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여야 간 21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회 업무가 한 달 넘게 마비상태다. 경제위기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회 공백사태가 길어지자 ‘세비를 반납’하라는 비난여론도 비등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민생관련 현안이 산적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미국 금리의 ‘빅스텝’이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도 따져 보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화물연대의 파업 철회 조건인 안전 운임제 일몰 문제 역시 국회가 입법으로 해결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의장단도 없고 상임위도 없는 국회 공백 사태가 벌써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5월 30일 0시를 기해서 사실상 업무 공백 상태다. 국회법은 의장단과 상임위원의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어 국회의원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원 구성을 해야 하는데 여야는 연일 서로 ‘네 탓’ 공방만 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 원 구성 협상 진전없이 갈등의 골만 깊어져
여야가 선거가 끝나자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기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전략적 포석에만 골몰하면서 갈등 골만 더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기 당권을 두고서 계파 간 내홍이 깊어지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원 구성 협상의 핵심은 의사진행권의 배분, 즉 법안의 심의 의결을 위한 회의의 조정권을 가진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일이다. 17개 상임위와 예결특위, 윤리특위 위원장 등을 여야가 어떻게 나눠 갖느냐에 따라, 법안을 포함한 각종 안건에 대한 ‘컨트롤’ 권한이 결정된다.
원 구성을 둘러싸고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쟁점은 법사위원장 자리다. 법사위가 법원·검찰 관련 법안을 다루는 동시에, 다른 모든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의 자구심사까지 담당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입법을 위한 ‘최종 문고리’를 차지하기 위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양보 없는 강대강 대치를 이어간 것이다.
결국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는 것에 동의하면서 꽉 막힌 정국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듯 했다. 그런데 이번엔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이 걸림돌이 됐다. 사개특위 가동을 위한 국민의힘측 위원 명단을 민주당이 요구하자 국민의힘은 의장단·법사위원장을 먼저 선출하는 역제안으로 맞섰다. 원 구성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 됐다.
민감한 쟁점 더하며 대치 전선 더 넓혀갈 태세
양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민감한 쟁점들을 제기하며 전선을 더 넓혀갈 태세다. 국민의힘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북한 선원 강제 송환 사건, 문재인정권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무차별로 제기하며 민주당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정부와 호흡을 맞춘듯 ‘월북조작’ 의혹 규명 TF를 만들어 인권위·해경·국방부·통일부·외교부를 차례로 순회하며 당 차원에서 화력을 쏟아 붓고 있다.
민주당은 이같은 여권의 공세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안보를 정쟁수단으로 삼는 ‘신(新)색깔론’, ‘신(新)공안정국’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 등을 정권의 ‘경찰 길들이기’로 규정해 연일 공세를 취하고 있다. 민주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6월 28일 여당과 협의 없이 7월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일방적으로 제출했다. 의장단 단독 선출 가능성을 열어두며 여당 압박에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은 “의회 독주를 하겠다는 선전포고”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6월 30일에는 국민의힘 원내지도부가 민주당이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내정한 김진표 의원을 향해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면서, 김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민주당 단독 의장단 선출은 명백한 법 위반임을 분명하게 밝힌다”며 “강행시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따가운 여론 의식한듯, 양당 민생관련 특위 가동
여야가 이렇게 강대강 대치를 한 달 넘게 이어가자 국회의원 세비를 반납하라는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국회의원들에게도 적용해 월급을 반납하라는 주장이다. 정치권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여야의 원 구성 협상 난항으로 인한 국회 공백이 장기화되자 6월 17일 SNS에 글을 올려 “세비는 매일 의원 1인당 42만2369원씩 늘어난다. 다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주장대로 의회 공회전 일수로 따지면 반납해야할 세비는 40억원에 육박한다.
이런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을 의식했는지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각 당내에 ‘물가 및 민생안정 특위’(국민의힘)와 ‘민생우선실천단’(민주당)을 꾸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물가 및 민생안정 특위 첫 회의에서 “민생 경제가 이토록 어려운데 국회의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어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송구하다”며 “유류세 추가 인하와 할당관세 품목 확대 등을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정책조정회의에서 “치솟는 물가에 국민이 체감하는 부담과 고충은 훨씬 크다”며 “가계부채 등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국회의 ‘늑장’ 원 구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 국회마다 반복돼온 고질적인 문제다. 1987년 개헌 이후 구성된 13대 국회부터 지난 20대 국회까지, 원 구성을 마무리하는 데에 평균 약 41일이 걸렸다. 국회 후반기 원 구성만 놓고 보면, 지난 15대에는 무려 79일이 걸렸고,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원 구성까지 57일을 끌면서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만 1만1000건 이상이다. 여기에는 시급한 민생 법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오피니언 이윤우 소장은 “국회 공전사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며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실효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