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정계복귀하면 당선될 수 있다고?”, “이 보고서가 그거여? 나 정치 안 해요”, “이 보고서 나 아직 안봤는데…내가 외부에 나가지 않게 보관하고 있겠어요”
1992년 12월18일 3번째 대권도전에 실패한 DJ(김대중)는 다음날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곡기를 끊고 동교동 자택 지하서재에서 칩거한지 사흘째 되는날 장성민 비서(현 김대중재단 이사)가 들고온 보고서에 이같이 반응했다. 책상서랍에 보고서를 넣고 열쇠를 잠근 DJ는 다음날부터 식사를 시작했다.
"만약 검찰이 (비자금)수사를 하면 광주를 비롯한 전국에서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나도 YS(김영삼)와 전면 투쟁을 하는 수밖에 없다. YS는 퇴임후 망명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중립을…"
대선을 2개월 앞둔 1997년 10월16일 DJ는 골프모자를 쓰고 조선호텔 7층 객실에서 비밀리에 김광일 청와대특보를 만나 `DJ비자금'과 관련해 YS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했다. 사흘뒤인 10월19일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YS를 만나 DJ 비자금 수사 불가론을 주장했고 YS는 "그래, 알았다"고 동의했다.
20여년 동안 김대중 비서로 일한 장 이사와 김종혁 중앙SUNDAY 편집국장이 지난해 중앙SUNDAY에 연재한 '인간 김대중 이야기'를 보강해 책으로 엮은 ‘김대중, 다시 정권교체를 말하다(중앙books)’의 일부 내용이다.
이 책에는 DJ가 직접 감수한 `김대중 자서전(2010년)'에서도 보이지 않는 1992년 12월19일 정계은퇴에서 1997년 12월18일 제15대 대통령 당선까지 1825일간의 숨겨진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있다.
3번째 대권 낙마후 곡기를 끊고 고뇌하던 DJ가 미국이 아닌, 영국으로 옥스포드대학이 아닌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유학을 간 사연,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자서전을 쓴 전후 과정 등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재기의 몸부림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또 1995년 7월 정계 복귀, 신당창당, 1997년 DJP 연합, DJ비자금 사건 비화 등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집권 플랜을 만들었던 `대권아지트, 강변 한신코아 1411호'도 그렇고 과격한 이미지를 벗기 위한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프로젝트에서 개그맨들에게 화술을 배우고 성우를 초빙해 사투리를 교정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 책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던 DJ가 어떻게 재기를 모색하고 어떤 전략을 세워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는지에 대한 보고서이며, 불편한 몸의 70대 노객이 언젠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의지'를 한 순간도 버리지 않고 운명을 개척해 낸 과정에 대한 증언이다.
저자들은 "이 책은 김대중에 대한 찬사로 가득찬 전기와 다르다. 김대중의 능력과 장점은 물론, 약점과 나약함 모두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기때문이다"면서 "김대중 전기가 아니라 냉정한 평전임과 동시에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일종의 분석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books 펴냄. 288쪽.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