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K-방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비상하고 있다. 미국산 M1 소총을 조립하던 수준에서 전차, 자주포, 전투기는 물론 무인전투체까지 그야말로 ‘괄목상대’다. 수출 대상 국가도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중남미로 확장되고 있다. 한때 총부리를 겨누었던 공산국가 베트남과도 수출 협상이 진행 중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최근 5년 동안 독보적인 수출 증가율(177%)을 기록했다. 정부는 오는2030년까지 미국, 러시아, 프랑스에 이은 세계 4위의 ‘방산 강국’이라는 목표를 내놓고 있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방산 선진국들의 견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최대 시장인 11월 미국 대선도 변수다. 업계는 잠깐의 특수로 끝나지 않도록 상대국에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K-방산 저력 확장... 방산 수출 200억 달성 ‘눈앞’
글로벌 지정학적 안보 상황이 급변하면서 국내 방위산업(방산) 기업이 수출 날개를 달고 역대급 실적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최근 5년 간 독보적인 수출 증가율인 177%를 기록했다. 최근 2년 간 수출액이 평균 150억 달러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나타났다. 2021년 73억 달러,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에 달했다. 2023년 잠시 주춤했으나 수출입은행 대출 한계로 폴란드 2차 계약이 지연된 탓이다. 올해는 150억 달러 이상 200억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도 올해 연간 방산 수출 200억 달러(약 27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방산 호황은 국내 방산업계 올해 2분기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잇따른 수출 호조 속에 국내 방산 빅 4사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3배 넘는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로템, LIG넥스원의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5,950억 원이다. 4사 합산 수주 잔고도 91조 원을 넘는다.
우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2조 7,860억 원, 영업이익 3,588억 원을 기록했다. 한화디펜스 및 한화방산과의 통합 법인이 출범한 지난해 2분기보다 매출은 46%, 영업이익은 무려 357% 늘었다. 자주포 K9과 다연장로켓 천무의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전체 영업이익도 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현대로템 역시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977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 1조 945억 원, 영업이익 1,128억 원을 올렸다. 분기 영업이익이 1,000억 원대에 도달한 건 처음이다. 폴란드행 K-2 전차 인도 물량 증가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KAI는 2분기 매출이 8,918억 원, 영업이익이 743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1.6%, 785.7% 증가했다. 국내 사업이 실적을 견인했다는 분석이지만 수출 계약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형 전투기 KF-21 최초양산, 브라질 도심항공교통 이브와 전기수직이착륙항공기(eVTOL) 구조물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1051.6% 상승한 수주 잔고 2조 8,548억 원을 기록했다. LIG넥스원은 2분기 매출 6,047억 원, 영업이익 491억 원을 기록했다.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8%, 22.2% 증가한 수치다. 함정용 전자전장비 양산과 체계개발 사업 등 항공·전자전 분야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313억 원 늘었다. 또 차기 국지방공 레이다, 함정용 소나 등 감시정찰(ISR) 분야 매출이 향상됐다. 이런 우리 방산 기업의 기세는 국제 방산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확고히 다지는 중이다. 미국 국방 전문지 디펜스뉴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을 올해 ‘세계 100대 방산 기업’으로 뽑기도 했다.
지상무기 넘어 전투기·잠수함·미래무기체계 정조준
우리 방산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건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는 뛰어난 성능과 빠른 납기, 가성비 등 K-방산 경쟁력을 대표하는 무기체계로 손꼽힌다.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시에 국내 방산 기업 최초로 현지 생산공장을 완공한 바 있다. LIG넥스원의 천궁II는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까다로운 중동 국가와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면서 K-방산 수출의 상징적인 무기체계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LIG넥스원의 대함 유도무기인 비궁이 세계 최대 해군 훈련인 림팩을 계기로 미국의 해외 무기 도입 프로그램인 ‘FCT(Foreign Comparative Test)’ 시험평가를 성공적으로 마쳐 최대 시장인 미국 진출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평가다. KAI의 KF-21과 FA-50 역시 해외 수출 준비를 마친 상태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성능대비 낮은 획득비와 운용유지비, 가성비 높은 전투기로 평가받는다.
국내 방산업계는 이제 기존 지상 무기를 넘어선 잠수함, 무인전투제체 등을 선보이며 미래전투체계 수출을 정조준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독자설계한 최첨단 잠수함 장보고-III(KSS-III)는 중어뢰와 대함·순항미사일 등을 탑재한 어뢰 발사관, 탄도미사일(SLBM) 발사가 가능한 수직발사대가 기본 장착했다. 여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잠수함용 리튬이온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수소연료전지기반의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동력원으로 최대 3주간 잠항할 수 있는 경쟁력도 갖췄다.
미래 지상전투체계에 최적화된 지휘통제통신 통합 설루션 ‘MOSS 플랫폼(Modular Open Suite of Standard Platform)’도 선보였다. MOSS는 이동형 5G 전술통신 기지국으로 전차 등 다양한 기동플랫폼에 탑재 가능하다.
현대로템에는 4세대 다목적무인차량(UGV)인 ‘HR셰르파’가 있다. 현대로템과 현대자동차그룹이 협업해 개발한 최신형 무인화 차량으로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등 기술을 활용해 군인을 대신해 감시나 정찰, 전투, 부상병 및 물자 이송 등 다양한 작전 임무를 수행한다. KAI도 FA-50, KF-21 전투기 등 공중 무기 체계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기아는 군용 모빌리티에 승부를 걸고 있다. ‘중형표준자(KMTV) 캡샤시’로 수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기아의 중형표준차는 기존 2.5톤, 5톤 군용 표준차량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차량으로 전후방 카메라,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편의사양이 적용돼 병력과 물자를 보다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2.4% 9위... 방산 4대 강국 목표
정부는 2023년 12월 방산 수출전략회의에서 글로벌 방위산업 4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제시하고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방산수출 대상국 수가 12개국으로 전년 대비 8개국이나 증가했다. 올해는 총 15개국 이상에 무기체계를 수출할 계획이다. K-방산은 2018~2022년 기준 글로벌 무기 수출시장 점유율 2.4%로 9위다. 2000년 31위에서 크게 도약한 순위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4위부터 점유율 차이가 크지 않아 추가적인 도약도 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게다가 방산 수출을 통해 장기적으로 ‘잠금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잠금 효과’란 같은 무기체계를 사용하는 국가끼리 무기 호환성을 바탕으로 군사 협력까지 발전하는 효과로 외교와 안보, 공적개발원조(ODA), 산업 분야의 협력까지 확대될 수 있다. K-방산이 한국의 새로운 수출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신냉전 도래와 국제 지정학적 안보 상황이 급변하면서 방산 물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K-방산은 긍정적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11월 미국 대선도 주요 국가들이 자주 국방력 강화 쪽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KB경영연구소 강동욱 연구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중동 전쟁 확산 등 국제 지정학적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내 방산 기업의 실적 확장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강 연구원은 해외 주요 방산 기업들의 2024~2025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전년 대비 80~280% 수준인 반면, 한국 방산 업계는 이보다 높은 140~460% 영업이익 증가세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휴전 국가인 한국은 검증된 무기생산 능력, 성능대비 합리적 가격, 빠른 공급이 가능한 대량생산체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강점이다. 대부분의 나토(NATO) 국가들이 냉전 이후 군 병력과 생산 시설을 지속적으로 감축해 즉시 무기 공급이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K-방산의 수출 호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출입 금융대행체계·선진국 견제·미국 대선 변수 넘어야
국방력 강화를 위한 방산에 대한 투자는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선태이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미 7사단 철수를 통보했다. 당장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국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만들어야 했다. 소총조차 만들지 못했던 당시 M1 개런드, M1 카빈 등 소총부터 역설계해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총에서 야포로, 미사일로 국산 무기 개발은 한 걸음씩 심화됐다. 경제 개발과 자주국방 목표를 동시 달성하기 위해 당시 박정희 정부는 대기업에 방산 각 분야를 맡겼다. 기차를 만들던 현대가 전차를, 전자제품을 만들던 금성이 레이더와 미사일 개발을 맡았다. 핵 개발은 미국 반대로 도중 무산됐다. 그렇게 한국은 1970년대 방산에 뛰어든 지 50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K-방산이 약진하자 방산 강국인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견제에 나선 분위기가 감지된다. 유럽을 중심으로 ‘자국이나 유럽 무기’를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와 기존 선진국의 ‘K방산 견제론’이 본격화한 모습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4월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에서 유럽연합(EU) 의회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유럽산 무기를 사자고 말했다. 그는 “미국산과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걸로 대응해 왔다”면서 “(우리가) 유럽 방위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책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주권과 자율성을 구축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U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유럽방위산업전략(EDIS)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유럽산 무기 비중을 현재 20%에서 50%로 늘리고 무기 공동구매를 확대하기로 했다.
실제로 지난해 노르웨이는 차기 전차 사업에서 한국의 K2 ‘흑표’ 전차 대신 독일의 ‘레오파르트 2A7’ 전차를 구매했다. 최근에는 영국이 차기 자주포 도입 사업에서 K-9 자주포 대신 독일의 ‘RCH-155’를 선택했다. K-9 자주포가 품질과 가격, 제반 능력 등에서 우위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라 고배를 마셨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술 경쟁력과 고도화는 물론 유럽과의 공동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 장기적으로 공동 협력체제를 만들 필요성이 제기된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객국과 최대한 생산 협력 체제를 갖춰나갈 필요가 있다”며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추후 해당국이나 역내 방산 블록이 형성될 경우, 공동 개발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방산은 단순히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기를 사고팔 만큼 국가 간 친밀도가 높다는 의미고 전술 교류까지 가능한 관계라는 것이다. 동맹에 준해 협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방산 협력이 국방 협력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K-방산은 단순히 무기 판매 수단이 아니라 우리 외교 안보 외연을 확장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수출입 과정에서의 금융지원체계 문제도 지적된다. 수출 금융 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미 체결한 계약까지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최근 한국 방산 수출금액이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금융 지원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산 수출은 정부 간 계약 성격이 짙고, 규모가 커 통상 무기 수출국이 구매국에 정책 금융지원을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폴란드 새 정부도 자금 부족을 겪고 있어 시중은행을 통한 ‘신디케이트론’(다수 은행의 공통 조건 집단 대출)이 아닌 한국 당국이 보장하는 저리의 금융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정 개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 자본의 40%로 제한하는 기존의 ‘수출입은행법’(이하 수은법)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폴란드와의 방산 계약 규모가 지원 가능액을 초과하면서 계약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러 문제가 있어 지난 2월 국회는 수출입은행의 정책지원금 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늘리는 수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래도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수은법 개정에도 자본금 한도가 1년에 2조 원씩 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확대되는 만큼, 현실적인 대규모 자금 지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진국의 방산 업체들이 정부의 수출 금융 지원정책으로 공격적인 무기 판매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방산업계가 계약이 불발될 경우를 대비해 여러 플랜을 준비하겠지만 사실상 기업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 대선도 변수다.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 방위산업 재건과 바이-아메리칸(Buy-American) 기조가 강화돼 한·미 방산협력이 후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지난 6월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미국 대선 향방에 따른 방위산업 영향 및 대응과제’에 따르면, 민주당 승리 ‘긍정적’, 공화당 트럼프 당선 시 ‘부정적’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미국과의 무기체계 공동개발, 방산공급망 진입 등 최근 추진 중인 방산 협력이 도중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 대선 흐름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트럼프 외교안보 라인과의 소통 통로를 미리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