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현행 헌법은 역사의 격변기인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6·29선언, 대통령 직선제 합의 이후 탄생했다. 2017년 현재의 개헌 논의도 6월 민주항쟁에 버금가는 작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이끈 1000만 촛불 혁명에 이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를 이끌고 있다. 비슷하지만 다른 과거의 개헌과정을 통해 현재의 개헌 논의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1987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의 경찰 고문 치사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국민들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인권탄압과 비민주성에 대한 강력한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자연스럽게 개헌논의로 연결되었고,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올림픽 뒤로 미루고 1980년 헌법 하에서 정부를 이양한다는 내용의 ‘4·13호헌선언’을 발표했지만 시민사회를 넘어 종교계까지 반발을 일으켰고, 당시 통일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후 1987년 6월10일 전국 22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렸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6월26일 국민평화대행진을 기획했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전두환 정권은 6월29일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을 통해 민주화와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국민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담화’, 이른바 6·29 선언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정치권 중심의 개헌 협상 ... 국민은 사라져
당시 개헌협상은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의원 각 4명씩으로 구성된 ‘8인 정치회담’에서 주도했다. 여당에서는 권익현, 윤길중, 최영철, 이한동 의원이 선임되었고 야당에서는 이용희(김대중계), 이중재(김대중계), 박용만(김영삼계), 김동영(김영삼계) 당시 의원들이 선임됐다. 8인 정치회담에서 대통령 직선제 등 주요한 쟁점 사항은 사실상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약 1개월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에 헌법개정안 협상을 진행하였다.
1987년 7월31일에 첫 만남을 시작하였고 8월31일까지 헌법 발효 시기 등 부칙을 제외한 헌법 전문과 본문에 대한 협상이 이루어졌다. 8인 정치회담은 1987년 8월3일부터 본격화되었고, 9월1일에 이르러 협상이 타결되었다. 당시에 주요 사항은 8인 정치회담을 통해 결정되었고, 국회 헌법 개정특위는 결정된 사항을 바탕으로 헌법개정안을 만들었다.
이러한 8인 정치회담은 당시 국민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치열한 논쟁보다는 자신들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가장 유리한 방향을 가지고 논쟁했고, 한번씩 돌아가며 대통령을 할 수 있게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세계적으로도 생소한 제도를 합의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들이었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중 김종필을 제외한 3인이 차례로 대통령에 오르며, 당시의 야합이 성공했음을 보여줬다.
현재의 개헌 정국, 87년과 비슷한 점 많아
현재의 개헌 정국은 30년 전인 1987년과 상당부분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통해 6·10민주항쟁을 넘어서는 1000만이 넘는 시민들이 단순한 투표권 행사를 넘어 직접 광장으로 나와 촛불혁명을 통해 현직 대통령을 탄핵소추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즉 이대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국민적 의사가 직접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박종철 치사 사건이 자연스레 개헌논의로 확장된 것과 같이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건이 개헌논의로 확장되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더불어 당시의 개헌논의가 유력 정치인들에 의해 결정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현재의 개헌 논의도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이끌어지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할 것이다.
특히 현재의 개헌 논의는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논의보다는 통치구조 즉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폐혜를 지적하며,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물꼬를 트고 있다.
제도만의 문제인가
권력 분점형 개헌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현 박근혜 정부의 실패와 불공정·불균형의 원인을 제왕적 대통령 제도와 5년 단임제에서 찾고 있다.
현행 5년 단임의 대통령제와 관련하여 유력 정치인들의 야합이 있었기는 하지만 당시에 도입되게 된 헌정사적 배경은 더 이상 독재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는 헌정사적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현행 헌법은 30년 동안 더 이상 군부 쿠테타 또는 독재의 염려를 불식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왔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선택 교수는 ‘한국민주주의에 있어서 역사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미국 학계에서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고 부르는 현상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상의 권한이 전쟁과 같은 국가위기시에 다소간에 팽창되는 경향을 가리키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상명하복식의 수직적·전근대적인 정치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가진 헌법상의 지위와 권한에 있어서 양적·제도적 변화를 넘어서 어떤 질적·실제적인 변화까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즉 김 교수는 “특정인이 한 사람의 공무원으로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권력이 인격에 종속하여 제도적 메커니즘을 해제한 후 왕정과 유사한 맹목적인 상명하복의 체계로 변질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을 보면 과연 현재 대한민국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과 모순들이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단순한 제도의 문제라고만 치부해 버릴수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이 직접 나서야
현재 정치적 현상들을 보면, 개헌논의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사그러들지 않고 확장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과거와는 다르게 몇 명의 누군가 결정하면 따라가는 일방통행은 어려워 보인다. 이는 탄핵정국 속 1000만의 촛불을 통해 주권자의 의사가 뭔지를 직접적으로 표출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국민이 직접 개헌과정에 동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의기관인 국회가 특위를 구성하고 논의를 이끌어 갈 현실적 필요성은 있으나 끊임없는 관심과 견제를 통해 정권획득의 수단으로 개헌을 이용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