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칼럼니스트이자 의학자인 서민 교수가 의학의 발전으로 달라지는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재기발랄한 언어로 전한다. 알프스의 얼음 속에 잠들었던 신석기인 ‘외치’가 깨어나, 외계인과 함께 지병인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날아간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에서 의사를 찾고, 그들과 교류하며 AI 시대를 맞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까지 이른다.
전염병이 무너뜨린 ‘신권’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넘보던 인류는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인구의 절반이 사춘기를 넘기지 못했다. 지금은 상처가 났을 때 항생제 연고를 사용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감염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이 허다했다. 타인의 죽음이 현대인들에게 낯설고 어색할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죽음이 곧 일상이었다.
‘병’이 한 시대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중세시대를 보자. 당시 지식인은 가톨릭 사제들이었다. 사제들은 의사가 아니었지만, 약초 등을 이용해 사람들을 치료했다.
의사보다 사제가 더 환자들의 신임을 받았던 중세지만, 유럽 인구를 죽음으로 휩쓰는 흑사병 앞에서는 제아무리 사제라도 무력했다. 흑사병에서 구해달라고 사제들의 조언을 들으며 신에게 빌었지만, 흑사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학살’한다. 교회가 흑사병에 어떤 대처도 못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교회와 신에 대한 믿음을 거둔다.
신권이 하락하는 것과는 달리 왕권은 강화된다. 흑사병 대유행을 끝낸 것은 신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기 시작한 위생과 검역 절차였다. 검역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15세기 들어 유럽 각국은 방역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행증명서도 발급했다. 일단 여행객이 다른 나라의 국경을 통과하려면 한 달 이상의 법적 검역 절차를 밟아야 했다.
미래 의학은 어떻게 달라지나
과거에 유행했던 병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거나 아니면 다양한 약이 만들어지면서 실험실에서만 볼 수 있는 병으로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병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백신’이다. ‘백신’ 하면 떠오르는 에드워드 제너는 현대의학의 첫 문을 열었다고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인물이다. 제너의 아이디어 덕분에 사람들은 천연두라는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천연두를 비롯해 파스퇴르가 콜레라 백신의 기초를 닦기 시작한다. 그래서 1890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백신은 흑사병,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까지 이어졌는데, 모두 세균에 의한 질환이다. 모두 영아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했다.
병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은 신석기시대의 문신부터 차츰 과학적으로 치료 방법을 알아가고, 또 그것을 후대에 전한다. 처음부터 큰 병을 치료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을 알아가며 병의 원인을 알아가고, 치료를 배워갔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섭고 두려운 병인 ‘암’에 대해서도 어떤 노력을 해왔으며, 현재 암 정복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이야기한다.
과거만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서민 교수는 이 책에서 특유의 발랄한 시선을 잃지 않고 현대의학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AI시대의 의사에게 중요한 요소는 환자와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며 그것이 인간과 기술을 나눈다는 이야기는 의학이 다루는 대상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또한 의사와 인공지능은 적이 아니라 서로 더불어 발전하다 보면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는 지적은 의학의 기본을 생각하게 만든다. 백신반대 운동, 슈퍼바이러스 이야기 등 의학에 남은 숙제들 또한 빼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