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2016년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이 현재 우리 사회의 변혁을 예견하는 4차 산업혁명 화두를 이렇게 언급했다. 4차 산업혁명은 시대적인 트렌드로 ‘시스템혁명’이 일어날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또한 정부와 의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도전’이라는 명제에 직면할 것이며,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변화 중 하나는 ‘교육’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우리가 3차 산업혁명시대에 살고 있든 아님, 4차 산업혁명시대에 발맞춰 살아가든 중요한 것은 ‘시대적 니즈(Needs)’에 제대로 부응하며 잘 살고는 있는가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개방’과 ‘융합’을 통한 ‘초현실사회의 구현’에 있다. ‘디지털 혁명’의 물결이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으로까지 밀려들어왔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현실과 가상 세계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면서 ‘디지털 트렌스폼’과 ‘아날로그 트렌스폼’이 동시에 이뤄지는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 기반의 시대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슈밥 회장의 의견대로라면, 시스템 혁명과 속도, 도전과 함께 교육의 중요성을 들 수가 있겠다. ‘시스템 혁명’이란, 일종의
너에게서 출발한 것은 다시 너에게로 돌아간다.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 맹자편, 양해왕 하)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의 유래는 한방의에서 감기 등으로 신열이 있을 때 취한제(取汗劑)를 쓴다거나, 한여름 더위에 뜨거운 차를 마셔서 더위를 물리친다거나, 힘은 힘으로써 물리친다는 따위에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표현으로 변형(變形)이 되면, 내가 당한 것은 꼭 되돌려 줘야만 직성(直星)이 풀리는 여유 없는 심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요. 입장을 바꿔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에서 타인의 응분(應分)을 사거나 큰 실례를 저질렀다고 가정했을 때, 그 당사자의 심정은 과연 어떠한 마음일까요? 여기서 항상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합니다. 문구를 해석해보면, 증자는 “네가 한 언행은 네게로 돌아간다. 즉 선에는 선이 돌아오고, 악에는 악이 돌아온다”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실로 ‘인과응보(因果應報)적인 삶의 전형적인 형태’로 보입니다. 즉, 이는 ‘노(魯)나라와의 싸움에서 추(鄒)나라 군대의 장교가 33명이나 전사했는데, 그 부하인 백성의 군대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
(無罪歲, <斯天下之民至焉.> - 맹자편, 양해왕 상) 왕이 어진 정치를 베풀면 백성들은 그를 본받아 분수(分數)에 맞게 살 것이고, 그가 걱정하는 것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해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나라를 오랫동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맹자는 그만큼 왕이 패권주의(覇權主義)에 물들지 않고 중심을 백성들에게 두어 도덕정치(道德政治)를 베풀 때, 비로소 백성들도 인의(仁義)정신을 받들어 왕에 대한 무한 신뢰와 충성을 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준 것이지요. 외부로부터의 침입도 없고 어떠한 적의 침공도 능히 무찌를 수 있는, 안으로의 단단한 결속력을 갖춘 태평천국(太平天國)이라 한들 흉년(凶年)이 들면 그 민심은 순식간에 흉흉해지며 도적과 불신, 시기세력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그나마 곳간의 곡식들을 강탈당하거나, 입에 풀칠할 정도가 되면 응당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 문구를 해석해보면, “흉년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백성의 기아를 금년의 기후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하거나, 잘못이 흉년에 있다는 등과 같이 세월을 탓하지 않고, 그것을 왕 스스로의 책임으로 여기고 정치를 한다면 천하의 농민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왕의 치하로 모여들
나는 하지 않는 것일 뿐,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不爲也, 非不能也. - 맹자편, 양해왕 상) [시사뉴스] ‘정도전’ 대하드라마에서도 인용된 문구입니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도 이만한 변명꺼리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은 왕이 어진 정치를 베풀지 못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데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조선 건국을 주창(主唱)한 사상가이자 개혁파(改革派)인 정도전은 전라도 나주로 유배(流配)를 당했을 때, 불철주야 고전과 정몽주가 준 맹자를 읽었다고 하는데, 이를 시대상에 맞게 번역을 하자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와도 같은 이를 자극주기 위해 한 말이기도 합니다. 문구를 해석해보면,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는 일을 두고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을 위해 가지를 꺾는 일을 두고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게 아닙니다.”라는 의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시대를 막론(莫論)하고 ‘할 수 없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