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화순 기자] 폭염 속 시원한 문화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양평군립미술관을 가볼만하다. 여성미술의 현 주소를 둘러볼 수 있는 ‘2018 오늘의 여성미술(2018 WOMEN’S ART NOW)’와 ‘HELLO, WOMAN ARTS’ 야외 설치미술전이 미술관 안팎에서 9월2일까지 열린다. 성인 1000원, 어린이 500원을 내면 관람할 수 있다.
수려한 강과 숲이 어우러진 양평은 인구에 비해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양평군립미술관이 서울에서 다소 거리가 떨어져있지만, 좋은 전시가 많이 열리고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양평으로 내려가 터를 잡고 활동해온 지역 작가가 많은 데다가, 이형옥 학예실장을 비롯한 큐레이터들의 열정 덕분이다.
‘2018 오늘의 여성미술(2018 WOMEN’S ART NOW)’전에서는 여성작가 35명의 회화, 한국화. 조각, 설치 작품 등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보험가격이 6억원인 나혜석의 자화상이 걸렸다. 한국 최초의 여성작가이자 여성운동가로 시대보다 앞선 자의식을 가졌던 작가의 자화상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천)이 작가 탄생 100주년 기 념 전 을 마 련 했 던 이 성 자(1918~2009), 추상계열의 석조와 목조 각으로 한국여류조각가회 1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여성조각의 오늘을 연 김정숙(1917~1991), 운보 김기창 화백을 내조하면서 한국 전통수묵채색화로부터 서구 모더니즘까지 독특한 예술의 미를 활짝 피워낸 박래현(1920~1976)을 보다 보면 독창적 예술세계를 꽃피운 그들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미인도’ 진위 여부로 그를 사랑하는 팬들 마저도 가슴이 아팠던 한국화 채색화 분야의 독보적 작가 천경자(1924~2015), 여인상과 모자상을 주요 테마로 부드러운 형태의 조각 세계를 펼쳤던 윤영자(1924~2016), 한국 초기 전위예술의 선발 주자로 ‘한계의 극복과 해방’ 주제에 평생 천착하다가 지난해 전시 준비중 지병으로 갑자기 별세한 정강자(1942~2017) 등 작고한 금세기 대표적인 한국여성미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다.
50대 이상 원로 및 중견 작가들도 만날 수 있다. 버선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정서와 미를 아름다운 색과 선으로 표현, 한국인의 애환을 나타내 온 제정자를 비롯해, 이 시대 어머니의 삶을 통해 바라본 소박하지만 진한 삶과 예술에의 열정을 작품에 담아온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 여성 누드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색채미학으로 승화한 이숙자, 대자연의 고담한 정취를 형상화해온 작가 겸 양평 군립미술관장 류민자, 자연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평면 추상작업을 선보여온 차명희, 자연과 기억을 결합한 추상적 한국화 작가 송수련, 전통수묵채색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해온 김춘옥, 화려한 원색과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황주리 등 원로 및 중견작가들이 출품했다.
한국의 여성미술은 1913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난 나혜석(1896-1948년)에서부터 본격화 된다.
그 후 백남순 이성자 박을복 천경자 등 많지 않은 여성작가들이 일본 화단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해방과 6·25전쟁이라는 사회적 변화를 겪은 후 1950년대의 유럽 유학을 떠난 일부 작가들이 추상미술을 한국에 다시 갖고 들어오면서 80년대까지 추상을 비롯한 모더니즘미술(modernism art)이 대세를 이루었다.
한편으로는 정감 어린 자연주의적 성향을 통해 형상을 드러내는 사실주의 추구 작가와 이런 정서 속에서 형태를 해체하며 비구상적 양식을 추구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매
체나 유행이 난무한 시대에 자기주관적 이념으로 작업을 하는가 하면,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기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낸다.
또 이번 전시에서 글로컬 문화사회에서 현대여성미술의 상황과 비전을 제시하여 상호 이질성을 극복하는 작가로 김호순, 김인옥, 금동원, 현정아, 김정아, 이귀님 이보석 등 국내 작가들과 엘레나 타크첸코(러시아), 마르가리타 차콘바흐(멕시코), 마리얌 카휘 마다뷔(이란), 노우라 엠 엘코디(이집트), 바비타 다스(인디아), 폴리 홀리욕(오스트레일리아), 나탈리 베라스(프랑스), 웬지 장(중국), 헐사 미스널(독일) 등 국제작가 12명이 함께 했다.
전시는 제3전시실에서 ‘2018 오늘의 여성미술전’이 펼쳐지고, 지층에서 근-현대 여성미술 도입기 작가들의 활동과 성과를 조망하는 교육체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또 화가들의 아뜰리에를 독특하게 구성해 작가의 창작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양평군립미술관 밖에서 진행되는 2018 야외설치미술-1, HELLO, WOMAN ARTS전에서는 현대미술 여성조각가들의 아름다운 만남을 확인할 수 있다. 김경민, 김정희, 김태수, 박재연, 배형경, 양진옥, 이성옥, 정진아 작가가 현대조각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양평의 아름다운 산하와 자연과의 질서 속에서 물질의 순환이 갖는 심리적 카타리스를 느끼게 하는 독자적인 조형세계로 창조하여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형옥 학예실장은 “여성미술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자취를 조망하는 전시로 구성했다”며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미술작가들에게 작가로서 활동과 사회활동의 중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전시 의미를 밝혔다. 또 “우리의 미래 작가들은 자신의 주관적 사고와 가치관이 함축된 시대의 거울을 발현해 미래 세대에게 조명되는 역사적 자취로 남게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2011년 개관한 양평군립미술관은 현대미술 중심의 기획전문미술관으로 매년 8회의 크고 작은 전시를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 관람객이 100만명을 넘어서며 지역 문화를 선도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