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화순 기자] “내게는 두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이방자 여사)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1901~1989) 가 서거한지 30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유작들이 ‘이방자여사 작품전’으로 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2층에서 한데 모인다. 전시에는 묵란 등 사군자와 화조도 50점, 서예 18점, 도자 34점, 칠보 32점, 기타 35점 등 모두 170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출품작들은 모두 이방자 여사가 한일 관계와 역사를 넘어서 한국에서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위한 기금 마련과 교육을 위한 과정에서 직접 제작하고 만든 공예품과 미술 작품들이다. 그 기조에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이 가득한 작품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대가들에게 배운 솜씨와 정신력에 예술적인 면모까지 갖고 있다.
추운 겨울에 꽃 핀 매화 나뭇가지에 한 쌍의 새가 정답게 담소를 나누듯이 앉아있는 수묵화 ‘한매쌍작’은 남편 영친왕(이은, 1897~1970)과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라 더욱 눈길이 간다.
또 근대 한국화의 대가였던 이당 김은호와 월전 정우성에게 배운 솜씨로 그려낸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도 여러 점 선보인다. 사이사이 화려한 장미와 복숭화 그림, ‘나라가 조용하면 국민이 편안하다’는 뜻을 담은 ‘國精民康’(국정민강), ‘부지런함·검소함·사랑이 근본이다’는 뜻을 담은 ‘勤儉愛本’(근검애본), ‘매우 공정하며 사사로움이 없음’을 담은 ‘大公無我’(대공무아) 등의 글씨와 칠보 작품들은 그만의 내공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호산 안동오·도천 천한봉과 함께 빚은 도자기, 백자항아리, 백자철사문병, 청화백자도자기, 1년에 걸쳐 제작한 칠보 혼례복과 결혼 기념엽서, 가구 등에 이르기까지 한점 한점 사연이 깊다.
황태자 이은과 일본 황실 가문 나시모토 마사코의 결혼
이방자 여사는 1901년 일본 황실 가문인 나시모토가의 마사코로 태어나 16세에 조선 황태자 이은과의 결혼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일의 민감한 시대에 정략 결혼을 하게 된 이방자 여사는 두 나라의 관계나 왕족간의 관계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내조를 하며 살기를 희망하였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11세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조선 황태자 이은에게 일본에서 왕족 대우를 받으며 살게 된 것은 가슴을 찢는 고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방자 여사는 그러한 남편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조용하고 세심하게 내조를 하였다. 첫째 아들 진이 8개월만에 급사하고, 몇번의 유산으로 10년만에 둘째 아들 구를 출산했다. 이후 진주만 공격과 일본 패전으로 황태자 이은과 이방자 여사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버림받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신분 없어 1962년에야 환국한 비운의 황태자 부부
조선 왕족 신분이 상실된 두 사람의 환국은 1962년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져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하게 되었다. 이후 영친왕은 대한민국 국적이 회복되었으나 지병으로 1970년 별세하고 이방자 여사는 혼자 몸이 되고 만다. 일본 출신이었기에 이방자 여사의 한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왕가의 재산이 몰수되었기에 비록 황태자비였으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 속에서도 이방자 여사는 신체장애자 지체부자유자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기술 교육 등 육영사업에 매진했고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했다.
일본인이라는 시선은 이방자 여사에게 큰 두려움과 불편함이었지만 국내외로 활발한 복지 활동을 하면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가 아닌 복지의 어머니로 일생을 마쳤다.
아름다움 정신과 삶에 매료된 정하근씨, 30년간 이방자 여사 유작들 수집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이 전시는 이방자 여사의 아름다운 삶과 정신에 매료된 정하근 고은당 대표가 지난 30년간 줄기차게 이 여사의 작품을 수집해온 덕분에 이루어졌다.
정하근 대표는 “한국인도 아니면서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다간 이방자 여사의 삶과 훌륭하고 고매한 정신에 매료돼 오랜 세월 한점 한점 유작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일본에서 기념관을 짓고 싶다며 계속 연락해오고 있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남편의 조국을 자신의 조국으로 알고 평생 봉사한 분이 잊히고 있어 안타깝다. 이방자 여사의 유작 전체가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욕의 시간을 흔들림 없는 꿋꿋함으로 견뎌내고 영친왕의 유지를 받들어 오로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한 아름다운 손길과 마음씨를 추모하며 소박하면서도 희망 넘친 예술혼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또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이태섭 이사장은 “국가나 종약원에서 관리하고 개최되어야 할 작품 전시회를 개인의 힘으로 수집하고 열어주는 정하근 선생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