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정치가 길을 잃은 모양새다. 거야 민주당의 입법 강행에 여당은 보이콧으로 대응하는 ‘쳇바퀴’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에서 민생법안 처리와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며 ‘협치’를 말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정치권은 추석 연휴 ‘강제 휴전’이 끝나자마자 김건희·채상병 특검법과 지역화폐법 단독 처리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여야 내부 사정도 복잡하다. 여권은 의정 갈등 문제와 김건희 여사 특검 해법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불협화음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관련 재판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여기에 내달 실시될 국정감사를 비롯해 각종 입법,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을 두고 곳곳에서 여야가 충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싸늘한 추석 민심... 대통령·거대 양당 지지율 박스권 갇혀
추석 연휴 전후 발표된 여론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20%대에 고착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갤럽이 추석 직전인 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율은 20%, 부정 평가는 70%로 집계됐다. 갤럽 조사에서 취임 후 최저치, 부정률 70%는 최고치다. “70대 이상, 보수층 성향에서도 부정률 50% 내외”라고 갤럽은 밝혔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하다. 리얼미터가 지난 9~13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2,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 포인트) 한 결과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27.0%, ‘부정 평가’는 68.7%로 집계됐다. 리얼미터 조사 역시 ‘긍정’ 취임 후 최저치, ‘부정’ 평가 최고치였다. 다만, 추석 연후 직후 조사에선 소폭 상승한 결과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추석 연후 직후인 19~2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에게 물은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 포인트) ‘긍정’은 직전 조사보다 3.3% 포인트 오른 30.3%였다. ‘부정’은 2.5% 포인트 줄어 66.2%를 기록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이윤우 디오피니언 소장은 “리얼미터 조사 기준 추석 직후 대통령 지지율 상승 결과는 오차 범위 내 결과다”며 “이후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전체 흐름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임기 반환점을 돌지 않은 시점에 나온 국정 지지율 20%은 상당히 이례적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통상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국정 지지율 20%’를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되는 신호탄으로 본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통령제에선 20%를 레임덕의 기준으로 본다. 공무원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뭘 해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 상징적인 숫자”라고 말했다.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 30%가 무너지면 국정 운영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소폭 우세 속에 거대 양당 모두 30%대에 고착된 모습이다. 갤럽이 추석직전인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한 결과 국민의힘 28%, 민주당 33%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정부 출범 후 최저치다. 리얼미터 12~13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3.1% 포인트)에선 국민의힘 33.0%, 민주당 39.6%로 나타났다. 추석 연휴 직후(19~2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 오차 ±3.1% 포인트)에서는 국민의힘은 35.2%, 민주당은 39.2%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이윤우 디오피니언 소장은 “국민의힘은 30% 초중반, 민주당은 30% 중후반대 박스권에 갇혀 횡보하는 흐름”이라며 “윤-한 갈등, 이 대표 사법리스크에 변화가 없는 한 양당 모두 ‘드라마틱한 반전’의 모멘텀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10월 7~25일 국정감사를 비롯해 각종 입법 및 내년도 예산안 처리 등 주요 정기국회 일정을 앞두고 전방위에 걸쳐 팽팽한 대치 전선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갤럽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됨. 리얼미터 조사는 무선과 유선 자동응답 방식,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 걸기 방법으로 실시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추석 민심에 대해 ‘동상이몽’식 해석을 내놓은 여야는 연휴가 끝나자 정면 충돌했다. 민주당이 19일 본회의를 열어 지역화폐법, 김건희여사특검법, 채상병특검법 등을 강행 처리하자 국민의힘은 국회 ‘보이콧’으로 대응하고, 즉각 대통령 거부권을 건의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4국조(‘채상병 순직 은폐 의혹’·‘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방송 장악’·‘동해 유전개발 의혹’) 등을 밀어붙일 방침이어서 정국은 ‘강대강’ 대치가 가팔라질 전망이다.
민심 거스르고 정쟁국회... 한동훈-이재명 정국 해법 난망
민주당 입법 강행-국민의힘 ‘보이콧’-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이어지는 ‘도돌이표’ 정국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한 대표와 이 대표의 리더십도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한 대표는 용산 대통령실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과 대장동 관련 재판이 연이어 예정돼 있다. 정쟁 정치를 협치로 전환할 수 있는 동력이 상당히 약화된 상황이다. 7월 23일 전당대회에서 약 63% 득표율로 여당의 지휘봉을 거머쥔 한 대표는 취임 두 달을 넘겼다. 그동안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하고, 민주당 이 대표와 회담에서 ‘여야 민생 공통 공약 추진 협의기구’ 구성 합의를 끌어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오히려 당정·계파 갈등만 증폭됐다.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한 대표의 최대 숙제다.
엄경영 시대정신 연구소장은 “정부와 의료계를 설득해 의정 갈등을 풀어낼 물꼬를 튼다면 한 대표는 꽉 막힌 정국을 풀어갈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았다. 오는 10월 16일 치러지는 부산 금정구청장, 인천 강화군수 재·보궐 선거도 한 대표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보수 지지세가 강한 이 두 지역에서 승리한다면 한 대표는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결심에서 검찰이 징역 2년을 구형해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위증교사 의혹’ 사건 결심공판도 오는 9월 30일 열린다. 이외에도 ‘대북송금 의혹’ 등 여러 사건도 10월부터 줄줄이 재판이 잡혀있어 이 대표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야권 내부에선 김부겸, 김두관, 김동연 등 ‘비명(非이재명)’ 잠룡들이 몸풀기에 돌입하며 이 대표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분위기다. 엄경영 시대정신 연구소장은 “김동연 지사는 중도 확장성에서 장점이 있다”며 “‘포스트 이재명’ 논란이 가열될 상황을 대비해 본인만의 플랜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이 대표 입장에선 ‘11월’까지 사법 리스크를 비롯한 위기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조국혁신당도 전남 영광, 곡성 10·16 재보궐선거로 연일 견제구를 날리며 이 대표를 흔들고 있다.
여야는 9월 28일 비쟁점 민생법안을 합의 처리한 데 이어 지난 1일 대표 회담을 통해 ‘민생 협치’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야권의 쟁점 법안 강행 처리 등 잇따른 충돌로 정국이 급랭 됐지만, 의료 현장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연금개혁 등 협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식어버린 대화 모멘텀을 다시 살릴 숙제가 여야 지도부 앞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준호 민주당 의원은 “용산도 리더십이 없고 무능하지만 민주당도 다수당으로서 무게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며 “여야 정치인들이 당내에서 제 목소리를 내 민생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