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헌법재판소 탄핵결정으로 파면된 최초의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지난 3월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더불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구속된 3번째 전직 대통령이란 오명도 쓰게 됐다.
피의자 박근혜...13가지 범죄혐의 구속사유 충분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43·사법연수원 32기)는 3월30일부터 이어진 영장심사를 통해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이 인정된다”며 31일 오전 3시3분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심사가 시작된 지 18시간36분 만의 결정이었다. 검찰청사에서 서울구치소까지 소요된 시간은 16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4시45분 서울구치소에 도착한 뒤 곧바로 수감됐다.
검찰과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13가지 혐의를 두고 첨예하게 맞섰다. 특히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 등으로부터 받은 433억원(실수수액 298억원) 상당의 뇌물수수 혐의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은 막강한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경영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중요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며 구속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되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대부분 범죄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향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를 진행했던 형사8부 한웅재 부장검사, 특수1부 이원석 부장검사 등 검사 6명을 투입해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유영하·채명성 변호사가 나와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퉜다. 적용된 혐의가 13개에 달하는 만큼 전날 열린 심사는 8시간40분 동안 진행됐다. 이는 1997년 영장심사제도가 생긴 이래 역대 최장 시간 심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이 청구된다면 구속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특히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 이들 다수가 구속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433억원 상당 뇌물수수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부터 구속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보는 기류가 많았다. 특히 뇌물공여 혐의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기소 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무겁게 처벌되는 뇌물수수 혐의자가 구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법원은 검찰 수사기록 12만쪽과 전날 장시간 이어진 영장심사 내용을 따져본 뒤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사안이 중대하고 범죄 혐의 소명이 어느 정도 이뤄진 만큼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한 것이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판단에는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 수사 결과를 인용한 점 등도 일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와 달리 이 사건 의혹이 불거진 뒤 줄곧 혐의를 부인했던 점도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전직 대통령 신분인 점을 고려할 때 도주 우려가 낮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검찰 조사 내용을 토대로 증거인멸에 나설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정치권, 사필귀정 vs 납득 못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수감된 후 정치권은 대체로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오늘 새벽 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 영장실질심사가 법원에 의해 구속으로 결론이 내려졌다”며 “법과 원칙의 엄정함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구속은 당연하고 사필귀정이다”라고 밝혔다. 김경진 국민의당 수석대변인도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은 헌법과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라 당연한 것”이라며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라고 평했다.
반면 집권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안타깝다는 짧은 평에 그쳤다. 정준길 대변인은 “참으로 안타깝다”며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오신환 바른정당 대변인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오직 법과 원칙에 입각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태가 초래된 점에 대해 참으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전했다.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엇갈린 반응를 내놓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전직 대통령이라도 구속영장 발부가 불가피했다. 대다수 국민들과 법률 전문가들도 혐의가 구체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며 “검찰과 헌법재판소, 언론을 통해 혐의들이 확인됐기 때문에 구속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밝혀 구속영장 발부가 당연한 것임을 밝혔다.
반면 친박(친박근혜)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이사장은 “사법부의 농단으로 영장이 발부됐다. 검찰과 법원이 함께 꾸며낸 일”이라며 “국가를 내란에 빠뜨린 사법부의 판단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월12일 청와대를 나와 삼성동 사저로 퇴거하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헌재의 판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억울한 부분을 충분히 소명했는가”, “국민께 어떤 점을 소명하고 싶은가”, “뇌물혐의를 부인하는가” 등 취재진의 질문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미리 준비된 차량에 올랐다. 초췌한 모습의 박 전 대통령에게 더 이상의 올림머리와 메이크업은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