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한 마블 영웅의 모습을 퍼즐 조각 삼아 마치 실존한 인물의 일대기처럼 엮었다. 일대기로 만나는 영웅의 모습은 현실 속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가 마블 영웅들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왜 악당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나
영웅들의 모습과 세계관이 선명해질수록 흐릿해지는 것들이 있다. 선악의 개념이나 국가의 개념, 그리고 누가 영웅이고 악당인지에 대한 기준과 경계가 모호해진다. 전작인 〈SF로 만나는 낯선 세계〉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 저자는 익숙한 세계, 익숙한 개념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휘젓는다. 마블 영웅들을 소재로 한 차이와 전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다섯 범주로 나누었다. 첫 번째 범주는 ‘엔드 게임 이후 사라진 영웅들’이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가 여기에 속한다. 마블 영웅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웅들이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점은 진부하고 한계가 많은 캐릭터라는 점도 보여준다. 그들은 구시대에 속했고,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줄 수 없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그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이유를 들여다본다.
두 번째 범주는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영웅들’이다. 블랙 팬서와 헐크, 토르가 등장한다. 블랙 팬서는 흑인 영웅의 강점을 보여주었으나, 남성 지배자로서 가지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 한계는 여성 영웅들의 연대로 극복되기 시작한다. 분열된 자아를 질병으로 받아들이던 헐크는 다중정체성이라는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며 변화한다. 한때 오만한 신이자 지배자였던 토르는 친근함을 내세우며 인간 곁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세 번째 범주는 악당들의 이야기다. ‘영웅과 악당 사이, 악당이 된 영웅들’에서는 타노스와 완다, 로키를 다뤘다. 타노스는 영웅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악당이었고, 완다와 로키는 영웅인지 악당인지 모호한 상태로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다. 완다와 로키의 이야기는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될 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했다. 왜 어떤 이들은 영웅이 아닌 악당의 길을 가게 되는지, 왜 지금의 우리는 악당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지 의문을 품어야 한다.
소수성을 무기로 삼는 영웅들
네 번째로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웅들’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닥터 스트레인지, 앤트맨이 등장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비인간과 인간 영웅의 활약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멀티버스 세계관과 마법을 색다르게 조합하며, 앤트맨은 양자역학의 세계를 마블만의 방식으로 구현한다. 그들은 모두 우리가 새롭고 낯선 세계에서 만나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와 현상들에 마음을 열도록 돕는다.
마지막 다섯 번째 범주는 ‘소수성을 무기로 삼는 영웅들’이다. 스파이더맨과 더 마블스, 이터널스를 다뤘다. 이들은 앞으로 마블이 보여주려는 세계관을 대표한다. 첫 번째 범주에 속했던 세 영웅과 이들을 비교하면 차이가 더 명확하다. 어벤져스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이 약한 영웅들이 이제 세계를 구해야 한다. 영웅이 아닌 우리에게 할 일이 있다면, 그들의 소수성이 약점이 아니라 무기가 되도록 돕는 일이다.
저자는 과도한 PC가 마블을 죽였다고 조롱에 반박하며 마블의 전략은 과거부터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결함 있는 개인’이었던 마블의 영웅들, 그들은 결함을 극복하며 영웅이 되지 않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들은 결함을 가진 채로, 결함을 활용하거나 무기로 삼아 세계를 구하고 영웅으로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