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인정이 메마르고 날이 갈수록 사회가 각박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나 빈곤해진 것입니다. 비록 한 피를 나눈 형제라 해도 서로 손해 보는 일은 피하려 하고 신경 쓰이는 일에는 간섭하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우애가 상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지요.
그래서 간혹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도운 미담이 뉴스에 보도되고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잘 지켜지지 않기에 기사거리가 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가난한 유학생이 차를 몰고 산길을 가는데 그만 차가 고장이 나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에 대한 상식이 없었던 유학생은 누군가 도와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지요.
그런데 마침 그곳을 향해 어떤 차 한 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유학생이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도와 달라고 하려는 순간, 그 차는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곧이어 또 한 대의 차가 왔는데 이 운전자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행선지를 물은 뒤 “아직도 먼 길인데...” 하면서 자신의 웃옷을 벗고 고장난 차를 고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지런히 자동차를 고친 결과, 약 30분쯤 후에는 차에 시동이 걸렸고, 유학생을 도운 그 사람은 30분 정도 가면 주유소가 나올 테니 거기에서 다시 고치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그의 행동에 유학생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금 전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 사람의 차가 자신의 뒤를 천천히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학생은 무사히 주유소에 도착할 수 있었지요. 그제야 뒤따라 오던 차가 속력을 내어 자신의 갈 길을 가려 하였습니다.
이때 유학생은 그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표하며 주소와 성명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다만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소한 일 한 가지에도 과연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성경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해를 입고 죽을 지경이 되어 쓰러져 있었는데,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그를 외면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 멸시했던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이 있으면 어려움에 처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사람을 보시면 안타깝게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공궤하면 이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셨지요.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선행을 기뻐하셔서 하는 일마다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과 섬김, 나눔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잠언 22:9) 글: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GCN 방송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