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지난해 7살 신원영 군이 부모의 학대 끝에 숨진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또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벌어지는 숱한 아동학대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지 9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신음 소리는 세상의 음지에 가득하다.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들
최근 경기도 이천에서는 잠을 자지 않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3살 여자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친모와 외할머니가 경찰에 붙잡혔다. 나무 회초리와 훌라후프 등으로 하루에 1∼2시간가량 맞은 피해 아동의 사인은 전신 출혈로 인한 '실혈사(失血死)'였다.
앞서 지난달 18일에도 경기 안산시에서 의붓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20대 계모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성은 의붓아들이 친딸을 자꾸 괴롭혔다는 이유로 수차례 배를 발로 차고, 옷걸이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전남 광양에서는 두살 아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비정한 20대 부부가 경찰에 구속됐다. 이 남성은 2014년 11월27일 전남 여수시 봉강동 빌라에서 둘째 아들(당시 2세)을 훈육한다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때려 숨지게 한 뒤 여수시 신덕 해변 인근 야산에 유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아동 학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경북 구미의 한 어린이집에서 네 살배기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학대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확인한 것만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20여차례에 이른다. 학대당한 아이들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불안해해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계속되는 비극, "신고가 우선"
아동학대 사망자수가 2년새 2배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아동학대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 아동학대 사망자는 28명으로, 2014년 14명에 비해 2배로 늘었다. 2015년 16명에 비해서도 75.0% 증가했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도 늘고 있다. △2014년 1만7791건 △2015년 1만9214건에 이어 지난해는 10월까지 2만4690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조사 결과 아동학대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 건수는 △2014년 1만27건 △2015년 1만1715건 △2016년 1만4812건 등으로 빠르게 늘었다.
아동 학대 대부분은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동학대의 82%가 가정에서 벌어지고, 가해자의 79.8%가 부모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성인들은 왜 아동들에게 학대를 가하는 것일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2016년 2월부터 4월까지 아동과 성인 377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 성인 10명 중 3명(25%)은 부모가 '양육방법을 몰라서' 학대를 가한다고 답변했다. 이와 함께 △분노 조절을 못해서(21%) △아동을 소유물로 여겨서(18%) △자신들이 자라온 환경이나 현재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 때문에(11%) 등의 의견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가 학대에 대한 인식과 신고인식의 결여 때문에 야기된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 2015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1만1715건 중 부모에 의해 아동학대가 발생한 경우는 9348건(79.8%)에 달했다. 아동학대 사례 10건 중 8건은 부모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가 초·중등생들의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체학대의 경우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인식과 '내 아이를 내가 때리는 데 무엇이 잘못됐느냐'는 인식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 8915명 중 절반이 넘는 4546명(51%)은 아동을 꼬집는 행위에 대해 '학대가 아니다' 또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등 '학대가 아닐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또 손바닥으로 얼굴, 머리, 귀 등을 때리는 행위, 도구(벨트·골프채·몽둥이 등)를 이용해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는 각각 전체 응답자의 10.1%(906명), 9.1%(811명)가 '학대가 아닐 수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지난 1년 간 주변에서 아동학대를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212명 중 177명(83.5%)은 신고를 하지 않았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부모의 자녀 훈육은 상관할 일이 아니어서(26%·46명)', '신고가 아동에 해가 될까봐(22.6%·40명)' 등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생각이 학대 상황을 방관하게 만들고 결국 아동의 희생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체벌과 학대의 경계선에 있는 경우에도 적극 신고하는 등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승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학대나 체벌을 해도 된다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근절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순기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부장은 "아동이 학대 받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증설, 신고의무자 교육 및 부모교육 확충 등의 더욱 촘촘한 아동보호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