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비핵화 노력에 힘쓰겠다는 발언이 나와 어리둥절합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8일 열린 제 7차 당대회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總和)에서 "핵보유국으로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인데요, 김 제1위원장이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부분이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발언의 핵심은 '나도 이제 진짜 핵보유국' 선언에 있음은 금방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북한 문제 분석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것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핵화' 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적대시 정책도 포기하라는 요구 조건을 들어주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비핵화 실현에도 노력할 것이란 뉘앙스를 풍김으로써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평화협정 논의까지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이렇게 봤을 때 김 제1위원장의 발언은 '핵실험'이란 행동이 아닌 '말'로 하는 또 다른 핵위협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주변에 아무도 그를 정상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자가발전시켜 인정받고자 하는 취지의 발언이면서도 무엇보다도 '적대세력이 핵으로 자주권 침해하지 않는 한'이란 전제를 달고 있어 자신들의 일탈행동이 다분히 외부세력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취한 조치라는 강변을 담고 있어 보입니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03년 국제사회의 핵억제프로그램인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선언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라운드위에서 경기를 하기 하던 선수가 모름지기 지켜야 할 경기룰을 지키지 않겠다고 일방 선언하고 독자적인 경기를 펼치겠다는 식이지요. 통상적으로, 경기장에서 룰을 벗어나면 심판은 선수에게 제재를 가하고 페널티를 부여하게 됩니다. 룰은 선수들간에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나 지켜야 할 약속이거든요.
한 번, 두 번 옐로카드로 경고를 보내지만 그도 안될 때는 강력한 페널티와 함께 퇴장 명령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이 더 이상 국제사회의 룰을 어길 경우 제재조치에 이어 더 강력한 퇴장명령도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러한 북한이 엉뚱하게도 '비핵화 노력'을 표명하고 나섰으니, 이제는 네 차례 실험을 통해 어지간한 핵탄두화 작업은 모두 끝냈으니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들려 씁쓰레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측 청와대에서도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북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할아버지때 들고 나왔던, '미군철수 후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을 내놓은 것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북한의 전술 그대로임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한국 뒤에는 미국이 있고, 미국과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핵만한 무기가 없다는 계산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판단이죠.
아무튼 김정은이 이번에 당대회에서 핵보유국 선언을 하는 동시에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 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언사로 또다른 도발을 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룰을 어긴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경기장에서 퇴출되는 과정이 어떠한지 그 말로는 점점 가까와지는 법 아닐까 싶습니다. /강재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