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신철 기자]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폐기한 혐의로 기소된 백종천(72)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58)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에게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폐기된 회의록은 초본이며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결재가 없어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원형)는 24일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결재권자의 결재가 예정된 문서의 경우 결재가 있을 때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된다"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일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는 결재가 예정돼 있는 문서로 결재가 되어야 비로소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결재는 결재권자인 노 전 대통령이 이를 공문서로 승인하는 전자서명 행위를 해야 인정된다"며 "주관적 의사가 필요 없이 열람만으로 결재가 됐다는 검찰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열람한 후 처리 의견에 회의록 파일에 대한 정리 및 재검토를 요청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공문서로 하는데 승낙하지 않은 것이 명백하다"며 "결재권자인 노 전 대통령이 내용을 승인하고 최종 결재를 하지 않은 이상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에 대해서도 "이 회의록 파일은 수정·보완돼 완성본으로 되기 전 초본임이 명백하다"며 "국정원에 보관된 수정·보완된 회의록을 노 전 대통령이 승인했다고 봐야 하고 초본에 불과한 이 회의록 파일은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선고 직후 백 전 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2심도 공명정대하게 사건을 판단했다"며 "1심의 무죄 판결을 다시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로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및 유출 사건 관련자들은 사실상 전원 무죄 또는 무혐의 처리됐다. 다만, 정문헌(49) 새누리당 의원은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벌금 500만원의 약식 기소됐고, 법원이 정식 재판에 회부해 지난 1월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논란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 포기 발언을 했다"는 정문헌 의원 발언에서 불거져 사초 실종 논란으로 확대됐다.
이후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은 2007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임의로 회의록을 폐기하고 봉하마을로 무단 반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등으로 2013년 기소됐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을 통해 회의록을 전자문서로 보고했고 노 전 대통령이 '열람' 버튼을 눌러 전자서명을 했기 때문에 결재한 것이라며 대통령기록물이라고 주장해왔다.
검찰은 "회의록은 결재된 문서로서 기록물로 생산된 것이 분명하다"며 "고의로 삭제한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며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2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람' 항목을 눌러 전자서명이 되긴 했지만 수정·보완을 지시했으므로 완성본이 아니다"며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결재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이 회의록을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회의록은 초본 성격으로 비밀관리법령 취지상 폐기되는 것이 맞다"며 "정당한 권한에 의해 폐기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