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대형병원들이 잇따라 비상경영을 선언한 가운데 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안을 제안해 달라"고 의료계에 연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아직 뚜렷한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공의들은 강경론을 굽히지 않고 있어 의료계 차원의 통일된 제안이 나올지 미지수다.
법정 의료단체인 의협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 정부가 2천명 증원을 철회하지 않고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고 거부한 바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일 “정부는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의대 증원 규모를 포함해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관)도 브리핑에서 "과학적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의료계 내 통일된 더 합리적인 방안을 제안한다면 정부는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 인원과 관련해 조정 여지를 열어놨지만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2천명이라는 의대 증원 숫자에 대한 후퇴 없이는 협상할 수 없다"며 정부가 '먼저' 2천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은 되레 의대 정원을 500∼1천명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도 기존 강경한 입장에서 아직 뚜렷한 변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요구하는 의료계의 통일된 안 마련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의료계는 의대생, 전공의, 의대교수, 개원의, 일반 병원 경영자, 대형병원 경영자 등으로 의사 집단이 다양한 데다 각자 처한 입장이 다양하다는 이유에서다.
보건의료기본법 등 보건의료관계법령에 따라 의사인력을 포함한 보건의료인력 계획안, 보건의료 계획안을 수립할 의무는 정부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예방의학 전문의 겸 변호사)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복지부가 참여하는 의료현안협의체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라면서 "복지부는 의대 증원 규모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계법령에 따르면 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해야 할 주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면서 "복지부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라 의사인력과 관련된 기본계획과 이에 따른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공개했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 외에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5조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5년마다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을 수립하도록 돼 있다. 또 같은 법 제6조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시·도지사는 매년 종합계획에 따라 보건의료인력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돼 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8조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를 둬야 한다.
의료계 내에서는 그나마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 태도 변화에 다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의정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윤정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1일 브리핑에서 '의료계의 통일된 안을 달라'는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현실성 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상을 위한 통일안을 마련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의료계로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증원을 양보할지, 오히려 정원 감축을 요구할지를 둘러싸고 의견 일치를 보기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