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지난 7월 서울 서이초 교사가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추진된 ‘교권보호 4법’이 여야 합의로 15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은 오는 21일 국회 본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날 교육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교권보호 4법이 통과되자 “법안 심의 과정에서 여러 위원들이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사항들은 하위법령 정비와 법령 운용 과정에서 그 취지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교권보호 4법은 ▲초중등교육법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을 말한다. 이날 통과된 교육지위법 개정안엔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공무집행방해·무고죄를 포함한 악성 민원까지 확대 ▲교원이 아동학대 범죄로 신고된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직위해제를 금지 ▲교육감이 교원을 각종 소송으로부터 보호, 학교안전공제회 등에 위탁 ▲교권보호위원회를 각급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관 ▲가해자와 피해 교원을 즉시 분리하는 등 내용이 담겼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교원의 정당한 학생생활지도를 아동학대 행위로 보지 않도록 하고, 학교 민원을 교장이 책임지도록 했다. ‘유아교육법’ 개정안에는 교원의 유아에 대한 생활지도권의 근거 규정을 신설했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학생 보호자가 학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협조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규정했다.
생기부 기재·아동학대 사례 판단위원회 설치는 제외
하지만 앞서 다섯 차례의 법안소위 심사 끝에 여야 이견 차가 컸던 교권 침해행위의 생활기록부 기재와 아동학대 사례 판단위원회 설치 조항은 이번 처리 법안에서 제외됐다. 정부여당은 중대한 교권침해 사안을 학생부에 기재하면 경각심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학생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을 수 있고, 학부모의 소송이 잇따르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아동학대사례판단위원회 설치 건은 실효성을 놓고 충돌했다. 야당은 시도교육청에 별도의 전담 기구를 둬 교사의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신고된 경우 해당 행위의 적정성을 심의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은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심의·판단하는 교권보호위원회가 이미 있어 새 기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맞섰다. 일부 일선 교육감들도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김광수 제주교육감은 지난 14일 제주도의회에서 열린 제420회 임시회 제5차 본회의 교육행정질문에서 관련 질의를 받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건 반대한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위원장인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의결한 법안들이 교육활동 침해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여야가 한마음으로 의결한 법안이 조속히 본회의에서 가결돼 선생님들의 염려가 조금이라도 덜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간사 이태규 의원도 “법은 통과됐지만 실질적 현장에서 이 부분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한 현장의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시·도 교육감과 아주 긴밀하게 협의해 차질없도록, 또 현장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실질적으로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조치를 짜임새 있게 신속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영호 의원은 “지금까지 선생님과 국회의 시간이었다면 이제 학교와 교육부의 차례”라며 “새롭게 만들어진 법률이 학교 현장에 잘 정착되고 운영될 수 있도록 교육부와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교폭력 117 같은 ‘교권침해 직통번호’ 만든다
한편 이 부총리는 ‘교권침해 직통번호’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 부총리는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시·도부교육감회의에서 “별도의 직통 전화번호 회선을 마련해 악성 민원 등 교권침해 사항에 대해 빠르게 도움을 요청하고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학교폭력 신고를 위한 117 긴급번호와 같이 교권침해 상담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117은 현재 경찰청에서 콜센터 형태로 운영 중이다. 이 부총리는 이날 학교로 접수되는 민원을 맡게 될 교육지원청 소관 민원대응팀인 가칭 ‘교권119’를 이달 중 전국 모든 교육지원청에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별도 회선 마련까지는 이야기됐으나 운영 주체를 어디로 할 지 등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 단계”라고 설명했다.
또 이 부총리는 “교사의 생활지도를 포함한 정당한 교육활동의 개념을 명확히 해 불합리하게 형사 처벌 받는 일이 없도록 ‘정당한 교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신속히 만들어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형법 20조의 ‘정당행위’ 규정에 따른 위법성 조각 사유가 적용될 수 있도록 정당한 교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신속하게 만들어 달라”고 교육부와 법무부에 지시한바 있다. 이 부총리는 “법무부에서도 교원의 아동학대 수사 시 교육청의 의견을 적극 참고하고 신속히 처리하는 등 교권이 충분히 보장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며 “지난 2일 이를 대검찰청에 통보했고 일선 검찰청으로 시달한 바 있다”고 전했다.
170개 교직단체 아동학대 관련법의 개정도 요구
앞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170개 교원단체·교원노조는 지난 13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교권보호 4법 국회통과를 압박했다. 이날 10시부터 진행 중인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향해 9월 정기국회 내에 필수 법안들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국회 교육위원들은 지난 7일 첫 번째 법안심사소위를 열었지만 ‘중대한 교권침해 조치사항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교원배상책임보험 위탁기관의 범위를 민간 보험사까지로 넓힐 것인지’ 등에 대한 입장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교직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국회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며 “여야와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인지, 법 개정 의지는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에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교권보호 4법과 함께 아동학대 관련법의 개정도 요구하고 있다. 국회 복지위 소관인 아동학대처벌법, 아동복지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두텁게 보장하고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적 보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