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인텔 '패권 다툼'…삼성도 기술개발·투자 잰걸음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애플이 지난 15년간 인연을 맺어온 인텔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맥 시리즈에 자체적으로 생산한 반도체를 사용하겠다고 부품 공급선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파운드리 업계도 공급선의 연쇄 이동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글로벌 패권 경쟁에 따른 치열한 수주·기술 경쟁에 막이 오를 전망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M1프로와 M1맥스가 탑재된 노트북 맥북프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애플은 이를 통해 지난해 출시한 중저가 노트북에 들어가는 'M1'에 이어 프리미엄 맥북인 맥북 프로까지 이어지는 자체 개발 반도체 라인업을 완성했다. 특히 새로운 반도체가 탑재된 맥북프로는 타사 고성능 모델 대비 1.7배 빠르다고 애플측은 밝혔다.
애플은 이를 통해 모든 노트북에 인텔 CPU(중앙처리장치) 대신 자체 칩을 탑재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은 이번 신제품 출시와 함께 인텔의 반도체를 장착한 기존 맥북 제품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
애플이 독자노선을 택하면서 파운드리 업계에도 파장이 불가피하다. 애플의 부품 수급선 변화로 파운드리 수주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애플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생산시설을 갖고 있지 않다. 설계만 맡고 생산은 TSMC나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 때문에 애플이 발주한 일감이 늘어나는 만큼, 인텔에서 수주할 수 있는 물량은 줄어들 전망이다. 글로벌 대형 기술 업체간 경쟁이 파운드리 업계에 새로운 경쟁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연구원은 "일감이 감소하더라도, 최근 반도체 품귀 상황은 새로운 일감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발주 시장의 지각 변동은 파운드리 업체 간 기술, 수주 경쟁을 촉발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탈 인텔'이 가시화되면 대만 TSMC와 삼성전자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홍콩의 시장조사업체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 2분기 기준 58%(매출액 기준)로 절반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2위지만 점유율이 14%에 그쳐 격차가 크다.
아직 애플의 새로운 칩을 어느 업체가 수주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애플과 TSMC의 동맹 관계가 굳건해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를 낳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은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독점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아이폰13도 TSMC의 AP가 들어간다.
이는 애플이 신제품 라인업 관련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꺼려 삼성 대신 대만 TSMC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종합반도체회사로서 삼성전자가 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분사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는 데, 같은 기간 반도체 전체 이익 6조93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반면 파운드리 생산라인 하나 짓는 데 20조원가량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사가 불가능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업 부문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분사는) 전혀 필요성 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투자 여력 면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많다"고 밝혔다.
파운드리 업체 간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애플이 독자노선을 택한 이유가 첨단 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만큼, 애플과 TSMC의 협력에 대응해 경쟁 업체들의 기술 개발 경쟁도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TSMC는 애플과 함께 2024년 2나노 공정을 양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인텔도 '반도체 왕좌'를 다시 찾기 위해 같은 시기 2나노 공정으로 퀄컴의 칩셋을 만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퀄컴의 칩셋은 TSMC와 삼성이 제조해왔다.
사실상 애플과 인텔이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삼성전자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삼성전자는 TSMC, 인텔 등 경쟁 업체보다 1년 늦은 2025년에 2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20조원)를 투자해 미국에 제2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짓기로 하고 현재 부지 선정 관련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가운데 투자 결정이 임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달께 미국 출장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번 방미 기간 중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지난 2019년 4월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