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영풍그룹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 대한 경영권 확보를 위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연합하여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면서 국내외 산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양사의 경영권 분쟁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모양새이다. 특히, 중국계 자본인 MBK파트너스가 중국에 매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이에 대한 우려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아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영풍정밀이 경영권 분쟁 ‘최대 격전지’
세계 1위의 비철금속 제련 기업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경영권 분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 측 장 씨 일가가 1대 주주, 고려아연 측 최 씨 일가가 2대 주주로 양측은 기존의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현재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다.
영풍과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 연합이 영풍정밀 공개매수에 나선 가운데 최 회장 등 최 씨 일가가 반격에 나서면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영풍정밀이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우호 지분 방어와 글로벌 우군 확보가 핵심 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다. 영풍이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와 연합하여 공개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최 회장은 국내외에서 법적 대응과 재정적 지원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국내 대기업 주주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물밑 접촉을 진행 중이며, 현재 우호 지분으로 분류된 현대차, 한화그룹, LG화학 등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 소프트뱅크와 아시아 주요 에너지 기업들과 접촉을 통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글로벌 우군 확보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 최 씨 일가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일까지 영풍 주식 7만 8,191주(지분율 4.2%)를 처분해 약 300억 원을 마련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달 23일 5억 원어치를 시작으로 지난달 26일까지 총 117억 원 정도의 지분을 처분했다. 최 회장이 영풍 지분을 가장 많이 팔면서, 최 회장이 가진 영풍 주식은 이제 단 8,449주(0.46%)에 불과하다.
이밖에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과 부인 김록희 씨, 넷째인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의 아들 최정상 씨 등이 영풍 지분을 처분하였다.
영풍-MBK 파트너스 연합이 영풍정밀 지분 최대 43% 확보를 목표로 공개매수를 진행 중인 만큼 최 씨 일가가 이렇게 마련한 자금은 영풍정밀 공개매수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지난 4일 정정공시를 통해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 시한을 기존 이달 4일에서 14일로 늘리면서, 매수가를 기존 75만 원에서 83만 원으로 올렸다. 최초 영풍이 제시한 금액은 66만 원이었다. 두 번째 상향이다.
고려아연은 최소 거래물량도 없앴다. 당초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청구 주식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 필요한 최소치인 약 144만 주에 미달할 경우, 거래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풍은 지난 2일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조건과 동일한 수준을 제시했다.
영풍은 고려아연 반격에 상황이 불리해지자 조건을 바꿔 내건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려아연은 공개매수가 83만 원을 제시했고, 최소 거래 물량은 정하지 않았다.
영풍-MBK 연합과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쥐고 있는 영풍정밀 경영권을 놓고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풍정밀 지분 확보전 역시 중요 변수로 부각된다.
MBK가 영풍정밀 경영권을 확보하면 고려아연 지분 싸움에서 이길 확률을 대폭 높일 수 있다. 최윤범 회장 측 지분 1.85%를 가진 영풍정밀을 뺏어오면, 실질적으로 3.7%의 지분 격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MBK가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영풍정밀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1.85%는 최 씨 일가에서 장 씨 일가로 소속을 바꾸게 된다. 영풍-MBK 연합으로서는 영풍정밀 경영권 확보로 고려아연 지분 격차를 3.7% 벌리는 효과를 얻게 된다.
WSJ, MBK파트너스 기업사냥꾼 규정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쟁을 부추기는 것은 회사가 언젠가 중국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최근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불거진 경영권 분쟁에 대해 보도했다.
WSJ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으로 촉발된 2조 2,300억 원 규모의 인수 난투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의 광물 자원 지배에 대한 우려로 세계 최대 아연 제련소 인수 거래가 난항을 겪고 있다”며 “이는 중국과 독립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에게 보석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WSJ는 “고려아연이 영풍과 연합한 MBK파트너스를 기업사냥꾼으로 규정하며, 만약 이들이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잡는다면 회사의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돼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MBK가 승리할 경우 고려아연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수석 엔지니어들이 사퇴할 것임을 밝혔다”고 전했다.
WSJ는 사모펀드인 MBK가 한국 및 일본과의 압도적인 연계와 투자를 강조하며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지분을 중국에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고려아연 측의 우려는 식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달 18일 대표이사 성명을 통해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의 공개매수에 대해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한다”고 밝혔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는 “이번 공개매수 시도는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약탈적 M&A라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는 명백한 최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차원”이라며 “장 씨(영풍측)와 최 씨(고려아연측) 일가의 지분 격차만을 보더라도 적대적 M&A는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풍과 장 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3.1%로 최 씨 일가(15.6%)보다 2배 이상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중국계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MBK파트너스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지난달 18일 김두겸 울산시장은 “영풍이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은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라며 울산시민 120만 명과 함께 주식 1주 갖기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이에 울산지역 '고려아연 경영권 지키기'에 지역 대학들도 잇따라 힘을 보태고 있다.
소액주주와 지역사회에서도 고려아연에 힘을 보태는 목소리가 나왔다. 소액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 운영진은 지난 15일 “고려아연은 주주환원율 최고의 회사”라며 “‘동학개미’가 회사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사례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금감원 본격 조사, 그 칼날은?
지난 1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83만 원에서 89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는 경영권 분쟁의 상대방인 영풍 측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83만 원보다 6만 원(7.2%) 더 비싼 것이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리코파트너스도 이날 영풍정밀 공개매수 가격을 종전 주당 3만 원에서 3만 5,000원으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이 이처럼 고려아연과 영풍정밀 공개매수 가격을 인상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금감원이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 경쟁 과열에 대해 우려를 내비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 인상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간 고려아연과 영풍·MBK 연합 측은 공개매수, 대항 공개매수, 공개매수가 올리기 등 과열 경쟁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수차례 입장을 내며 공격적인 여론전을 펼쳤으며 흠집 내기, 비방, 반박을 반복했다.
이미 지난 8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고려아연 공개매수와 관련 “상대측 공개매수 방해 목적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확인될 경우 누구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이 원장은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도외시한 지나친 공개매수 가격 경쟁은 종국적으로 주주 가치 훼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공개매수 과정뿐 아니라 이후 발생하는 이슈에 대해서도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규 위반 여부를 철저히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일 영풍 측은 이 원장의 발언 하루 뒤 공개매수 가격 인상을 즉각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최 회장 측 가격 인상 여부와 상관없이 기존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이미 공개적으로 경영권 분쟁 과열을 경고한 금감원의 조사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다.
금감원이 최 회장 측 가격 인상을 기업 가치와 동떨어진 과도한 가격경쟁이라고 판단할 경우, 최 회장 측은 불공정거래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특히, 금감원이 고려아연 공개매수와 관련해 불공정거래 행위 여부를 조사하고 있어, 최 회장 측의 이번 공개매수 가격 인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