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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간관계 거부하는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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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은 금맥’ 옛말... 피로감 느끼면 ‘컷팅’하는 시대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감옥의 풍경을 담은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2002년 영화 ‘형무소 안에서’에서는 주인공이 수감 규칙을 어겨 독방에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형벌로 여겨졌던 독방. 하지만 주인공은 독방에서 종이봉투를 붙이는 단순 작업에 몰두하며 뜻하지 않게 진정한 행복을 깨닫는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교묘한 억압으로 통제된 세상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시간은 작지만 최상의 자유다.


‘관태’ 증가... 성향 가치관 충돌


일본에서 오래전에 등장한 ‘고독=자유’ 개념이 최근 한국에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적극 흡수되고 있다. 몇년 전부터 유행한 ‘혼밥’ ‘혼술’ 등의 혼자 즐기는 삶의 형태는 물론, 결혼생활에서조차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을 존중한다는 ‘졸혼’마저도 근본적인 철학은 개인에게 집중한다는 데 있다.


이 같은 가치관의 변화는 공동체를 중시하던 ‘조직’ 속에서 ‘나’를 맞추고 희생했던 과거에 반발하고 ‘나’를 우선시하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사람이 싫어서 고립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배경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가리키는 신조어인 ‘관계’와 ‘권태’의 합성어 ‘관태’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두잇서베이와 함께 공동 기획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성인 남녀 2526명 중 무려 85%는 ‘인간관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피로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로감을 느끼는 주요 원인으로 ‘성향·취향의 충돌’, ‘가치관·이념의 충돌’이 가장 많았다. 절반 이상이 인간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며, 이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점은 공동체가 중요시되던 사회에서는 가치관이 충돌하면 풀어내려는 노력이 우선시됐던 것에 반해, 최근에는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는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46%가 인간관계의 정리를 적극적으로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세태는 ‘인맥컷팅’ ‘인간관계 다이어트’ 등의 극단적인 트렌드까지 만들어 냈다. 이른바 ‘인맥컷팅’은 피로감을 주는 상대와 SNS 등을 차단하고 연락처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지어는 인맥이 풍부한 사람에 대해서도 ‘피곤하겠다’ ‘허세스럽다’ 등 84%가 부정적으로 평가해 인간관계를 중요한 자산으로 생각하던 과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또한, 목적에 따른 일회성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경향도 증가했다.


비교와 경쟁이 주는 좌절감에서 회피


그렇다면 왜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만연해졌을까? 취향이 다양해지고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는 시대인 만큼 충돌도 많아졌다. 한국적 특수성은 이 같은 충돌을 더욱 피곤한 양상으로 전개시키기도 한다. 허태균 사회심리학 박사는 한국인의 집단 심리를 분석한 저서 ‘어쩌다 한국인’을 통해 한국인은 사적관계를 중시하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심정중심주의로 인해 사회생활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분석한다. 복잡한 인간관계가 오히려 관계에서 피로감을 가중시킨 원인이 되는 것이다.


역할이 중시되는 유교적 사고의 잔재로 인해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낀다는 분석도 있다. 직장인 이씨(40)는 “부모 자식 아내로서 직장에서는 직함으로, 심지어 친구에게조차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존재가 돼야 한다는 게 사회적으로 정해져있고 강요받는다”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회적 틀에 맞는 연기를 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혼자 있을 때 유일하게 자유롭다”고 호소했다. 개인의 권리가 높아지면서 공동체에서 역할이 강조되던 가치관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층이 심화되면서 비교와 경쟁이 주는 좌절감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과거에는 경쟁이 ‘나도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다’는 동기부여로 작용했던 것과 달리, 일찌감치 계층 사다리가 걷어차여진 상황에서 패배감만 커지는 비교를 피하기 위해 인간관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알바몬이 최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 85%가 ‘관태’를 느낀다고 답했으며, 인간관계를 피하는 이유로 27.7%가 ‘지인들의 SNS를 보며 자존감이 떨어져서’라고 답해 이 같은 심리를 입증했다.


소모적인 스트레스로 느껴


가치관의 혼란기에서 오는 이념적 갈등도 ‘관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크고 작은 수많은 가치 판단에서 답이 정해져 있지 않는 시대다. 힘이 우위에 있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시대도 더 이상 아니다. 가치관으로 인한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존감 수업’의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윤홍균 원장은 “우리는 매일 끔찍한 대형사건 사고를 접하고, 혐오와 분노로 온 나라가 패를 갈라 싸우는 최악의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다”며 관계에 대한 집단적 스트레스에 대해 분석했다.


현대인은 이 같은 다양한 인간관계의 피로감을 소모적으로 느낀다. 과거에는 태어날 때부터 공동체의 질서와 방식을 교육받은 ‘훈련된 개인’이 사회구성원이었다. 공동체에 소속되며 인맥을 유지하는 것은 생존에 가까운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무게 중심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관태’는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개인’에게 집중해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준다.


최근 몇년 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식하는 서적들이 ‘자존감 수업’ ‘미움받을 용기’ 같은 인간관계 관련서가 많은 것은 이 같은 현대인의 욕망을 대변한다. 이들 베스트셀러들은 하나같이 타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욕망에 더 솔직해지며 고독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처세서들이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한 노력들로 인간관계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갈등을 해결하려 했던 것과는 격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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