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영국 북동부 폐광촌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와 마을에 찾아온 이방인 소녀 야라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및 심사위원상 3회 석권에 빛나는 세계적 거장 켄 로치 감독의 4년 만의 신작이자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를 잇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갈등 너머 연대의 희망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는 영국 북동부 더럼으로 이주하지만 자신을 반기지 않는 마을 사람들과 부딪히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마을에서 오랜 시간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해 온 TJ는 그런 야라를 도와주고 그들은 점차 이웃 간의 정을 쌓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방인들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TJ와 야라는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라는 문구처럼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희망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다.
영국 북동부 생기를 잃은 폐광촌을 배경으로 각자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갈등 너머 ‘함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나이, 성별, 국적이 서로 다른 여러 인물들이 밥을 나누어 먹는 행위로 연대를 다지는 특별한 우정은 감동을 전한다.
켄 로치 감독은 1960년대 TV 다큐드라마 시리즈 연출로 커리어를 시작, 영국의 극작가 넬 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불쌍한 소>(1967)를 발표하며 영화 감독으로 첫 발을 뗐다. TV 드라마 시절부터 노동자 계급이 처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며 주목받은 그는 두번째 장편 영화이자 노동자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케스>(1969)가 칸영화제 비평가주a간에 상영되면서 칸과 인연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켄 로치 감독은 <숨겨진 계략>(1990), <레이닝 스톤>(1993), <앤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2013)로 심사위원상을 3회 수상한데 이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황금종려상을 2회 석권했다.
약 60년의 작품 활동 동안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낮은 곳을 비추며 복지 제도와 계급 구조 등 부조리와 불평등 고발, 약자에 대한 차별 문제, 연대와 인간성에 대한 희망 등 사회적 메시지를 날카롭고도 담담하게 전파해온 켄 로치 감독은 이번 신작 <나의 올드 오크>에서 펍 ‘올드 오크’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과 마을에 갑작스레 찾아온 이방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며 유럽사회가 처한 공동체 간의 갈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직설적이고도 묵묵히 밀어붙이는 ‘올바름’의 메시지가 묵직한 진정성과 설득력을 지니는 특유의 강점과 거장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번 작품으로 지난 5월 개최된 제7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 이로써 켄 로치 감독은 경쟁 부문에 총 15번 초청되며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특히, 그는 프리미어 이후 인터뷰를 통해 “장편 영화를 다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며 그의 마지막 영화임을 암시했다.
‘켄 로치 사단’의 저력
페르소나 데이브 터너 등 오랫동안 협업해온 제작진이 여전히 함께했다. 켄 로치 감독과 약 30년 동안 함께 작업해온 영화 동반자 폴 래버티 작가는 1980년대 중반 내전 중이던 남미 국가 니카과라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 스크립트를 완성해 켄 로치 감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그들의 첫 번째 영화 <칼라 송>이 이후 <나의 올드 오크>까지 총 14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달콤한 열여섯>으로 제55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고, 두 사람이 함께 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석권했다.
이번 작품의 프로듀서 레베카 오브라이언은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숨겨진 계략>으로 켄 로치 감독과 첫 인연을 맺은 단편과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18편의 작품을 협업했다. 이 밖에도 <가여운 것들>, <컴온 컴온>의 촬영 감독 로비 라이언, 작곡가 조지 펜튼, 편집 감독 조나단 모리스 등 ‘켄 로치 사단’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