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금융감독원이 경남기업 워크아웃과 관련해 신한은행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의 칼끝이 점차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팀장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의 조준점이 부원장까지 높아졌다.
금감원은 당시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던 최수현 전 원장이 결국 수사대상에 오르게 될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검찰은 최 원장을 수사대상에 올려놓지 않고 있다. 신한은행에 압박을 가한 당사자는 김진수 전 부원장보와 A팀장인 만큼 일단 이들에 대해 집중 수사한다는 게 검찰의 방침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7일 이뤄진 검찰의 압수수색은 수사대상이 확대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날 검찰은 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주목되는 점은 압수수색 대상에 김진수 전 부원장보의 자택과 금감원 본원, 신한은행외에 추가로 포함된 곳이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금감원에서 은행을 담당했던 조영제 전 부원장과 기업여신 업무를 취급했던 신한은행 전직 부행장의 자택에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경남기업 로비의혹과 관련해 꾸준히 이름이 거론됐지만 수사대상에는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검찰이 금감원을 압수수색하면서 조 전 부원장의 개인물품과 그가 주고받은 이메일 등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무국을 뒤졌다는 점도 그냥 지나치기 힘든 대목이다. 검찰은 총무국에서 금감원의 인사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또 다른 인물이 수사대상에 오를지 주목된다.
이처럼 검찰이 수사 스펙트럼을 넓혀감에 따라 금감원은 금융감독당국 수장이 수사를 받는 '잔혹사'가 또 다시 재현되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감원은 첫 수장을 지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부터 현 진웅섭 원장까지 10명의 수장 가운데 절반인 5명의 원장이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는 불명예를 이어왔다.
금감원의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 시절 위원장을 지낸 1대 원장 이헌재 전 부총리는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해 2006년 11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대 원장인 이용근 전 위원장은 지난 2003년 8월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구속수감됐고, 3대 원장인 이근영 전 원장은 2007년 1월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와 관련해 '김흥주 로비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어 4대 이정재 전 원장은 2006년 5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2011년 6월에는 7대 김종창 전 원장이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불려갔다.
'금융 검찰'이라 불리는 금감원의 역대 수장들이 오히려 수사 대상이 되는 불미스런 상황은 검사와 제재를 양손에 거머쥔 금감원이 지닌 막강한 금융권력과 관계 깊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감원은 고유권한인 검사권을 통해 금융기관들의 치부와 속살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데다, 금융사 CEO의 진퇴를 결정짓는 징계권도 행사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금융사들은 금감원의 요청이나 권고를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고,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금감원 수장들은 금융사를 통한 이권개입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특히 금감원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 음성적으로 개입, 채권단 등을 상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사실상 기업 생사여탈권의 향방을 쥐는 역할을 함으로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등에서 수 많은 논란을 불러 왔다.
'경제 검찰'이라는 금감원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자주 뒤집어쓰는 배경이기도 한다.
금감원이 경남기업의 무상감자 없는 출자 전환을 채권단에 종용했다는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9대 원장인 최수현 전 원장이 경남기업 로비의혹과 관련이 있다는 정황은 아직 알려진 게 없는 상태다. 검찰도 최 전 원장이 연루된 일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최수연 전 원장에 대해서는 '일단' 거론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는 점이다.
신한은행에 압력을 행사한 이른바 '금감원 충청라인'의 정점이 최수현 전 원장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실무자인 A팀장과 김진수 전 부원장보, 조영제 전 부원장은 모두 최 전 원장과 동향인 충청도 출신들이며, 최 전 원장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주도한 '충청포럼' 멤버로까지 활동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최 전 원장은 금감원 수장시절 인사, 감찰, 정보팀장 등 요직에 모두 충청도 출신을 앉힐 만큼 지역편중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혹시라도 이번 일과 관련해 또다시 위상이 추락할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최 전 원장이 검찰에 소환이라도 될 경우 저축은행 사태와 동양그룹 사태, 신용카드 정보유출 등 잇딴 파문으로 땅에 떨어진 신뢰성이 또 한번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감독기구 수장이 뉴스에 등장하는 일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한동안 조용했던 금감원이 또 시끄러워질까 걱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