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은밀한 세계 뒤에 감춰진 다툼과 음모, 배신을 파헤치는 스릴러.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신작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는 화제작이다. 랄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이 출연했다.
고대와 현대,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폼페이>, <유령 작가> 등을 집필한 로버트 해리스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에 옮겼다. 로버트 해리스는 현직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2013년 콘클라베 당시 아이디어를 떠올렸으며, 콘클라베 절차가 명시돼 있는 바티칸 법을 면밀히 살피는 것은 물론 바티칸 국무원장과 소통하며 콘클라베 기간 동안 추기경들이 머무는 성녀 마르타의 집, 투표가 이뤄지는 시스티나 예배당 등의 장소를 직접 방문하며 소설을 구체화했다.
영국 아마존과 선데이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원작을 피터 스트로갠이 각색을 맡았다. 피터 스트로갠은 <더 골드핀치> <프랭크> <언피니시드> 등의 각본을 썼으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로 제6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다.
이번 작품으로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각각 각본상과 각색상을 수상했으며, 제7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그리고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 후보에 올랐다.
연출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외국어영화상 4관왕을 차지한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맡았다. 또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 제작사의 새로운 프로젝트 작품이라는 면에서도 주목받았다.
촬영은 유럽 최초의 스튜디오이자 대륙에서 가장 큰 스튜디오 씨네시타에서 진행됐다. 페데리코 펠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20세기 거장 감독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씨네시타 스튜디오에 <콘클라베> 팀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과 성녀 마르타의 집을 지었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교회 건축물만 보여지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미스터 터너> <주키퍼스 와이프> <체실 비치에서> 등을 작업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수지 데이비스와 논의해 고대 건축과 역사적 건축, 현대건축이 공존하는 공간을 연출했다. 수지 데이비스는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등 상반된 이미지를 대비적으로 활용해 매혹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냈다.
15세기 여름 비오 4세 교황의 거주지에 만들어진 ‘거북이 분수대’에서 영감을 받아 수십 마리의 파충류가 서식하는 풀장을 제작하기도 했다. 구약과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거북이는 기독교의 덕목을 상징한다. 거북이의 끊임없는 걸음은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을, 껍질은 하나님의 안식처를, 장수는 영적 성장의 영원한 본성을 반영했다. 배역의 의상 역시 고유의 독창성이 적용됐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의상을 디자인한 리시 크리스틀은 대여가 아닌 직접 새로운 의상을 제작했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동일한 의복을 입고 있는 영화에서 십자가, 반지, 신발, 외투 등 악세서리의 디테일을 통해 캐릭터를 차별화했다.
랄프 파인즈의 강렬한 연기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도 관람 포인트다. <쉰들러 리스트>, <잉글리쉬 페이션트>, <해리 포터>, <007>, <킹스맨>, <허트 로커>, <헤일, 시저!> 등에 출연한 랄프 파인즈는 단장으로서 콘클라베를 끌어가는 중심인물인 로렌스를 연기했다.
영적 정직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선거가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인물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러블리 본즈>, <스포트라이트> 등으로 알려진 스탠리 투치는 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교황 후보자 벨리니 역을 맡았다. 교황이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선대 교황이 오랜 세월 쌓아온 업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어, 보수 진영의 후보가 교황이 되지 않도록 강력히 저지하는 인물이다.
존 리스고는 벨리니와 함께 차기 교황으로 유력시되는 주요 후보 중 한 명인 트랑블레를 연기했다. 교황 선종 당일 교황과 마지막으로 면담을 한 인물로, 베일에 쌓인 면담 내용부터 콘클라베에서 일어날 큰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사실까지 드러나며 단장 로렌스를 혼란스럽게 하는 역할이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를 존 리스고 특유의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해석, 시종일관 극에 긴장감을 선사한다. 120분의 드라마 중 단 7분 51초의 등장만으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등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수녀 아녜스 역으로 출연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세계에서 여성이 지닌 침묵의 권위를 보여주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