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TV 한대로 동네 주민들을 화합의 장을 만들었던 60년대와 70년대. 프로레슬링은 인기 스포츠 가운데 하나였다. 프로레슬링 하는 날 TV가 있는 다방과 음식점이 특수를 누리고 시골에선 마을 이장이 TV가 있는 집으로 동네사람들을 모으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작은 흑백TV 앞에서 동네 잔치분위기를 연출하던 주민들은 삿갓과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은 ‘박치기왕’ 김일이 비치면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백드롭의 명수인 장영철, 검정타이즈를 입고 가공할 태권당수를 날린 천규덕과 재일동포스타 여건부가 그 배고팠던 그 시절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이노키 등 일본의 라이벌들과 펼친 명승부는 아직까지 많은 이의 뇌리에 남아있다.
반칙으로 일관하는 일본 선수들을 통쾌하게 제압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배고픔도 잊었고 고달픔과 시름도 잊었다. 이튿날이면 꼬마들이 김일의 박치기를 흉내 내면서 저들끼리 부딪쳐 눈물, 콧물을 쏙 빼기도 했다.
정상에서 급격히 추락한 프로레슬링
원로 프로레슬러 장영철이 지난 8월 세상을 떠났다. 장영철의 73년 인생은 ‘백드롭’의 명수라는 호칭으로 대한민국 남녀노소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영웅’이라 불리며 생애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장영철은 1965년 11월, ‘사각의 링’ 폭력사태를 해명하던 중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말했고 이는 곧 언론에 대서특필됐다.(하지만 이것은 장씨가 프로레슬링의 경기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와전 된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가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 번 돌아선 팬들은 냉정했고, 프로레슬링은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후 김일을 중심으로 역발산, 여건부, 이왕표 등이 재건에 나섰지만 헛수고였다. 이 후에 WWF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점점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한국 프로레슬링까지 열기가 뻗친 것은 아니었다. 장충체육관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진행되던 화려한 경기가 시골의 한 체육관에서나 조촐히 치러지는 이벤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편, 장영철은 한 번의 실수로 40년 이상 치욕의 세월을 감내해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후배들조차 그를 따돌릴 정도였다. 한 시대를 함께 풍미했던 ‘박치기왕’ 김일과는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냈고 팬들의 차가운 시선 역시 그에게는 날카로운 화살이 되었다.
21년 만에 공중파 생중계
그러던 중 2000년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김지은 감독의 <반칙왕>이 극장가에서 인기를 끌며 사람들은 조금씩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보였다.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경기장에서 이왕표와 노지심, 역발산을 응원했다.
또, 기존의 한국프로레슬링협회에 이어 지난 2003년에는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가 창단됐다. 신한국프로레슬링협회는 국제적인 레슬러들을 초청한 프로레슬링 대회를 성사시키며 팬들의 관심을 유도했고 결국 21년만의 공중파 생중계를 이뤄냈다. 음지에 묻힐 뻔한 한국 프로레슬링이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또, 올해부터 전용체육관과 프로레슬링 역사관을 짓고 한국과 중국, 일본을 연계하는 ‘팬 아시아리그’까지 창설키로 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
하지만 프로레슬링의 옛 명성을 되돌리기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다. 우선 스타플레이어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무리 재미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링에 오를 선수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또,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경기에 관중도 오지 않을 것이란 건 명확한 사실이다. 현재 협회 차원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대회를 통해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면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스타감은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또한, ‘엔터테이먼트 요소’를 조금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전과 달리 팬들은 프로레슬링이 하나의 쇼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WWE는 이름에 ‘엔터테인먼트(Entertaiment)’를 명시해 스스로 쇼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WE가 인기 있는 이유는 레슬러들의 갈등관계가 꼼꼼한 각본 속에 잘 짜여져 있고 따라서 그만큼 긴박감과 박진감을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WWE는 한 경기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인해 전개될 새로운 상황들이 팬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게 만든다.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는 레슬러들의 쇼맨쉽도 프로레슬링의 재미를 한층 더 배가 시킨다.
때문에 한국 프로레슬링도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선수들의 발굴 뿐 아니라 치밀한 각본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정말 재미있는 스포츠 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프로레슬링의 발전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프로레슬링은 가짜’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더군다나 최근 이종격투기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프로레슬링이 예전의 명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D 종목’이라는 점, 그로인한 선수의 부족과 시설의 미비함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비관적인 그들의 예견처럼, 섣불리 프로레슬링이 예전의 폭발적인 인기를 다시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제 화려한 부활을 위해 첫 걸음을 디딘 것뿐이지만 오늘도 사각의 링에서는 여전히 그들의 땀과 노력으로 멋진 경기가 이어지고 있다. 언젠가 피니쉬 기술이 작렬하는 순간 수 만명의 관중들의 환호와 환성 속에서 그동안의 고통을 잊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비록 환경은 열악하지만 그들의 꿈이 알차게 영글어 가고 있기에 프로레슬링 부활의 꿈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 프로레슬링이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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