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사람 서울로 다 모여!”
산자부 공업배치및설립 시행령,
수도권 집중화 유발로 각계 반발 커
전 국토면적의 11.8%에 전체 인구의 45.5%, 제조업체수의 55.1%, 은행예금의 65.9%, 중앙기관수의 69.4%가
몰려 있는 곳. 오늘날 서울과 수도권의 실상이다. 앞의 예에서 보듯 인구를 비롯한 제반시설과 경제주체의 수도권 집중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지역균형개발을 위한 각종 법안 제정과 정책 등으로 문제를 타개해 나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며 세부 법률에선 오히려 수도권 집중을 부채질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로 각 정부에서 발표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수도권 인구 및 산업기능의 과밀현상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선, 서울시의
면적(606㎢)에 1천만명을 상회하는 인구가 거주하는 국가가 없다. 도쿄만 하더라도 617㎢의 면적에 815만이 거주하고 있다. 런던,
파리, 뉴욕 등을 동일한 면적으로 구획하면 서울의 50∼60% 정도의 인구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IMF 이후 수도권 집중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1/4분기 인구이동 집계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중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으로
4만8천명이 순유입돼, 전 분기 3만6천명보다 35%나 증가했다. 이같은 규모는 지난 92년 2/4분기 이후 가장 큰 증가세를 나타낸 것이다.
외국인 투자유치가 목적?
지난 11월 28일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에서는 외국인 투자기업과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수도권 입지규제를 완화하는 ‘공업배치및공장설립에관한법률
시행령’(이하 공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그동안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지적받아온 지역균형 발전론에
정면으로 대치되고 있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성장관리지역에서 공장의 신설·증설이 허용되는 외국인 투자기업의 업종이 기존 24개에서 28개로 대폭 확대
△외국인 투자기업의 범위도 현행 외국인 투자비율이 51% 이상인 기업에서 30%이상인 기업으로 확대 △성장관리지역에서 외국인 투자기업에
의한 공장의 신설·증설 허용기간이 현행 2001.12.31에서 2004.12.31로 연장 △대규모기업집단도 대기업과 동일하게 과밀억제지역에서
성장관리지역으로 이전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산자부는 이러한 조치를 통해 외국인의 투자유치를 확대하고 수도권 입지 및
국가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을 둘러싸고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2001년
내에 개정작업을 완료하겠다는 당초 입장을 수정해 현재까지 법안 처리를 유보한 상태다.
수도권 집중화 가속시키는 공배법
이번 공배법 시행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도권 집중의 심화에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의 박완기 사무국장은 “대기업을 비롯한
첨단 벤처산업 등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국가의 중추 관리기능은 물론 일자리, 교육환경 등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박
사무국장은 “폭발 직전의 수도권 집중은 주택부족, 교통혼잡, 환경오염 등 도시환경과 자연환경 등의 훼손을 가져오는 등 심각한 폐해를 도출시키고
있으며, 서울시의 경우 지난 99년에만도 환경비용에 약 4조원의 비용을 지출하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소모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랍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시도별 지역내 총생산 및 지출’ 집계를 살펴봐도, 국내 전체 생산액 중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의 비중이 탈서울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0.9% 증가한 47.2%를 기록해, 이 지역의 경제력 집중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공배법 시행령의 또다른 걸림돌은 지방경제의 파탄에 의한 지역불균형 심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2001년 행자부 자료의 지자체별 재정자립도를
보면, 서울시가 94.9%의 높은 자립도를 보인 반면, 전남 장흥군의 경우 9.3%로 그 격차가 상당함을 드러냈다. 전국적으로 재정자립도가
50%에 미치지 못하는 지자체만 무려 79%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수도권 위주의 개발정책은 지방의 거점기능 약화
→ 도시 경쟁력 약화 → 지역간 격차 심화의 과정을 거쳐 결국 국가경쟁력 저하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 부작용 심각
개정된 공배법 시행령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부의 수도권 집중화 정책으로 야기될 부작용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우선, 확대되는 외국인 투자기업의
업종이 바이오, 반도체, 의료용품, 액정표시창 등 첨단 업종에 걸쳐있다. 그러나 특히 바이오, 의료용품 등은 첨단업종의 성격과 함께 공해유발
산업의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어, ‘수도권 입지가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범위를 30% 이상인 기업으로 확대시킨 법안은, 실제 외국인회사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유치를 명분으로 실질적인 내국인
투자기업까지 수도권으로 입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비율이 30∼51%에 해당되는 업체들 중에는 SK텔레콤(47.84%),
LG화학(30.11%), 롯데제과(34.42%), 삼성전기(30.31%), 삼성중공업(30.84%), 현대자동차(50.27%), 호남석유화학(34.49%)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즐비하다. 이는 마산 자유무역지역과 같이 정부와 자치단체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외국인
투자기업 유치대책을 유명무실화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대규모기업집단의 이전이 가능케 된 것도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대기업의
입지에 따라 관련 중소기업이 집단적으로 입지하게 되는 우리 산업구조상, 대다수의 중소업종들이 대거 수도권으로 유입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은 정부가 ‘성장관리지역’으로 규제했던 수도권이 또다시 ‘성장주도지역’으로 바뀌는 모순을 안게 된다.
지방분권 기초된 지역발전 이뤄져야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에 한계를 느낀 지방대학 교수들이나 지역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최근들어 지방의 자치권과 자율권 강화를 주장하는 이른바
‘지방분권’이론이 확산되고 있다. 단국대 사회학부 조명래 교수는 “그동안 논의되어 왔던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접근이, 중앙정부 주도의 물리적
국토개발이나 지역경제진흥 사업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며 이에 대한 한계를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중앙집권적이며 시혜적 수준에
그쳤던 지역균형발전론의 접근방향이 ‘분산적, 분권적, 분업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분권적 지역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앙의 권력이 대폭 포기되거나 지방으로 이전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역주권’을 존중하는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지방정부위원회나 지방의회연합 같은 기구들이 주축이 되어 지방이 필요로 하는 권한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분산화는 중앙정부기관이나 국가적 자원들을 지방별로 배분 할당하는 방식의 지역발전을 의미한다. 조 교수는 “지역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중앙정부는
어디까지나 후원자에 머물러야 하며, 사업방식도 관련주체들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실련 도시계획센터를 비롯해 91개에 이르는 시민사회단체는 공배법 시행령의 즉각적인 철회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공동의견서를
산자부에 제출한 상태다. 이번 개정안처럼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하는 정부의 방침이 거꾸로 가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시민단체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장진원 기자 newsboy@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