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아라 기자] 지난달 20일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원인 모를 폐 질환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뜬 수많은 피해자들의 사망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사실이 드러난 지 5년5개월 만의 일이다. 정치권에서 뒤늦게나마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자사의 이름을 내걸고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했던 대형마트 3사는 사건 이후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가습기살균제 PB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던 대형마트 3사(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의 PB상품 안전성 검증이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최대 가해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그늘에 가려져 있으나,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해 수많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가해기업들 중 하나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가습기살균제 출시 당시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 농도를 자체 연구 없이 가습기살균제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옥시 제품 기준을 따라한 PB상품을 제조·판매한 바 있다. 이마트 또한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잘 알려진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계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6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와 김모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 본부장이 각각 금고 4년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모 전 홈플러스 법규관리팀장과 조모 전 일상용품팀장도 각각 징역 5년과 금고 4년형을 받았다.
사건 이후, 뭐가 달라졌나?
<시사뉴스>가 대형마트 3사에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PB상품 안전성 검증 조치 변화에 대해 확인한 결과 △롯데마트는 “성분 위주의 추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안전성 검사는 원래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이마트는 “화학성분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5월부터 PB상품에 대한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전의 검사들은 일반 상품과 비슷하게 진행됐으나, 지금은 추가 검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사는 성분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법적인 기준을 1차로 본다면 2차는 이 중에서도 어떤 성분이 얼마만큼 들어갔는지 표기사항 등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면서도 “가습기살균제 사례와 같이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 같은 품목은 아예 PB상품으로 출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안전성 검사는 기본적으로 모두하게 돼 있으며, 검사가 추가되는 등의 업데이트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성 검증 시스템은)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갑자기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체적으로 (검증을) 하기보다는 공증할 수 있는 기관에 맡기는 형태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사건 당시에도 할 수 있는 검사는 했었으나, 흡입에 대한 유해성 검사가 없었던 것”이라며 “현재는 (검증 시스템이) 업데이트돼, 그런 것들(흡입 검사)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마트 관계자는 “모든 상품은 기본적으로 법적 검증을 마친 상태로 기준이 충족돼야 매장에 입점된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당시에는 기준 자체가 없어서 유통업체에서 검증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PB상품을 대상으로 화학성분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자체적으로 입점 절차를 꼼꼼히 보고는 있지만, 정부 기준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는 제품인지) 알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유사 사건 또 발생할 것”
이 같은 대형마트들의 조치에 대해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대형마트들은 자신들이 이런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으며,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판매하고 있는 제품 중에 유사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제품은 없는지 철저한 자체 검증을 해서 소비자들을 안심시켜야 하는데 그런 조치를 사실상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하고 있는 조치는 국회나 시민단체가 요구하니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라며 “PB상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판매하고 있는 모든 상품에 대해 안전 점검을 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봐야하는데, 현재는 ‘문제가 된 것이 PB상품이니 PB상품을 살펴보겠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가겠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어, 향후 유사한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본다”라고 경고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지금까지는 제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성분 공개도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면서도 “일부 보완적인 측면에서 성분 공개가 필요하지만 안전성 확보를 위한 조치로서는 부족하다. 이(대형마트 3사의 조치)를 두고 안전성 검증을 강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렇게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들이 그 정도의 움직임밖에 없었다면 심각한 문제”라면서 “내부적으로 더 많은 자기반성과 개선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스럽다. 앞으로 PB상품에 대한 대형마트의 책임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더 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