 정상화 작가의 작품 바탕재는 고령토다.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힘을 가진 고령토는 공간을 구성한 뒤 사라진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여실히 드러난다.
고령토가 사라진 공간이 시차 속에 서로 다른 층위를 형성하면서도 서로 밀착되어 전체를 이루고, 하나의 통일된 색채가 그 앞에 내재되어 있는 깊이를 달리하며 조화에 이르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무제 2012-5-13’). 또다른 작품(‘무제 2019-10-15’)에서는 바탕을 이루고 공간을 구축한 뒤 사라지던 존재인 고령토가 화면에 남아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령토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령토는 평면에 힘을 축적시키는 나의 방법론, 죽 그었다고 해서 선(線)이 아니요, 평평하다고 해서 면(面)이 아니요, 비워 뒀다고 공간(空間)이 아니에요. 이 모든 것은 작업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겁니다. 고령토와 물감을 들어냈다 메우는 과정에서 선, 면, 공간이 자연히 발생하지요.”
지하 전시장에서는 같은 백색이나 그 표정과 색감, 깊이감이 모두 다른 다채로운 백색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구성 요소가 작업마다 다르고 개별 격자들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색채와 높낮이가 모두 다르기에 화면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1970년대부터 작가는 엄격하게 색을 절제하고, 내용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평면화를 추구했다. 기존의 비정형 앵포르멜식 회화에서 벗어나 평면에 깊이를 탐구하며 변화를 모색하던 다채로운 백색 평면 작품들을 선보인 것이다. 1973년부터는 정상화로 대변되는 단색의 그리드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해 이듬해 오사카의 시나노바시 화랑에서 처음으로 발표한다.
정상화는 규격화된 작업 과정 안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데, 이는 곧 전위성과도 연결된다. 캔버스에 3~5mm 두께로 바른 고령토를 네모꼴로 뜯어내고, 고령토가 떨어진 자리를 유채나 아크릴 물감으로 채워 넣는다.
2층 전시장에서는 종이를 재료로 한 평면 작업들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종이 작업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했다. “표현의 자율성이나 과감성, 대담성은 종이 작업에서 나타나요. 종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데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죠. 지금도 종이를 보면 무엇을 할까 고민해요.”
작가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캔버스를 이용한 평면 실험 이외에도 종이라는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캔버스 작업에서는 고령토를 올린 후 뜯어내고 메우기를 통해 공간을 구축하였다면, 종이 작업은 종이를 찢는 등의 데꼴라주기법, 문지르는 프로타주 기법을 통해 평면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종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데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데콜라주 작품은 얇은 종이에 수직 수평의 선을 긋고, 각각의 그리드를 칼로 얇게 벗겨내어 색을 칠하면서 캔버스 작업보다는 자유롭게 구조와 패턴, 색채 등을 과감하게 실험하였다.
프로타주 작품은 완성된 캔버스 작품 위에 직접 한지를 올려 연필이나 목탄으로 탁본을 뜨듯이 작업했다. 이는 2차원 평면을 공간화한 후 다시 평면화함과 동시에 선의 구조를 명확히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같은 선과 구조가 매체와 기법으로 얼마나 다른 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전시작 ‘무제’(1974)는 초창기 평면 위 그리드가 종이 작업에서는 어떻게 구현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작품이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1980년 ‘은밀한 숨결의 공간’이라고 정상화 작가의 작품을 평했다. “시간과 음미를 일단 거치고 나면 눈요기의 시각적 효과를 겨냥한 그림보다 비길 수 없이 깊은 숨결을 내뿜고 있는 것이 또한 그의 그림이다. 그의 회화는 네모꼴들이 빡빡하게 쌓이고 서로 인접하면서도 그 전체가 한데 어울려 무한히 확산해 가는 은밀한 숨결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 <은밀한 숨결의 공간>, 1980)
정상화 작가는...
정상화는 1932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1953년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입학해 1957년 대학 졸업 후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60), <악튀엘 그룹전>(1962), <세계문화자유회의초대전>(1963) 등 다수의 정기전, 그룹전에 참여했다.
1957년 서울대 미대 학장이었던 장발의 추천으로 인천사범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당대 전위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던 현대미술가협회와 악튀엘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그는 6.25를 겪으면서 느꼈던 아픔을 앵포르멜 경향의 전위 미술로 표현하는 것에 몰두해 있었다. 물감을 던지고, 뿌리고, 부풀려서 비틀고 뜯어내고, 메우는 등 전후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를 격동적인 행위와 강렬한 색채로 화폭에 담아냈다.
1965년 <제4회 파리비엔날레>, 1967년 <제9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여 작가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해외 미술계에 소개되었다.
1968년 짧은 도불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다시 1969년 일본 고베로 건너가게 된다. 고베로 이주한 그는 내용 면에서도 기존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마티에르를 사용한 비정형의 앵포르멜식 회화에서 벗어나 평면에 깊이를 탐구하며 변화를 모색한다.
정상화는 이 시기 엄격하게 색을 절제하고, 내용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평면화를 추구하며 1973년부터 단색의 그리드 회화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1977년 프랑스로 이주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상화의 작업은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고베 시기에 진행된 화풍의 완성도를 향해 모든 집념이 고취된다. 이전의 백색의 격자무늬 작품에서 좀 더 나아가 검은색, 푸른색, 적색 등 다양한 색을 단색화를 선보이게 되고, 격자무늬도 이전보다 더 정교한 밀도 속에서 각각의 그리드가 독립된 개별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어울려 조화로운 화면을 구축하게 된다. 1992년 11월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1996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짓고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