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간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5%를 초과하면 지방간이다. 알코올성 지방간은 과음이 원인이지만 비알코올 지방간은 대사질환으로 발생한다. 증상이 크게 없어 방치하기 쉽지만 관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기능 저하와 더불어 각종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각종 암 발생 위험 증가
전 세계 인구 4명 중 1명꼴로 나타나는 비알코올 지방간질환은 주로 비만,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에 동반된다. 환자의 30%에서는 간염, 간경화 및 섬유증 등으로 진행될 수 있다. 비알코올 지방간은 사망위험을 높인다. 음주를 하지 않았음에도 간에 정상보다 많은 양의 지방이 축적된 비알코올 지방간질환을 측정한 값인 ‘지방간 지수’가 높으면 사망률이 높고, 저체중일수록 사망 위험이 특히 증가한다. 서울대병원 유수종 소화기내과 교수·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한경도 교수 공동연구팀이 국가건강검진에 참여한 885만 8421명을 대상으로 비알코올 지방간질환과 원인별 사망률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한 전국 코호트(동일집단) 연구 결과다. 885만여 명을 8.3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지방간 지수가 높은 그룹일수록 사망 위험도 높았다.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비알코올 지방간 환자는 비만 등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사이상증후군 뿐 아니라 체중 감소를 유발하는 근감소증·근감소성 비만 같은 질환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이 암종별 사망률을 추가 분석한 결과, 지방간 지수가 높아질수록 식도암·위암·대장암·폐간담도암·유방암·전립선암으로 인한 사망률 모두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곽금연·신동현 교수, 임상역학연구센터 조주희·강단비, 교수, 건강의학센터 강미라 교수 연구팀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있다면 근손실이 더 많이, 빨리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앞서 발표했다. 20세 이상 성인 남녀 5만 2815명(평균 49.1세)을 분석한 결과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진단받은 사람은 전체의 31.9%인 1만 6859명으로 집계됐다.
연구팀은 몸 속 수분과 지방을 계산하는 생체 전기 임피던스 측정기법(BIA)을 이용해 측정된 사지근육량의 변화를 비알코올성 지방간 여부에 따라 살펴봤다. 그 결과 나이가 들수록 근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있는 사람(281.3g)은 없는 사람(225.2g)에 비해 5년 간 근육량이 평균 25% 가량 더 많이 감소했다. 특히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가 간섬유화가 진행된 경우 약 2배 정도 근손실이 더 많이 발생했다. 50대 미만이거나, 당뇨나 고지혈증을 동반한 경우, 흡연을 하는 경우, 음주량이 많은 경우 비알코올성 지방간과 근손실과의 상관관계가 더욱 두드러졌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라면 ‘체중을 줄이는 동시에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치매에 걸릴 위험 또한 커진다. 특히 중년과 노년기에 발생하는 치매 중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형 치매(알츠하이머병)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팀이 건강 검진을 받은 60세 이상 성인 60만8994명을 2020년 말까지 10여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이 중 8%가 치매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비알코올 지방간 진단 지표인 ‘지방간 지수(Fatty Liver Index, FLI)’의 정도에 따라 세 그룹으로 분류한 뒤 추적 관찰 기간 동안 나타난 그룹별 치매 발병률을 비교·분석해 두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 높은 지방간 지수가 노년기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독립적인 위험인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전체의 7%에 해당하는 4만 8614명에서 치매가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고, 높은 지방간 지수가 치매 위험 상승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그룹 간 비교에 널리 활용되는 성향점수매칭(Propensity Score Matching) 결과 지방간 지수가 낮은 그룹(FLI<30)은 중간 그룹(30≦FLI<60)에 비해 치매 발병 위험이 감소한 반면, 지방간 지수가 높은 그룹(FLI>60)의 치매 발병 위험은 유의하게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중해식 식단 효과 뛰어나
그렇다면 지방간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잡힌 식사다. 비알코올 지방간은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아도 내장지방이 많은 마른형 비만에서도 발생되기 때문에 체지방을 줄여야 한다. 탄수화물의 양을 줄여야 하며 기름기가 많은 고기 부위, 과자나 당도 높은 과일 등 당도가 높은 음식도 멀리해야 한다. 지중해식 식단이 체중감량과 지방간의 개선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식사 패턴인 지중해식 식단은 곡류, 채소, 과일, 올리브 오일, 레드 와인, 토마토 등을 주로 섭취하며 균형 잡힌 식사를 지향한다. 한식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어 지방간 치료나 예방을 위한 식사법으로 권장할만하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이지원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한국식 지중해식이(KMD, Korean style Mediterranean diet)’는 한식에 적응하기 쉽도록 고안된 것이다. 일반 식단에 비해 열량이 약 300㎉ 정도 낮고,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비율을 5:3:2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때 지방은 등푸른 생선·견과류·들기름·아마씨유 등에 많은 오메가3 위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운동이 체중감량의 효과가 식이요법에 비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지방간 치료나 예방을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다. 또한 운동과 식이요법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김민선 교수팀은 적당한 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이 식욕조절에 중요한 뇌 신경세포에 약한 스트레스를 전달하고, 이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활성화되면서 체내 에너지 소모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팀은 생쥐 실험을 통해 체중 조절에 가장 중요한 신경세포 중 하나인 프로오피오멜라노코르틴(POMC) 신경세포에 강도가 다른 스트레스를 가한 뒤 생체 반응을 관찰했다. 강한 스트레스를 가하자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생쥐에게서 심한 비만증이 나타났다. 반면 약한 스트레스를 가하자 뇌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유익한 화학물질인 베타-엔돌핀(β-endorphine)이 다량 생성돼 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됐다. 이후 지방조직 내 열 발생으로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비만증에 거의 걸리지 않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김 교수팀은 운동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생체 기능에 유익한 효과를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생쥐에게 2주 간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운동을 시켰다. 그 결과 운동을 할 때 근육세포에서 분비되는 인터류킨-6 호르몬이 뇌로 이동해 식욕을 억제하는 POMC 신경세포에 약한 스트레스를 전달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로 인해 POMC 신경세포에서 베타-엔돌핀 생산이 촉진되고 교감신경이 흥분되면서 지방조직의 에너지 소모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