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49일만인 오는 29일 3박5일 방미길에 오른다. 전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비하면 가장 빠른 방미이다. 이런 빠른 방미는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북핵, 사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디든 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할 외교적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미정상회담 첫 시험대
문재인 정부는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이로 인해 사드배치, 중국의 사드보복조치 등 에 대해 중량감 있는 특사를 파견함으로써 사전 정지작업을 펼쳐왔다. 이로 인해 한미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이끌어 냈고,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위안부 합의 등에 대해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분명히 전하는 한편, 다른 분야에서는 상호 협력을 강조해 경색 관계를 풀 계기를 마련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전정지작업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이 첫 국제무대 데뷔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느냐이다. 특히 한미관계는 우리 외교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나, 美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정부에 비해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장 안보와 직결되는 북핵문제와 미사일 도발, 이와 연계되는 사드배치와 방위비 분담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주적 목소리를 내려는 현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과 이해상충의 여지가 다분하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이 손해를 본다는 생각하에 한미 FTA에 개정 또는 폐지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미양자 만의 관계라면 서로 주고 받으면 되니 문제해결이 그나마 용이하다고 할 수 있으나, 한·중·일·러 등 주변국들과 실타래처럼 상호 연결되어 있다.
당장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미중의 입장이 180도 다르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용이라며 배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은 주한미군 사는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드는 다시 한·미·일 3각 동맹 강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한·미, 미·일 동맹이라는 반쪽짜리 동맹에서 벗어나 한·미·일을 한 축으로 하는 3각 동맹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사드 배치에 차질이 생길 경우 3각 동맹 역시 미완에 그칠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사드 배치와 관련해 취해온 '전략성 모호성'은 미중 양국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이미 상당부분 사드가 배치됐다는 점에서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불만의 표시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를 포함한 한미일 3자 모두 어느 한쪽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 등을 앞세워 시간을 벌어놓고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체면을 세워주고 그 사이 중국을 설득하는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었으나,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특히 사드배치 진상조사는 우리 내부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 서둘러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딕 더빈 미 상원의원이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예산을 철회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 논란은 미국도 안보에 있어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급파해 이전 정부 간의 합의를 뒤집자는 것이 아닌, 절차적 정당성 확보 차원의 과정에서 재조사가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실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사드는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결정한 것"이라며 "한미 동맹 차원에서의 약속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정상회담 준비부터 기 싸움 치열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앞서 한미 외교차관이 14일 한국에서 만나 사전 협의를 진행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토마스 섀넌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과 한미 정상회담 협의 차원에서 준비 현황을 점검했다. 앞서 임 차관은 지난달 말께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 관련 상호 입장을 한 차례 조율한 바 있어, 조금 더 세부적인 입장 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 상견례 의미가 있는 만큼 한미동맹이라는 틀 속에서 북핵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THAAD), 방위비분담금 등 양국 간 주요 현안의 경우 논의를 피해 가려 하기보다는 수위를 조절하는 데 사전협의의 초점이 맞춰질 거라는 관측이다. 외교부는 "정상회담이 확고한 대북공조를 포함한 양국 간 포괄적 협력의 토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공감하고, 성공적인 회담 개최를 위해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사드배치에 관해 한미정상회담에 세부적인 확정을 압박하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현지시간 14일 이달 말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배치에 대해 언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상원 세출위원회 군방소위 청문회에서 주한미군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 측의 우려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즉 이번 정상회담에 주요 의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외교수장 없이 준비하는 한미정상회담? 유연성 필요
당장 한미 정상회담을 조율해야하는 절박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가 끝난 강경화 후보자를 외교부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유엔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아온 강 후보자의 인적 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외교·국가안보에는 여야·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시기에 정치 공학적 논리에 매몰돼 있다. 외교부장관 임명 강행시 협치는 없다며 으름장을 놓으며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아닌 전직 외교부 장관들의 강경화 후보자 지지 선언은 야당에서 제기하는 5대원칙 흠결보다는 지금 우리가 처한 외교현실이 더 절박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 모두 국가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파악하는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