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연초에는 새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달려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이런저런 이유로 뒤늦게 시작한 사람이 늦은 만큼 더 열심을 내어 목표한 바를 더 빨리 이뤄내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항상 첫 마음을 기억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처음에 가진 열정으로 노력하며 즐기다 보면 어느 새 발전하여 목표점에 이를 것입니다. 더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큰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한 주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주인은 품꾼들을 불러 얼마간의 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리고 오전 아홉 시와 열두 시, 오후 세 시에 장터에 나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어서 그들도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오후 다섯 시에 또 나가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 일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고,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삯을
한 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에 여러 가지를 계획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해 나갑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때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하고, 경험 부족으로 인한 실패를 맛보기도 하지요. 그러나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사람만이 참다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확연히 다릅니다. 어떠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니 불가능이나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간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하는 사람은 앞길에 장애물이 생겼을 때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지식이나 노력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좌절과 실패의 순간이 있을지라도 새 힘을 얻어 다시 전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내 유익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엔 거짓이 없으니 그 입술의 말도 진실하고 지혜롭습니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니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받게 됩
인생을 살다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참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국무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 요셉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이로 인해 형들의 시기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바로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게 되는데, 보디발은 요셉을 발탁하여 그 가정의 총무로 삼고 집안의 모든 일들을 맡겼습니다. 한낱 노예에 불과한 요셉이 어떻게 주인의 큰 신임을 받을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그 행함과 마음가짐이 올바른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함께하시며 범사에 형통함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축복을 받으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요셉과 같은 신앙을 소유하면 됩니다(살전 5:22). 둘째로, 요셉은 성실
사람의 이름은 문자 이상의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 얼굴과 성품, 언행과 분위기 등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시기 전의 호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이름이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영광스러운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라는 뜻으로, 미래형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행 4:27)라는 뜻의 헬라어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이며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어의 ‘메시아’에 해당하지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 자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란 뜻으로 완료형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은총,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고 위로자가 되어 주시는 사랑,
고용주는 일꾼을 구할 때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주인의 마음처럼 일해 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일꾼을 고르실 때 하나님의 마음처럼 일하려는 사람,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힘써 노력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7가지 요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화평을 이뤄야 합니다. 자기 의가 있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으면 이내 화평을 깹니다. 큰 소리로 다투지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고 불편합니다. 또한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무관심합니다. 만일 불만이 있고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그만큼 자기 의가 있고, 섬김과 존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화평을 이루려면 자기 의와 교만을 버리고,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겸손한 마음을 이룬다면 화평이 깨어질 일이 없습니다. 둘째, 서운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서운함은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이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일수록 겸손하고 남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 말씀하셨습니다(마 18:4, 23:1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겸손한 사람의 모습을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입술의 말이 겸손합니다. 주 안에서 겸손한 사람은 그 입술의 말도 겸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로만 상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 상대를 존중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는 지식의 잣대로 판단하여 상대의 말을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경청할 줄 압니다. 혹여 자신의 기준에서는 옳지 않다 해도 상대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정확한 분별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할 뿐, 그 자리에서 상대의 말이 그르다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나보다 어린 사람이 지적한다 해도 감사함으로 받을 줄 알고, 당장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 해도 권면하는 말에 “아멘!” 하며 깨우쳐 변화되고자 한다면 고운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에게 분명 잘못이 있어서 지적을 받았음에도 감사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곡식을 빨리 자라게 하려고 이삭을 뽑아 올리다가 모두 죽어 손해를 본다는 뜻입니다. 즉 성급하게 이익을 보려다가 도리어 해를 보게 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무슨 일이든지 이루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때를 기다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고 나간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또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한편, 곡식은 적절한 파종시기를 놓치지 않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여기에 거름을 주고 가꾸는 과정이 있어야 추수 때에 풍성하게 거둘 수 있습니다. 전도서 3:1에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말씀한 대로,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도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근면, 정성을 쏟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싫어하고 좋은 열매만을 바란다면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불변의 법칙입니다.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축복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물이 귀한 사막지방에서 우물이나 샘은 생명과 직결되는 귀중한 자원이요, 삶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맑고 풍성했던 그 물이 어느 날 갑자기 더러워지고 흐려진다면 많은 사람들을 실망케 하고 우물 혹은 샘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곧 우물의 흐려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다”(잠 25:26)고 말씀하십니다. 즉 의인이 악인에게 져서 그 앞에 굴복하거나 의를 변개하고 타협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사람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며, 의인이 곤경에 처할 때는 그 방패와 산성이 되어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연단하여 더 크고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혹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때때로 어려움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는 악에 대한 선의 승리요 의인의 팔을 들어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이며 절대불변의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을 보시고 그의 눈을 밝혀 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만민의 역사는 오직 믿음으로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셨고, 믿음을 내보일 때마다 구원과 응답, 치료와 축복은 물론 모든 역경을 영광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만민중앙교회(당회장 권한대행 이수진 목사)가 지난 16일 교회창립 40주년 기념예배와 축하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1982년 7월 25일 어린아이를 포함한 13명으로 10평 남짓한 성전에서 시작한 만민중앙교회는 현재 초대형교회로 성장해 전 세계에 지‧협력교회를 두고 있다. 만민중앙교회는 이날 오후 3시 경기 부천시 부천체육관에서 예수교연합성결회 아프리카 총회장 정명호목사 등 국내외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회창립 40주년 기념예배와 축하 행사를가졌다.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 연단은 축복이다’ (사 60:1~3, 롬8:18)라는 설교를 통해 “성도 개개인이 영적 장수로 나와 온 세상에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당부하면서 교회 40년의 역사에 대해 전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이어진 2부 행사에서는 찬양, 무용, 연주 등 감동의 축하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어떤 사람은 자기 기준에 맞춰서 사랑을 줍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고, 또 받으려고 하지요. 참된 사랑은 상대의 입장과 마음이 되어 그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뜻은,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구원의 섭리를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것만 이루고자 한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동안 편히 지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 달리시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마음 깊이 헤아리고 이에 맞추어 행하셨습니다. 쉬지 못하고 먹지 못하신다 해도 한 영혼이라도 더 치료하고, 천국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셨지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영혼들을 하나라도 잃지 않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림으로 깊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과 서로 친밀한 사귐이 있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참 자녀를 얻는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우리가 선으로 보고 듣고 말하며 선만 쌓아간다면 선 자체이신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선을 쌓고자 하면서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악을 쌓는 분야가 있는데 이는 ‘말’에 관한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더욱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항상 선한 말을 내야 합니다. 잠언 16:24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말씀한 대로, 선한 말은 낙심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좋은 약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은 마땅히 선한 말을 내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힘과 용기를 주는 선한 말 대신에 상대의 허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함께 판단 정죄하는 악한 말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 말씀한 대로, 사람은 마음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입술의 말도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시편 62:5~7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만 바랄 때 큰 축복과 영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을 만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라며 정직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을 때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역사해 주십니다. 언제나 함정이 없는 길을 밝히 보여 주시고 혹여 우리의 실수로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해도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건져서 높고 안전한 반석 위에 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볼 때 구제적으로 어떤 축복이 임할까요? 첫째로, 영육 간에 축복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려고 각종 연금과 보험 상품에 가입합니다. 지금 당장은 건강과 재산이 있어도 그것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만 바라보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얻은 복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저 사람은 구제불능이다!” 할 정도로 알코올 중독에다 방탕하게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난 후 180도로 변화된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정말 딴사람이 되었다. 완전히 달려졌다.”며 놀라워하지요. 이처럼 속중심이 변화되면 주변 사람들도 확연히 느낍니다. 그 사람의 얼굴빛이 달라지고, 말과 행동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배움이 많지 않은 어부나 죄인 취급받던 세리, 가난한 과부 등 세상에서 대접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삶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가난과 질병의 문제를 해결받고,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영혼들이 하나님 영광의 도구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자기 의가 아주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존심도 강하고 자기적인 이론과 사상으로 단단하게 자아를 형성했지요. 또한 당대 최고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격한 율법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매우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