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오주한 기자] 교육부 직원이 저자 직인을 ‘도둑날인’해 초등학교 국정교과서 내용을 무단수정한 혐의로 기소돼 파문이 일고 있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박근혜 정부 때 잘못을 바로 잡은 것”이라 주장해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25일 검찰에 의하면 대전지검은 이달 5일 교육부 과장급 직원 A씨, 장학사 B씨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사문서위조교사, 위조사문서행사교사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교과서정책 담당과장이었던 A씨는 2017학년도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의 ‘대한민국 수립’ 부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교육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시 정치권에서 비판이 제기될 것을 우려해 그해 9월 B씨에게 ‘민원’을 넣어줄 것을 부탁했다. B씨는 다시 지인인 교사 C씨에게 민원 접수를 요구했고 교과서 내용은 이 민원을 바탕으로 수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교과서 집필 책임자인 D 교수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고칠 순 없다”며 완강히 거부하자 A씨 등은 다른 교수를 자문위원 등으로 위촉해 수정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수정 회의에 D 교수가 참여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D 교수 도장을 몰래 날인했다.
그렇게 초등교과서에서 변경된 내용은 총 163곳에 달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정부 수립’으로, ‘박정희 유신체제’는 ‘유신독재’로 수정됐다. 삭제된 부분도 있다. ‘북한은 여전히 한반도 평화,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 등은 모습을 감췄다. 새마을운동 사진은 빠진 반면 탄핵촉구 촛불시위 소개 내용은 크게 늘었다.
작년 3월 D 교수 폭로로 이 사건이 알려지고 같은 해 9월 야당이 이를 고발하자 검찰은 A씨 등 2명, 출판관계자 1명을 불구속기소하는 데 그쳤다. 교육부는 폭로가 터지기 한달 전 A씨를 태국 한국교육원장에 임명했다. B씨는 지역의 한 교육청에서 여전히 장학사로 근무 중이다.
이를 두고 야당은 ‘배후’ 의혹을 제기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7일 ‘문재인 정부의 사회교과서 불법조작 사태 긴급간담회’에서 “어떻게 이 일을 일선 공무원들이 결정했겠나. 그렇게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도장 날조, 교수 자문위원 위촉 등은 과장급 공무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A씨의 태국 출국을 두고서도 ‘도피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에 의하면 검찰은 A씨 등을 조사하면서 김상곤 당시 교육부장관 등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이 사건과 관련된 유은혜 교육부장관 태도는 의혹을 부채질했다. 유 장관은 26일 오후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사과나 해명에 나서는 대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꾼 건 잘못된 일로 이를 바로잡은 것”이라며 “집필진 동의 없이 교과서 내용을 수정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사과를 거부하는 한편 A씨 등의 혐의도 대신 부인했다.
이날 곽상도 한국당 의원 등은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 전 장관은 작년 3월 국회에 출석해 “(A씨 등에게) 따로 지침을 준 적은 없다. 수정은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