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기동취재반] 진도 세월호 침몰사고는 16일 오전 8시58분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방 1.8마일 해상에서 승객 등 477명이 탑승한 6852t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일부 승객이 침몰한 선체 내부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10분 현재 탑승객 477명 중 370명이 구조된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이중 여성 승무원 박지영(27·여)씨와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특히 구조된 인원을 제외한 107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해경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해경은 특공대를 사고 여객선에 투입해 선체에 승객들이 있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날 구조 작업에는 해경을 비롯해 해군과 민간 선박들도 대거 동원돼 구조된 승객들의 숫자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민간 선박에 구조된 승객들이 있을 수 있어 정확한 구조 인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선체에 승객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어 현재 특공대를 투입했다"고 밝혔다.
◆21년 전 서해훼리호 악몽 재연 우려
진도 앞바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대대적인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1993년 무려 292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악몽을 떠올리는 시각들이 많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당시 서해훼리호와 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647t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으며 여객선에는 수학여행 길에 나선 안산 단원고 학생 324명과 교사 14명, 승무원 30명, 일반 승객 등 477명이 탑승했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는 지난 1993년 10월10일 오전 9시40분께 전북 부안군 위도 동쪽 4.6㎞ 임수도 근해에서 일어났다. 당시 221명이 정원인 배에 승객 355명, 선원 7명 등 무려 362명이 탑승했다. 이 사고로 292명이 숨졌다.
이 사고의 유사점은 대형 여객선 침몰사고라는 점 이외에 출항 당시 기상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가 출항할 당시 인천항과 앞바다에는 안개가 심한 상태였으며 출항 시간이 지연됐다. 이 때문에 지연 출항에 따른 시간단축을 위해 항로를 이탈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서해훼리호도 출항 당시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 2~3m로 좋지 않았다. 폭풍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여객선이 출항하기에는 악천후였다. 서해훼리호는 결국 높은 파도 때문에 운항이 어렵게 되자 회항하려다 사고를 당했다.
탑승객들도 서해훼리호는 제주도 수학여행단을 포함한 관광객, 서해훼리호는 바다낚시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이었다.
관건은 탑승객 중 어느 정도나 구출할 수 있느냐이다. 특히 선체에 남아 있는 실종자가 많아 이들을 얼마나 살려낼지가 관건이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당시 단 70명만 구조되고 나머지 292명은 유명을 달리했다. 이 중에 선체 내에서 발견된 시신이 대부분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이 날 오후 3시30분 현재 180명이 구조되고 2명이 사망했으며 290여 명이 실종된 것으로 발표됐다.
따라서 선체 내에 남아 있을 탑승객들에 대한 구조작업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침몰 당시 바다로 뛰어내린 탑승객들은 쉽게 구조됐지만 배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의 생사여부가 절체절명이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나오고 있다. 차가운 바다에서 버틸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선체 내에서는 익사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민들은 사상 최악의 해난사고로 기록돼 있는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시민 김모(45)씨는 "어린 학생들이 바다 속에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며 "한시라도 빨리 구조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