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생을 입학시킨 부모들은 공식적인 집단생활에 첫 발을 디딘 아이를 바라보며 설레임 반 걱정 반의 마음일 것이다. 실질적으로 여덟 살은 한 인격체에게 혼란과 도전의 시기다. 이 때 정신적 불안이 오기 쉬우므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 성적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자녀의 정서에도 세밀한 보살핌이 따라야 하겠다.
세상으로 첫 발 딛는 여덟 살
조승희 사건 등으로 최근 아동의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 아동의 정신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진흥원이 서울시내 2천672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4명 중 1명 이상은 행동장애, 불안장애 등 각종 정신장애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정 대상이나 상황이 두려워 피하는 특정공포증을 호소하는 학생이 가장 많았다. 적대적 반항장애도 303명으로 11.3%였다.
작년에 발표된 조사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전국 초등학생 7천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선별검사’에서 학생들 중 4명중 1명 꼴로 불안·공포·우울·강박과 같은 행동장애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습장애를 보인 학생도 5명 중 1명에 달했다.
최근 ‘여덟살 심리학’을 발간한 서울대병원 신민섭 교수는 여덟 살 아이에게 각별히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여덟 살이란 나이는 아이가 다양한 환경변화에 직면하는 발달적 전환기로, 부모는 어느 시점이 되면 자녀를 품 안에서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야한다”며 여덟 살이 바로 그 시기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 이전에는 부모의 품 안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여덟 살이 되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능력이 싹트고 지식의 양도 급격히 늘어나는 등 두뇌 발달이 가장 활발해진다”며, “부모라는 울타리를 넘어 더 큰 세상을 탐색하고 모험할 수 있는 능력과 호기심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가정 대신 학교, 부모와 형제자매가 아닌 선생님과 친구라는 낯선 환경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도 심리적 변화의 시기가 되는 요인이다. 이때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는 나머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처음 접하는 세상에서 아이가 안정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신 교수의 견해다.
비뚫어진 교육열 ‘모성애 장애’
한국적 과잉 교육열은 아이의 정신장애를 부채질하는 문제적 요인이기도 하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분석가인 마츠 박사는 한국 아동의 정신장애가 과열된 부모의 교육열에 원인이 있으며 그것을 ‘모성애 장애’라고 진단했다.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과 아이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비뚤어진 모성이 아이에게 강박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너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산다’ ‘네가 내 자존심이다’ 등 말을 하는 엄마는 모성을 빙자해 아이를 도구화하려는 심리를 갖고 있다. 결국 엄마의 정신장애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키는 셈이다.
신 교수는 아이가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은 결국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부모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는 세상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아이는 자신을 싫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남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외톨이가 될 수 있다.”
독립성을 키워주는 일 역시 이 시기에 매우 중요하다. 한국적 모성은 무조건 감싸 안으려는 경향이 큰 것이 사실인데 아이에 대한 보호에 집착한 나머지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
신 교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언젠가 떠나야할 배를 만드는 것과 같다. 정성을 다해 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가 바다로 나가 파도를 헤치고 멋지게 항해하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며, “파도나 암초가 두려워 배를 항구에 정박해두는 건 배의 가치와 정체성이 발달할 기회마저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가 바로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대양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시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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