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팀] 유정복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가 2만6592표차로 송영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유정복 당선은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현 정권의 핵심으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뒤 1979년 22세 때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육군 중위로 전역한 1984년 강원도청으로 공직에 입문한다.
이듬해 당시 36세로 김포군수를 역임하며 전국 최연소 군수에 이름을 올린 유 당선인은 1995년 37세로 인천 서구청장에 올라 또 다시 전국 최연소 구청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 초대 김포시장, 2004년 17대 국회의원,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비서실장, 2008년 18대 국회의원,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2013년 제18대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과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내는 등 지역 정치인이자 행정가에서 정권의 복심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가도만을 달려왔을 것 같은 유 당선인은 사실 인천 동구 송림동의 쪽방촌 출신이다.
그는 1957년 6월6일 인천 송림동 182번지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피란민이 모여 만들어진 쪽방촌은 당시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이른바 '찢어지는 가난'에 시달렸고 황해도에서 월남한 유 당선인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 후보는 지금도 부모님을 회상할 때면 "부모님은 명절 때나 TV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마주할 때면 부모님께서는 고향산천과 두고 온 얼굴들을 그리워하셨다"며 "끝내 고향땅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산가족의 재상봉과 통일의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고 되뇌인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개구쟁이로 자란 유 당선인은 인천 송림초등학교, 인천 선인중학교를 거쳐 제물포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유 당선인은 "송림동 쪽방촌은 가난했지만 꿈을 키우며 아름다운 동화를 엮던 추억이 있다"고 회상하고 "당시 선생님과 친구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두의 삶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고교 입학식 첫날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교훈을 가슴에 새겼다"며 "지금도 자신의 중심을 세우는 지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1984년 공직 진출 첫 해 내무부장관 비서관에 발탁돼 중앙정치에 발을 들인 유 당선인은 1994년 서구청장에 발령된 뒤 이듬해 인천 서구청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당시 김포시민이 연일 몰려와 유 당선인의 김포군수출마를 요구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포 주민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던 유 당선인은 결국 선거 20일을 앞두고 출마를 결심했다.
당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포 주민의 요구에 따라 아무런 준비 없이 출마한 그는 무조직·무소속으로 나서 64%를 득표, 1995년 7월 1일 초대 민선 군수로 취임한다.
이후 1998년 4월 김포의 시(市) 승격과 함께 초대 김포시장 타이틀은 물론 최연소 군수·구청장·시장을 역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 보유의 공직자로 남게 된다.
이처럼 풍부한 행정겸험을 바탕으로 17~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2004년 초선 시절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2005년 입법 활동과 출석률 등 종합평가에서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등 초선의원 시절부터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유 당선인은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첫 인연을 맺는다.
2007년 대통령경선 후보 비서실장, 2012년 대선후보 직능총괄본부장, 2013년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 2014년 박근혜 정부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에 오르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의 10년을 함께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역임했던 농림부장관 시절 그는 취임 초기부터 시련을 맞는다.
당시 전국은 쌀 값 하락, 배추 값 폭등,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동일본 대지진으로 수산물 방사능 파동 등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구제역 발생 당시에는 장관실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24시간 진두지휘에 나서며 확산방지에 나섰고 방송과 언론에 직접 출연해 구제역의 실체를 설명하고 대책을 내놨다.
사태가 수습된 뒤 자신이 겪은 내용을 엮어 '구제역백서'를 발간해 재발 방지에도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 당선인은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와 산란하고 생을 마감하듯 중앙무대에서 쌓아온 능력과 경험을 고향 인천에 쏟겠다"며 "나를 믿고 지지해준 인천시민에게 앞으로 새로운 인천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