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말레이시아 정부가 14일 난민선을 타고 온 500명 이상의 로힝야족과 방글라데시아인에게 연료와 식량을 준 뒤 쫓아냈다.
이 보트는 13일 말레이시아 북부 페낭 인근 해변에서 발견됐다. 불과 며칠 전에는 랑카위 섬에서도 1000명 이상의 난민이 목선을 타고 들어왔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해안가에 범람하는 이민자를 수용할 여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완 주나이디 내무부 장관은 "우리는 그동안 말레이시아 국경 안에 잠입한 사람들에게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했지만 지금처럼 해안 위에 범람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그들이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정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주나이디 장관은 "동남아 국가들이 로힝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얀마 정부를 더욱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는 난민에 관한 국제협약이 체결돼 있지는 않지만 미얀마를 떠난 15만 명 이상의 난민과 망명 신청자를 관리하고 있다. UN난민기구는 그 중 4만5000명 이상은 로힝야족으로 집계했다.
말라카해협과 주변 바다 위에서는 '인간 화물'처럼 실려온 수천 명의 난민들이 아직도 표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며칠 전 아체주 인근 바다에서 600명의 난민을 구조한 뒤 돌려보냈다. 하지만 외교부 대변인은 사고로 인해 자국 영해로 잘못 들어온 말레이시아 배를 영해 밖으로 밀어낸 것뿐이라며 '푸시 백(push back)' 정책을 부인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수년 동안 미얀마 내 130만 명의 로힝야족이 처한 곤경을 무시했지만 지금은 인도주의적 위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UN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10만 명 이상의 이슬람교도 소수파가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배를 이용해 망명했다.
하지만 어떠한 국가들도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난민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미얀마 당국의 입장을 존중해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국법에 따라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해 실질적으로 국적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수년 간에 걸쳐 미얀마 군과 극단적인 불교 신도들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로힝야족은 충분한 교육이나 건강 관리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없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필 로버슨 아시아지부 부국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비정한 정책으로 로힝야족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세 나라의 해군은 '인간 핑퐁'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에 주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로힝야족은 종교 박해와 인종 차별을 피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등으로 향하고 있지만 대부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10일~11일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에서만 수천 명의 보트피플이 구조됐으며, 유엔난민기구는 올해 1~3월 기간 미얀마, 방글라데시를 탈출한 로힝야족이 2만4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인권변호사 단체 아라칸 프로젝트의 회장 크리스 레와는 "아직도 6000여명이 해상 위에서 육지로 가길 기대하거나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몇몇 국제 기구들은 그가 제시한 수치가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로힝야족을 난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확고한 방침을 세우고 500여명의 보트피플을 바다 위로 밀어냄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은 주변국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자칫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로힝야족이 바다 위에서 불안 속에 떨며 표류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말레이시아 당국은 조만간 주요 선진국과 UN, 유럽연합(EU), 방글라데시, 미얀마 외교 당국자가 참여하는 회담을 제안해 제3국으로 정착을 원하는 난민들의 문제를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외무부도 성명을 내고 오는 29일 방콕에서 미얀마,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호주 등 15개국 관료가 참석하는 국제회의를 열고 로힝야족 문제를 논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