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배우 신하균(41)의 필모그래피는 도전의 역사다. 2000년 박찬욱 감독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로 영화계에 연착륙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얻은 ‘순박하고, 순수한, 예쁜 미소를 가진 소년 어른’의 이미지를 2000년 이후 단 한 번도 반복하지 않았다.
‘킬러들의 수다’(2001)에서 냉철하지만 동시에 어설픈 킬러 ‘정우’를 통해 달리고, 박찬욱 감독이 야망을 드러낸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녹색 머리로 등장해 힘을 보탠 그는 백윤식과 함께한 저주받은 걸작 ‘지구를 지켜라!’(2003)로 훌쩍 날아올랐다.
그렇게 그는 8년 가량 갖가지 변주를 통해 독보적 연기세계를 구축했다. '나홀로' 4차원으로 넘어가는 듯했던 그는 2011년 KBS 2TV 드라마 ‘브레인’으로 시청자 품으로 돌아온다. 이 드라마로 연기대상을 거머쥔 그는 영화에선 자기만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고, 드라마에선 대중적 화법의 연기를 하는 전천후 배우가 됐다.
신하균이 이번엔 사극에 도전한다. 5일 개봉한 영화 ‘순수의 시대’(감독 안상훈)에서 그는 조선의 장군 ‘김민재’를 연기했다. 김민재는 태조 이성계의 친척이자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의 사위로 설정된 가상 인물이다. 전장에서는 야수 같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순애보적 인물이기도 하다.
“사극은 전혀 해보지 않은 영역이니까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게 컸죠. 재밌었어요. 한 번도 안 입어본 옷도 입어보고 수염도 붙이고요. 분장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사극 분장은 또 처음이었으니까요. 현대물과는 어투나 어휘도 다르죠.”
신하균이 연기에 대해 고민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새로움이다. 캐릭터의 새로움과 이야기의 새로움을 함께 추구한다. 아직 관객이 보지 못한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 관객이 여태껏 보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에 참여하는 게 신하균이 연기를 통해 느끼는 행복이다.
‘순수의 시대’는 캐릭터와 이야기에서의 새로움 모두 신하균을 만족하게 한 작품이었다. 시나리오를 본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영화에 참여하기로 했다. 신하균은 정통 멜로 장르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적이 없다.
“저는 주로 발산하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인물들이요. 말도 많이 하고,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고 하는 그런 캐릭터들이요. 그런데 김민재는 그렇지 않아요. 모든 걸 안으로 삭히는 인물이죠.”
김민재는 불행한 인물이다. 정도전은 전쟁터에 버려진 그를 거둬 권력을 지키는 충견으로 키운다. 살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던 그는 죽은 어머니를 닮은 기녀 가희를 욕망하면서 삶의 모든 것을 건다.
신하균은 김민재의 사랑을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분명히 새로울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라고 짚었다.
“요즘에 이런 사랑 없잖아요. 그러니까 새롭죠. 만약에 제가 지금보다 젊었다면 이 역할을 안 했을 겁니다. 순애보라는 건 오히려 나이를 조금 먹으니까 이해가 되는 감정인 것 같더라고요. 남자의 꿈이기도 하잖아요. 여자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게….(웃음)”
감정을 숨기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는 신하균에게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하고 싶으냐고 묻자, “표현하는 인물, 새로운 인물”이라고 답했다. “막연하게 이상한 인물에 도전하려는 게 아니에요. 이상하고 새로운 인물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느냐가 중요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