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시절 ‘맛따라 길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농촌경제와 ‘농업경영인’을 위한 알찬 정보를 취재하고 혁신 방안을 모색 했다. 세계의 ‘지금’을 취재하며 한국의 ‘미래’를 제시했다. 지금은 고향 광주를 무대로 시정(市政)을 연출하고 있다. 신 시장은 광주에서 ‘작은거인’으로 불린다. 작은데 왜 거인이라 할까? 우리가 만난 신 시장은 확실히 ‘키보다 훨씬 큰 사람’이었다.
[시사뉴스 윤재갑 박상현 김형석 오승환 이장혁 기자] 누구든 나이를 먹으면 시력이 떨어지고 청력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것도 생각하고 마음먹기 나름이다. 눈이 나빠지면 자세히 보게 되고, 귀가 어두워지면 귀기울여 듣게 된다. 단점과 약점이 장점과 강점이 되니 노안과 가는귀도 ‘나이가 주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다. 작은 눈에 안경까지 쓰고, 들리는 게 전 같지 않지만 신동헌(68) 시장은 오히려 그런 불편이 광주시 곳곳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고 믿고 있다.
“연출은 오케스트라 같은 것. 멀리서 나는 작은 ‘삐~’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지휘자”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 주목하고 작은 목소리도 귀담아 듣는 것은 ‘신 PD’ 시절 터득한 노하우다.
그는 국내에서 40대 이상이면 다들 기억하는 <길따라 맛따라>, <세계는 지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건강365>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베테랑 PD 출신이다.
방송을 떠난 지 한참 된 선거캠페인 중에도 광주사람들은 그를 ‘신피디(PD)’라 불렀다.
신 시장은 1952년 당시 경기도 광주군 광주면 쌍령리(지금의 쌍령동)에서 태어나 광주초, 광주중, 서울한영고를 거쳐 한양대 법학과에 들어갔다.(나중에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도 졸업했다)
1978년 졸업 후 동양방송(TBC)에 입사해 기획실에서 홍보업무를 맡았다.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잠시 방송을 떠났다 다시 한국방송공사(KBS) 제작단에서 PD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에겐 PD나 시장이나 똑같은 감독이다.
PD는 프로그램을, 시장은 ‘광주’를 연출하는 게 다를 뿐이다.
“연출은 오케스트라 같은 거예요. 지휘자가 앞에 있는 연주자만 쳐다보고, 트럼펫 같은 큰 소리 나는 악기에만 귀를 기울이면 공연이 제대로 되겠어요? 저 맨 뒤에 있는 연주자와도 눈을 맞추고 들릴까 말까한 캐스터네츠 소리에도 귀를 열어두어야 멋진 하모니가 나옵니다. 멀리서 나는 작은 ‘삐~’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지휘자죠.”
신 시장도 이곳 광주에서 작은 소리 까지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
남종면 수청리 사람들이 물을 못 먹는다는 얘기도 그가 가장 먼저 듣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평소 시장통에 가서 좌판을 펴놓고 장사하는 어르신들 하소연까지 귀 담아 듣다 보니 알게 된 값진 정보들이다.
‘신 PD’가 ‘신 시장’이 되면서 연출무대도 광주로 옮겨졌다.
그는 적어도 이념이나 진영에 매몰돼 있는 시장은 아니다.
“저는 연출할 땐 최고의 아이디어만 뽑아 써요. 광주시민을 위한 최고의 정책 아이디어! 누가 아이디어를 냈느냐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품질이 중요합니다. 연출하는데 여야도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광주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연출하기 때문이죠.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시장이지만 다른 당 지지하는 분들도 다 소중한 연출 대상입니다.”
머릿속에 ‘오직 광주’라는 슬로건을 담고 광주를 연출하니 모든 인적·물적자원을 고루고루, 구석구석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시청 직원들을 바라보는 것도 남달랐다.
“‘주요부서’란 게 어디있겠어요? 다 중요하고, 없으면 안 되는 부서지요. 인사과는 힘 있고 인기 있는 부서고, 장애인복지과는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는 부서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시정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겠어요? 장애인복지과도 가보면 보석 같은 내용이 많습니다. 어느 분야가 더 인기 있고 재미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광주시청엔 요직, 한직이 따로 없다.
신 시장 눈엔 모든 부서가 요직이고, 그의 귀엔 그들이 움직이는 모든 소리가 들린다.
<계속>