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4월 영동권의 허브(HUB)공항을 표방하며 야심차게 건설된 양양 국제공항. 정부는 3,567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양양공항을 세웠고, 지역발전과 세계화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러한 정부의 계획에 지역주민들은 물론, 항공업계도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문을 연지 2년6개월만에 폐쇄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에 이어 대한항공도 지난달 27일 양양-김포노선 운휴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강원도 내 유일한 국제공항이지만, 하루에 국내노선 부산 한 곳만 운행하고 있어, 무늬만 ‘국제공항’ 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양 국제공항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들어가 봐도, 국제공항으로서의 위신과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공항소개’에는 양양 국제공항이 영동권의 거점공항으로서, 남북 통일시대 대비하고, 시설 및 입지여건이 열악한 속초공항의 대체공항이며 강릉공항과 상호보완체제를 구성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른 공항 홈페이지 게시판이 하루에도 수십건이 넘는 이용자들의 문의와 의견이 오가는데 반해, 양양공항의 게시판에는 한달에 몇건의 의견이 올라오는 게 고작이다.
개항후 탑승률 50% 넘지 못해첨단허브공항이 불과 2년6개월만에 골칫덩이로 전락한 것은, 저조한 항공기 탑승률 때문이다. 국제수준의 공항임에도 불구하고, 개항이후 양양공항은 항공기 탑승률 50%를 넘기지 못했다.
강원도가 조사한 공항별 국내선 이용객 현황에 따르면 올들어 7월까지 양양공항을 운항한 항공기는 모두 1.123편으로 모두 7만6,392명이 이용했다. 편당 68명이 탑승한 셈이다. 국제선 이용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개항 이후 양양공항과 연계한 구간은 21개 지역으로 모두 236편의 여객기에 2만2.885명의 승객이 탑승했다. 지난 2002년 공항 개항 무렵 서울지방항공청측이 예측한 연간 항공 여객 수요 국내선 81만2.000명, 국제선 29만2.000명은 무엇을 근거로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터무니없는 수치다.
탑승률 저조로 양양공항은 연간 180억원대의 적자를 보고 있으며, 공항 인근 상가도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국제공항은 인천 김포 김해 제주 대구 청주 양양 등 모두 7곳이다. 올해 지방공항의 적자 예상치를 보면 청주 49억원, 울산 37억원, 여수 31억원, 목포 21억원, 포항 26억원으로 시설과 규모는 첨단공항을 지향하면서도 적자폭은 가장 크다. 인천과 김포를 제외한 국내 16개 공항 가운데 부지는 75만평으로 제주에 이어 2위이고, 국제선 여객 터미널은 4,300평으로 김해와 제주에 이어 3위인 대형공항이다. 국제선 시설은 물론 대형기용 활주로와 계류장 등 첨단급 공항시설이 국비만 낭비한 채 거의 놀고 있는 것이다.
설계 당시 영동고속도로 확장 계산 못해
개항 초기 하루 7편에 달했던 항공기 운항은 2002년 11월 아시아나 항공이 철수했고, 대한항공도 감편을 계속해 왔다. 극심한 탑승률 저하로 급기야 대한항공은 지난달 12일부터 하루 1편으로 줄이는 방안으로 대체했지만, 이마저도 탑승률이 30~40%를 넘지 못했다. 지난 6월에도, 운휴신청서를 냈지만 강원도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됐었다. 대한항공은 양양-김포 노선운행으로 1년에 100억원이 넘는 적자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국제선은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정기편이 전혀 없었고, 개항 후 한때 오가던 상하이 및 타이베이 등으로부터의 정기성 여객기마저 끊겼다. 이로써 현재 국제수준으로 평가받는 양양공항에서 운항하는 항공편은 양양-부산 노선에 하루에 1편 뿐이다.
이처럼 탑승률이 낮았던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육로이용의 편리한 개발 때문이다. 영동 고속도로를 비롯해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속속 4차선으로 확장돼 수도권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항공사 관계자는 “영동고속도로 확장으로 서울에서 동해안까지 3시간 이면 충분히 가는데 굳이 왜 비싼 비행기를 이용하겠냐”며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년 눈에 보이는 엄청난 적자를 볼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정부는 당초 공항 건설을 설계하면서 미리 영동고속도로의 개발을 계산에 넣지 못했다. 또 2010년 서울-춘천-양양간 새 고속도로까지 뚫리면 승객은 더욱 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향후 여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거나 무시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항의 위치도 어정쩡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영동권 주민들을 끌어들이기 어렵다.
탑승률 높일 대안 없으면 운항 재개 ‘불투명’양양공항이 존폐위기에 빠졌지만, 정작 이를 책임지고 있는 곳에선 서로 책임 떠넘기기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적자 부담으로 운항을 중단했고, 한국공항공사는 “공항 운영만을 맡고 있을 뿐 그외에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반응이고, 강원도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며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라는 불투명한 기대를 갖고 있다.
양양공항의 위기는 예정된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재정자립도 26.7% 인구 150만명의 강원도와 연간 적자 수십억원이나 되는 항공사에게 국제공항을 맡겨놓은 것은 처음부터 정부가 공항 활성화에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나 지하철 등 매년 수천억원씩 적자가 발생하는 국가기반시설에 대해 3~4년마다 손실보전을 해주고 있으나 양양공항은 관심 밖이라는 것. 국제선 유치를 위한 개항장 지정도 정부는 규정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강원도와 지자체들은 불만이다. 정부가 ‘통일시대의 동해권 거점 국제공항’을 명분으로 개항만 강행했을 뿐 국제선 승객유치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탓이라는 비판이다.
양양-김포 운휴기간이 끝나는 내년 2월 운항이 재개될지에 대해서 대체적인 시각은 그리 밝지 않다. 정부의 무대책과 도의 근시안적 관광정책, 항공사측의 수익성 논리, 주민들의 무관심이 계속될때 김해 노선 유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탑승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 릴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항공기 운항 재개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분석이다. 강원도는 양양-일본 간 노선 개설과 부산과의 관광상품 개발 등 양양 공항의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자치단체들은 양양국제공항의 이 같이 초라한 현상을 극복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 뿐이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